일은 일. 나는 나.
최근 우리 팀은 일이 바빴다. 재무부에 제출해야 하는 리포트가 기한이 있었고 롱 브레이크 전에 제출하고자 다들 마음이 바빴다. 특히 내가 맡은 프로그램의 자료를 작성해야 하는 부분이 컸다.
여차저차 리포트를 작성했고 매니저와 리뷰 콜을 시작했다.
오랜만에 진땀 나고 당황스러운 시간이었다. 외부 자료를 받으면 우리 리포트에 리뷰 후에 내용을 넣어야 하는데, 보아하니 애초에 전달받은 자료도 오류가 있었다. 책임 소재를 따지자면 넘겨준 자료에서 문제가 있었지만 어쨌든 지금 내 손에 있으니 내 문제가 되었다. 여러 번 확인했는데 왜 이런 일이 생겼지? 보내준 자료를 우리 템플릿에 정확히 넣는 거에만 집중했지, 이 자료가 정말 맞는지라는 critical thinking은 하지 않았다. 당연히 맞는 자료겠지라는 생각으로 우리 템플릿을 완성하는데만 집중한 것이다.
매니저는 계속해서 이건 확인했냐, 저건 물어봤냐, 나중엔 네가 자료를 받으면 리뷰프로세스가 뭐냐는 질문이 계속 던져졌고 나는 계속 진땀 내며 I see, I understand와 같은 의미 없는 대답만 반복했다.
그래도 미팅을 하다 보면 네가 맞니. 내가 맞니. 왜 그렇게 봤니 라는 대화는 자연스럽게 나오는 부분인데, 이날만큼은 숙제검사를 받는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고 나를 그렇게 대하는 매니저에게 점점 내면의 짜증이 올라왔고, 자료를 이렇게 확인도 안 하고 전달해 준 파트너사에도 짜증이 배로 올라왔다.
여차저차 해결해서 콜을 끝냈다. 심정은 울고 싶었지만 짬이 찬 직장인이 되면 눈물도 잘 안 난다.
대신 겨드랑이가 울어준다. 눈물 좀 찧은 겨들을 달래며 열을 식히고, 점심을 먹었다.
밥맛도 떨어져서 전자레인지에 만두 두 개를 쪘다. 대충 다 익은 만두를 한입 두 입 깨작하는데 매니저에게 다시 콜이 왔다.
"아 또 뭐가 잘못됐나 보다"
후다닥 2층으로 달려와 전화를 받는데 엥?
"I just wanted to apologize."라는 예상 못한 첫마디.
아까 전 우리 미팅에서 problem은 your problem이 아니라 my problem이었고, 자기가 사과를 하고 싶었다며 점심 맛있게 먹으라는 것이다. 대충 나도 우리 다 pressure가 심하니 이해한다고 당황한 웃음으로 콜을 마무리했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두 가지 생각이 났다.
오잉? 매니저가 사과를 하다니. 놀랍다.
그렇지? 아까 상황은 좀 너무했던 거 맞지?
새로운 팀에 들어온 후로 업무를 대할 때 자꾸만 떨어지는 일을 처내는 식으로 일을 하게 된다.
아직 잘 모르니 매번 예상치 못한 돌들을 얻어맞는다. 이 갭을 채우는 게 배우는 과정인데, 왜 이렇게 혼자 안달복달인지 모르겠다.
일을 하다 보면 보지 못했던 부분이 있고, 몰랐던 사실이 있고 하다 보니, 자꾸 자신감이 떨어진다..
나도 리드를 하고 싶은데 자꾸만 내 역량이 몇 프로 모지라다. 그리고 어쩌다 매니저의 동의를 받으면 괜히 기분이 업된다.
자꾸 나 자신을 일보다 하대하게 된다.
이 날도 객관적으로 봐도 너무한 상황에서도 "아 내가 뭘 잘 못했구나"라는 생각에 잡혀서 나 스스로를 자꾸만 지켜주지 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사과를 받고 나서야 나 자신을 한번 봐준다.
요즘따라 일은 일이고 나 자신은 별 갠데 자꾸만 일치를 시켜서, 일을 못하면 내가 못난 거처럼 느껴진다. 이런 얘기를 우리 다른 팀원에게 했더니 간단하게 방법을 알려준다.
Do what you can do, that is all.
간단한데 나에겐 가장 어려운 방법이다.
일은 검사받는 숙제가 아니다. 채점받는 학생모드는 이제 그만.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또 하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