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1년만이다. 여러 이유로 글을 멀리한지 벌써 그렇게 됐다. 사실 여러 이유라 해봤자 게으름이 차지하는 비율이 아주 높다. 말로만 블로그를 한다고 하면서 2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고, 중간에 비평 공모전과 자잘한 비평 과제들을 제외하면 타자를 치는 게 매우 어색할 정도다.
작업하기 매우 좋은 공간을 찾았다. 음악도 환상적이고, 조명도 적당하다.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고, 사장님도 젠틀하다. 단점은 너무 멀다. 성수동과 건대 그 사이 어정쩡한 위치, 주변엔 잿빛 사무실과 공장이 즐비하다. 근데 웃긴 게, 그런 거리가 주는 분위기와 겨울의 날씨가 제법 어울린다. 가까웠다면 거의 매일도 올만한 장소가 아닌가 싶다.
강박증 치료를 1년 반 가까이 받았지만, 여전히 완치될 기미는 보이지가 않는다. 결벽증은 오히려 더 심해졌다. 조금이라도 찝찝한 부분을 만지면 온 신경이 곤두서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 느낌은 불안으로 이어진다. 대부분의 사고회로가 정지되고, 모든 신경이 그 부분으로 집중된다. 그 부분이 아릴 정도로 씻고 긁어야 비로소 안정이 된다. 옷은 씻을 수가 없으니 페브리즈를 미친 듯이 뿌려댔다. 그 결과 일주일에 한 통을 다 써버리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그런데도 낡은 공간을 리모델링한 카페를 선호하고, 빈티지 니들스 HD팬츠를 구했다고 즐거워한다. 내가 생각해도 매우 모순적이지만 뭐 다들 이 정도 이중성을 가지고 살지 않나 하고 변명해본다.
생각해보면 어릴 적부터 오래된 것들을 참 좋아했다. 초등학교 6학년, 모두가 빅뱅과 소녀시대를 듣고, 내게 MC스나이퍼를 추천할 때, 정작 나는 서태지와 아이들을 즐겨 들었다. <난 알아요>는 지금도 1절을 다 외울 자신이 있다. 영화나 드라마도 꽤 옛날 것을 좋아했다. 유튜브로 <여명의 눈동자> 요약을 보며 감동을 받고, 가끔 영화채널을 틀면 나오던 <전격Z작전>을 매우 좋아했다. 이쯤 되면 내 나이가 의심될 만도 하다. 다시 말하지만 초등학교 6학년 때 빅뱅과 소녀시대의 전성기였다. GEE와 하루하루가 온 동네에 울려 퍼지던 시절이라 하면 내 나이가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여하튼, 어렸을 때부터 옛 것을 좋아했다. 특유의 아련함이라 할까, 내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에 대한 슬픈 환상들이 나를 이끈다. 그런 노래와 영상을 보고 있자면 가슴이 찡하다.
얼마 전 본 <프렌치 디스패치>에서는 이런 말이 나온다. 무엇을 쓰든, 그렇게 쓰려한 것처럼 써라. 이 말이 나는 참 매력적이다. 난 ‘의도’라는 말을 좋아한다. 어떤 행동과 말, 사물에 영혼을 불어넣어준다. 그리고 이는 예술에 참 어울리는 단어다. 우리는 아무 이유 없이 표현하지 않는다. 감정적으로든 이성적으로든 창작자의 의도에 따라 무언가가 만들어진다. 글도 마찬가지다. 하다못해 의식의 흐름조차 의도가 있다며 분석하는 마당에, 의도가 없는 글이 있을까. 재밌는 건, 이러한 분석은 모두 독자가 필자의 관점이 되려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독자는 100% 필자의 생각을 읽을 수 없다. 수많은 예술과 표현들 중에 아무 생각 없이 만들어진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런 작품에도 우리는 의도를 새겨 넣는다. 이게 예술의 가장 역동적인 선순환이라 생각한다. ‘어떠한 의도를 가지려 한 것처럼’ 창작자가 만들면, 수용자들이 그 작품들의 의도를 고민한다. 작품이 만들어지고 보여 지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용자들의 생각과 말로 재창작된다. 수용자들의 생각과 지식은 시대가 지날 때마다 달라지며, 작품의 해석 또한 지속적으로 달라진다. 창작자의 손에서 끝나지 않고, 끊임없이 창작되는 작품. 얼마나 인상적인가. 결국 그래서 나는, 비평을 참 좋아한다. 비평은 단순한 해설에서 그치지 않는다.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아름다운 논설문이자, 가장 날카로운 예술이다.
어릴 때, 친구들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가 뭐냐고 물으면 2500이라 대답한 기억이 있다. 남들이 아무도 고르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멋있는 숫자. 나의 지독한 홍대병은 그 때부터였나 보다. 12년이 넘는 아이돌 덕질의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톱스타를 좋아한 적이 없다. 남들이 발라드를 들을 때 브리티시 락을 들었고, 다이나믹 듀오, 리쌍을 들을 때 소울컴퍼니 노래를 들었다. 남들이 다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건 멋이 없어 보였다. 재미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렇게 튀고 싶지 않았다. 쿤디판다의 <쿨가이 킷트>의 가사처럼 ‘한 발 씩 대중과 서브컬처에 어중간히 걸터앉고’ 싶었다. 최신 트렌드를 빠짐없이 챙기려 노력하면서도, 서브컬처를 지향했다. 그 시간이 쌓여 나만의 독특한 취향이 형성됐다. 그 취향을 더 키우고 구체화시켜 브랜드화 하는 것이 현재 내 꿈 중 하나다. 언젠가 나만의 특색을 가진 브랜드를 사람들 앞에 선보이고 싶다.
너무 오랜만에 쓰는 글이라 손도 풀 겸, 이것저것 써봤다. 공교롭게도 이것, 저것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앞으로 어떤 글이 어떻게 올라갈지 모르겠지만, 이 글이 그 모든 것들의 길잡이가 될 것이다. 혹시라도 내 글을 보는 사람들, 내 브런치를 들리는 사람들이 가이드처럼 읽고 내 생각들을 즐겨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