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5. 11. 선물 같은 마당냥이 엄지.
엄지야, 그날의 넌 상상할 수 없는 존재였어.
우리 집엔 쥐가 많이 보였다. 쥐들과의 동거가 여간 소름 끼치는 게 아니었다. 타 동네에 거주하는 엄마와 마주할 때면 낯설고 불쾌한 일에 대한 이야기를 수시로 투정처럼 내뱉었다.
2018년 5월 11일, 티 없이 맑은 소녀 모습을 한 고양이가 우리 집 마당에 앉아 있었다. 낯선 고양이를 본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얘 뭐야? 어디서 데려 온 아이야?"
"재활용 버리러 나갔다가 만났어. 편의점에서 간식 하나 사서 먹이고 보내려는데 안 가는 거야. 아파트 단지 보다 마당에서 살면 좋겠지 싶어 데리고 왔어."
아이고, 엄마 왜 그러셨나요? 그 순간 엄마의 선택이 딸을 생각하는 마음이었는지 고양이를 위함이었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었다. 비록 길고양이지만 아파트 단지 편의시설을 이용하며 고고한 생활을 하던 아이였을 수 있다. 간식하나 얻어먹고 낯선 시골 동네로 끌려와 어리둥절 상태.
첫눈에 반하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려준 아이였다. 새침함과 우아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고양이계의 오드리햇번이었다. 갑자기 마주하게 된 고양이 앞에서 뭐부터 해야 되는 건지 사고가 정지된 상태였다.
일단 이름부터 지어줘야 했다. 물끄러미 바라보고 서있는 나를 대신해 아들이 옆에서 잽싸게 이름을 불렀다. "엄지." 고민할 것도 없이 우리 집 엄지가 되었다.
이때부터 다른 고민들이 시작됐다. 이웃집과 우리 집의 경계가 딱히 존재하지 않는 사방이 탁 트인 자연환경이었다. 우리 집 마당을 나가지 않게 할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동네 길고양이가 되면 안 될 노릇이었다.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도 없고 딱히 관심도 같지 않았었다. 그런 탓에 상식도 지식도 없었다.
한평 남짓한 땅에 펜스를 둘러 엄지만의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개집을 놓아주었다. 예쁜 목줄을 채워 길고양이가 아니라는 티를 팍팍 내주고 싶었다. 엄지는 신기하게도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을 가만히 바라봐 주었다. 사랑스럽다는 말은 이럴 때 나오는 말이었다. 주말 내내 엄지를 위한 노력이 어설픈 실천으로 이어졌다.
누가 데려가거나 집을 나가는 게 제일 걱정이었다. '도망가면 어쩌지? 자기 이름이 엄지라는 걸 알까? 나가버리면 어떻게 찾지?'등 회사에 있는 동안 온통 엄지 생각뿐이었다.
엄지는 걱정과 다르게 늘 그 자리에 있었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나를 대했다. '닝겐, 뭐가 그리 걱정이냥.' 그렇게 우리 집에 들어온 엄지는 매 순간 우리를 안심시키는 듯했다.
그분의 털 알레르기 때문에 엄지를 집안에 들일순 없었지만 소중한 존재임이 분명했다. 아이들과 난 엄지에게 푹 빠져 같이 있는 시간이 마냥 행복했다. 자연스레 마당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