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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같이 돌자 전국 한 바퀴 Ep.1

깻잎무침

by 언돌이

고등학교 다닐 때 친구 순돌이와 나는 어른이 되면 유럽여행을 하자 했다. 세계지도도 샀다. 프랑스를 필두로 시계방향으로 유럽 한 바퀴 돌자며 유성매직으로 경로를 표시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어른이 되버렸다. 약속한 유럽여행은 안 가기로 했다. 시간은 문제 되지 않았지만(돈은 조금 문제) 사실 조금 무서웠다. 말이 안 통할 거니까. 그래도 군대 가기 전엔 반드시 여행을 꼭 가고 싶다. 유일하게 말이 잘 통하는 한국을 일단 돌아다녀보기로 했다. 그래 유럽은 언제든 갈 수 있지. 우리나라를 먼저 정복해야지. 한국지도를 샀다. 네임펜으로 각자 가고 싶은 도시를 표시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1년 동안 각자 열심히 살았다. 나는 대학교 1학년을 무사히 마쳤고, 순돌이는 재수생 신분으로 1년을 고생했다. 휴학계를 낸 뒤 여행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이곳저곳에서 알바도 했다. 택배 회사 한 달, 레스토랑 한 달, 영화관 알바 3달을 했다.


주말이면 친구들과 술 한잔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순돌이와 나는 만날 때마다 요란스럽게 여행 이야기를 하곤 했다. 어느 날은 한가롭게 진돌이와 낮부터 맥주를 마셨다. 1층에 있는 카페였는데, 통유리창은 짙은 선팅으로 밖에선 잘 안보이고 두툼한 다방소파와 낡은 테이블이 즐비한 그런 곳이었다.


- 나도 갈까?


진돌이가 말했다. 여태 순돌이와 호들갑 떨며 이야기하는 동안 옆에서 전혀 관심이 없던 진돌이라서 놀랐다. 그날 밤 학교에 다녀온 순돌이를 불렀다. 이자카야 안에 있던 벚꽃(조화) 아래에서 소주와 삼치구이를 시킨 후 도원결의 비슷하게 했다. 이때부터 여행은 시작되었다.


나름대로 계획을 열심히 했다. 셋 다 모두 계획적인 사람이다. 여행비가 넉넉지 않은 우린 제일 관건이 숙박비를 어떻게 하면 아끼는지에 대한 고민을 했다. 인터넷에서 원터치 텐트를 10만 원에 구입했다. 10인용이라 엄청 여유롭게 잘 수 있다. 하지만 아무 곳이나 베이스캠프를 잡을 수 없는 노릇이다. 산짐승 들짐승은 우릴 가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특히 뱀이라도 나오면 기절할 것이다. 그때 내가 천재적인 방법을 고안해 냈다. 전국에는 초중고등학교가 있으니 운동장에 텐트 치고 자면 안전을 꾀할 수 있지 않을까? 짐승들이 학교 운동장에 돌아다니진 않을 것 같았다. 시험 삼아 동네 근처에 초등학교에 가 텐트도 쳐봤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운동장에서 놀던 초등학생들이 성가셨는데, 우린 방학 때 여행하니 이런 불안요소도 없을 것이다. 매번 이렇게 자는 건 아니고 전국 각지에 있는 친척집에 들러 양해를 구하고 신세를 질 것이다. 그럼 숙박비는 텐트구입비를 제외하여 0원이다.

그다음은 식비에 대한 계획이다. 하루에 점심 한 끼는 사 먹기로 했다. 그리고 웬만하면 요리를 해 먹자며 코펠과 버너를 샀다. 실제로 많이 해 먹긴 했다. 기껏해야 코펠로 밥을 해서 마요네즈와 통조림 참치를 섞어 김에 싸서 먹었다. 혹은 3분 카레를 끓여 비벼먹었다. 실제로 이 여행 이후 2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3분 카레는 물려서 못 먹고 있다. 어쨌든 하루에 식비는 3만 원 내외로 잡았다.

이동수단은 당시 최고의 주가를 올렸던 스쿠터로 정했다. 나는 대림에서 나온 베스비, 진돌이는 로망스, 순돌이는 갤랑이다. 모두 중국산 저가 오토바이다. 그래도 이거 사려고 생애 첫 알바를 했다. 모두 125cc였고 최고시속 100km/h(내리막길에서)지만 짐을 싣고 장거리를 주행하는 탓에 60km/h이상 달리지 않았다. 짐은 각자 배낭가방에 가득 채워 그물로 스쿠터 뒷좌석에 묶어 고정했다. 제일 문제인 10인용 원터치 텐트는 접었을 때 너무 길어서 난감했다. 스쿠터 발판에 직각으로 눕혀 실었다. 스쿠터 폭이 텐트로 인해 차 폭만큼 넓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슨 이런 비효율적인 짐짝을 가져갔는지 이해가 안 되지만, 사실 그때도 이해가 안 되었다. 왜 저렇게 큰 걸 샀을까? 어쨌든 제일 많이 나가는 돈이 기름값이라 예상했다. (당시 휘발유 가격이 상당했다. 1700원대) 글을 쓰고 보니 우린 계획쟁이가 아니라 알뜰 쟁이었다.


드디어 출발하는 날이다. 우리 집에서 다 같이 잤고 다음날 6시에 출발했다. 엄마가 마중을 나와주셨는데, 아이스박스에 쌀과 이런저런 반찬을 싸주셨다. 8월 초이지만 반팔 반바지에 아침부터 타려니 꽤 쌀쌀했다. ‘하남시’라는 표지판이 지날 때만 해도 실감이 나질 않았다.


영화 <트루먼쇼>를 보셨는지? 난 중학생 혹은 고등학생 즈음에 봤다. 주인공 트루먼은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동네가 사실 거대한 스튜디오라는 것을 눈치채고 탈출을 계획한다. 머지않아 산불이 났다며 도로가 통제된다. 다른 방향으로 틀어도 방사능 유출 사고가 났다고 한다. 온 세상이 억지로 트루먼을 막는다. (영화를 보지 않은 극 소수의 사람들에게 스포일러는 죄송)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의외로 이런 생각들을 많이 한다.

‘혹시 나도 트루먼일지도?’


내 손으로 스로틀(스쿠터의 악셀)을 잡고 나의 살던 동네를 벗어났을 때 유독 <트루먼쇼> 생각이 많이 났다. 어느새 ‘어서 오세요. 여기부터 하남시입니다.’ 표지판을 지났다. 방사능 유출 같은 사고 때문에 도로가 통제되는 일은 없었다. 아직 도로를 통제할 엑스트라가 고용되지 않았을까? 경기도 광주의 한옥으로 된 주민센터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이천에서 한정식을 먹고 도자기 박물관에서 구경했다. 용인시에 있는 거대한 사찰 '와우정사'에 도착해 기념사진을 찍어도 별 탈 없이 여행은 계속 되었다. 이쯤되면 트루먼이 아닐지도 모른다.


최대한 경기도는 빠져나가고 싶지만 평택쯤 지날 때 제법 어둑해지고 있다. 아까부터 성가신 정도의 빗줄기가 꽤 굵어졌다. 오늘은 이쯤에서 멈추고 근처 아무 초등학교로 향했다. 비가 많이 내려 운동장보다는 구령대 지붕 밑에 텐트를 설치하면 비도 피할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 여행 전 연습한 대로 원터치 텐트를 신속하게 설치하고 배도 많이 고프니 밥을 하려고 쌀과 코펠 그리고 버너를 준비했다. 생각보다 우린 팀워크가 잘 맞았다.

- 야 이놈들아 여기서 뭐 하는 짓이야!


학교 안에서 순찰 중이시던 경비아저씨가 호통을 쳤다.


- 저희 여기서 자려고 하는데요? 내일 첫새벽에 떠날 건데요?


너무 합리적인 이유라 당연히 될 줄 알았다.


- 헛소리 말고 썩 꺼져!


안되었다. 지금(30대) 같았으면 아이고 수고하십니다~ 어르신 하면서 담배 한 갑이라도 쥐어주며 협상 테이블을 열기라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르신의 호통에 끔뻑 기가 죽은 21살 남자 셋은 주섬주섬 정리를 하며 순순히 말을 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텐트 치기 전에 말해주시지 라는 무례한 생각도 했다. 가방에 버너와 코펠을 넣고 원터치 텐트는 다시 접어서 오토바이에 실었다. 짐을 싣고 초등학교를 나오는데 비가 더 거세졌다. 이쯤 되면 근처 숙박시설 아무 곳에 갈법한데 근처 경찰서로 향했다.


- 안녕하세요. 저희가 여행 중이고 텐트를 치고 싶은데 어디 적당한 곳이 없을까요?


야간근무 중인 두 명의 경찰관 아저씨는 이 거지꼴을 하고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는 남자애 세 명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잘 설득을 해야 하는데 눈빛은 너무 간절하다. 진짜 이러다가 이 비 오는 야밤에 텐트를 치고 잘 기세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래도 회식 때 안주거리 이야기로 써먹기 딱 좋은 상황을 만들어드렸으니 상부상조한 셈이다.

- 저기 공원이 하나 있긴 한데, 비가 이렇게 와서 좀 위험할 것 같은데요?


여행 첫날부터 숙박비에 돈을 쓰는 건 원칙에 맞지 않았다. 반드시 공짜로 자고야 말겠다는 이상한 사명감이 있었다.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경찰관님이 알려주신 공원에서 자야 했다.(영원히, 싸늘하게) 하지만 현명한 어른(게다가 경찰)이 ‘위험’하다고 확실하게 말해줬다. 어쩔 수 없이 모텔로 향했다. 모든 것이 자존심 상했다. 비가 들이닥치지 않은 모텔의 실내 주차장도 남자답지 못했다. 어두컴컴한 모텔 로비에서 남자 셋이서 ‘방 있어요?’ 하는 것도 자존심 상했다. 홀딱 젖은 몸을 따뜻한 물에 샤워하는 것도 너무 남자 답지 못했다. 제일 처음 샤워를 마친 진돌이가 물기를 말리고 벌거벗은 채 침대에 누웠다.


- 모텔이 좋구나~


순돌이도 샤워를 한 뒤 침대에 누웠다.

- 모텔이 되게 좋은 거였구나?

마지막으로 나도 샤워를 해 누워봤다. 반 자동으로 모텔 찬양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침대는 매우 안락했고 하루 종일 달라붙은 세균과 이물질은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그렇게 호들갑을 떨고 나니 저녁도 못 먹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밤 9시가 지났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주변에 아무 식당 가서 뭐라도 먹으면 뭐든 맛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린 이미 낮에 이천에서 한정식을 먹었다. 게다가 예상에도 없던 숙박비도 써버렸다. 식비까지 지출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이렇게까지 짠내나게 하지 않아도 되었다.)


편의점에서 햇반과 3분 카레를 사 와서 버너와 코펠로 데웠다. 출발하기 전 어머니께서 아이스백에 싸주신 몇 가지 반찬이 생각났다. 멸치, 깻잎, 고사리가 정성스럽게 반찬통에 담겨 있었다. 집에서 맨날 나오는 반찬이지만 거들떠보지도 않는 반찬이기도 했다. 평소에 음식을 가리는 것 없는 진돌이가 깻잎 한 장을 밥에 올려 먹었다. 너무 맛있다고 호들갑 떨길래 나도 한 번 먹어봤다. 어리둥절했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손과 발을 묶어 놓고 주둥이를 벌려 넣어줬어야 했다. 너무 맛있어서 여태 반찬투정으로 고생한 엄마 생각이 나 속으로 울면서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그러나 울진 않았다. 울어야 재밌는 글이 될 텐데 왜 울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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