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당나귀 발타자르(1966, 로베르 브레송) 리뷰

by 김명준

(에밀 시오랑 스타일로)



* 발타자르는 삶을 갈망하지 않는다. 삶이란 손에 잡히지 않는, 잡을 수 없는 구름에 불과하다.


* 발타자르는 브레송의 미니멀리즘이 허락하는 유일한 생명이다. 그에게 필요한 건 당장의 풀, 당장의 쉼터 뿐이다.


* 누구는 그에게 물을 부어 세례를 주고, 누구는 그를 학대하고, 누구는 그를 성자로 모시고 등등… 뭐가 됐건 그는 초원에서 태어나 초원에서 죽는다. 인간들이 의미를 부여하기 전, 감정을 투사하기 전, 그리고 마침내 태어나기 전 상태로 돌아간다.


* 브레송은 연기를 거부한다. 가식을 거부한다. 무표정이 때로는 표정보다 더 진실할 수 있다는걸 브레송은 간파한다.


* 발타자르는 배우가 아니다. 가축도 아니다. 말할 수 없는 것, 말해질 수 없는 것, 보여질 수만 있는 것이다.


* 칸트는 무관심적 관조를 이론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브레송에게 정직한 관조란 더 많은 이론이 아니라 더 적은 조작이다. 그의 전략은 무관심하지 않다. 오히려 관객의 능동적 참여를 요구한다.


* 레비나스마저 간과했던 동물의 얼굴, 발타자르의 무한한 타자성이 스크린을 뚫고 나를 타격한다.


* 비트겐슈타인은 침묵을 말한다. 브레송은 침묵을 한다.



* 발타자르는 우리의 이해범위를 넘어서있다. 그의 울음소리조차 전혀 예상치 못한 때에 나온다.



* 메를로 퐁티가 말했듯, 맹인에게 지팡이는 확장된 신체다. 마찬가지로, 브레송에게 카메라는 확장된 눈이다. 그것은 인간의 선택적 시야를 거부하고 더 구체적이고 선명하게 관조하기 위한 눈이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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