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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석 Oct 25. 2024

바닥에서 천장까지, 생명을 품은 불국정토

국립중앙박물관 국보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






  ‘석탑’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많이 떠오르는 모습은 무엇일까요.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신라 문무대왕 전설이 서린 경주 감은사지 석탑의 견고함, 경주 여행의 필수 코스로 손꼽히는 불국사 석가탑의 균형미와 다보탑의 화려함, 온전한 형태를 갖추지 못하여도 절절히 느껴지는 익산 미륵사지 석탑의 장엄함..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여러 석탑들의 공통점은 바로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왼쪽부터 불국사 다보탑,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 익산 미륵사지 석탑의 전경 [국가유산포털]



  우리나라 국토는 산의 비중이 큰 덕분에 크고 많은 돌을 구하는 일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선조들은 많은 석조문화유산을 남겼는데 대다수가 화강암으로 제작된 것입니다. 국토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암석인 데다 견고해 조각을 하기에 적합하였기 때문이지요. 화강암은 굉장히 깊은 지하에서 마그마가 굳으며 형성되는데 규소가 많고 상대적으로 칼슘과 마그네슘 같은 염기성을 띠는 성분을 적게 갖습니다. 이는 토양을 산성화 시키는데 한몫하여 우리나라의 발굴현장에서는 인골과 같은 자료가 드물게 확인되기도 하지요. 그런데 우리나라 석탑 중에도 대리암으로 만들어진 탑이 있는데 바로 국립중앙박물관 1층 안쪽 공간을 바닥부터 천장까지 꽉 채우고 있는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1층 역사의 길에 자리하고 있는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 ©이석



  대리암은 석회암이 상상하기 힘든 굉장히 높은 열과 압력을 받아 생성되는데 색상이 화사하고 층층이 쌓인 예쁜 무늬가 나타나기도 해서 오늘날에는 건축 재료로 많이 쓰이고 있지요. 이럴 경우에는 대리암이 아닌 대리석으로 불리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대리석, 혹은 영문명인 마블이 훨씬 친숙한 느낌이 드네요. 원래 모습인 석회암은 탄산칼슘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탄산칼슘은 바닷속에 사는 생물들이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알록달록 예쁜 산호에도 있고, 우리가 맛있게 구워 먹는 조개와 굴 껍데기에도 가득 들어있지요. 그래서 석회암은 주로 이런 생물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에서 만들어지고는 합니다.



왼쪽부터 일반적인 화강암, 화강암 단면, 그리고 대리암 단면 [네이버 지식백과]



  석탑들은 보통 야외에 있는 절에 있는데 경천사지 석탑은 왜 실내에 자리하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도 대리암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이 탑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무단으로 반출되었다 1918년에 돌려받아 경복궁에 보관하던 것을 1960년에 경복궁에 세우게 되었는데, 탄산칼슘으로 된 대리암이 산성비를 맞으면서 부식되어 1995년부터 이루어진 10년간의 보존처리를 거쳐 지금의 자리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경천사지 석탑처럼 대리암으로 만들어진 또 하나의 탑, 서울 탑골공원에 있는 원각사지 십층석탑 역시 부식 방지를 위해 보호시설을 갖추고 있지요. 심지어 생김새까지 닮은 두 석탑에 큰 차이가 있다면 본래 있었던 위치에 돌아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일 것입니다. 원각사의 자리는 지금의 탑골공원이지만 경천사는 경기도 개풍군, 옛 개성이니까요. 고향을 찾아가지 못한 덕분에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합니다.



박물관 실내에 있는 경천사지 십층석탑 [©이석] , 야외에서 보호각과 함께 있는 원각사지 십층석탑 [국가유산포털]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경천사지 십층석탑은 무려 13.5m로 약 아파트 5층 정도의 높이입니다. 경천사지 석탑에는 사자, 용, 연꽃, 나한, 손오공과 저팔계 등 <서유기> 등장인물들과 부처님이 법회를 여는 장면들이 새겨져 있는데 박물관 계단을 따라 올라가며 석탑에 나타난 조각들을 감상하다 보면 화강암으로 만든 탑에서는 쉬이 보지 못했던 정교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비교적 무른 대리암으로 만들었기에 섬세한 조각이 가능했던 것이지요. 참고로 경천사지 석탑에 새겨진 이야기들은 매주 수, 토요일 저녁 8시에 박물관을 방문하면 탑에 직접 비추는 멋진 미디어 파사드로 보실 수 있습니다.


  그나저나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사람이 새기지 않은 무늬들이 보입니다. 특히 석탑 밑부분의 얼룩말처럼 세로로 이어지는 줄무늬들이 눈에 띠지요. 이 부분은 복원과정에서 사용된 새로운 대리암이라고 합니다. 관람객의 시선으로는 찾기 힘들지만 심지어 석탑 어딘가에는 바다나리 화석이 보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작은 가시로 된 피부를 지닌 극피동물의 일종인 바다나리는 꼭 식물 같아 보이지만 불가사리의 멀고도 먼 친척쯤 되는 동물입니다. 그 이름처럼 생긴 건 나리꽃 같기도 한데 바닷속을 헤엄치고 해저에서 걸어 다니기도 하지요. 유튜브에 sea lily walking이나 바다나리를 검색하면 신기한 영상을 보실 수 있어요.


  석탑 얘기를 하면서 갑자기 바다나리 설명을 한 까닭은 이 동물의 화석이 발견된 덕분에 경천사지 석탑을 만들 때 사용한 대리암을 어디서 가져왔을지 추측해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다나리는 고생대에 지구에 등장해 진화를 거듭하며 아직까지 살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강원도 영월과 태백 지역에서 화석이 나타나기 때문이죠. 강원도는 석회암과 대리암이 넓게 분포하고 있어 많은 돌을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석탑의 원래 위치가 옛 개성이기도 하고, 석탑과 강원도 대리암을 직접적으로 비교한 연구는 없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추측에 불가합니다.


  석탑에 새겨진 다양한 문양들은 고려사회에 등장한 다양한 불교사상들을 보여줍니다. 불교에서 이상적인 곳은 번뇌에서 벗어나 부처님이 사시는 불국정토일 것입니다. 여러 장면을 탑에 새겨 설법하고 불국정토를 이루고자 했던 고려인들의 마음 덕분에 의도치 않게 훨씬 더 오랜 과거에 살았던 생명까지 석탑에 새겨지게 되었으니, 모든 생명을 존중하라던 부처님의 가르침이 돌 속까지도 전해진 모양입니다.





[참고자료]

・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 국가유산 지식이음 2006년 국립문화재연구소(현 국립문화유산연구원) 발간 경천사십층석탑 보고서


[사진출처]

・ 경천사지 십층석탑: 직접 촬영

・ 이 외 석탑: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 화강암과 대리암: 네이버 지식백과 천재학습백과, 기본광물암석용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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