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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야 Dec 08. 2022

사람다운 사람이란

넷플릭스 드라마, < 웬즈데이 >를 보고


한참 중국 드라마에 빠져 있다가 오랜만에 켜 본 넷플릭스.


공교롭게도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을 발견했다.



다름아닌, 팀 버튼 감독의 < 웬즈데이 > 였다.

팀 버튼의 주 특기라고나 할까?

'빈정거리는 희망'

염세적인 시각으로 따뜻함을 이야기한다.  

나는 막연한 긍정을 싫어한다. 막연한 긍정은 좌절을 부르고, 더 깊은 늪에 빠지게 하는 법이다. 그렇다고 굳이 모든 것을 삐딱하게 바라보고 싶지는 않다. 불평 불만을 쏟아내기에, 살아가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는 행복하고, 세상은 아름답다.

그것은 마치, 모두에게 차가운 듯 싶어도 포용하는 '웬즈데이'의 캐릭터와도 들어맞는다



그에 반해 룸메이트, 이니드의 경우에는,


겉으로 보기엔 아무 생각 없고, 마냥 밝은 것 같아도무한한 긍정 속에 상처를 숨긴다.


별종 중에서도 별종.

변신하지 못하는 늑대인간이라니.


그렇게 너무나도 다른 둘은, 같은 기숙사를 써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엮이게 된다.


곧잘 다투기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갈등을 빚기도 하지만, 절대적일 것만 같던 둘의 세계관은 점차 서로를 물들여 간다.


흑과 백이 아닌 회색.

즉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개인적인 견해일 뿐이지만,

작품을 감상하는 내내 뮤지컬 < 위키드 >가 떠올랐다.


태양에게 이끌리는 작은 혜성처럼
바위를 만나 휘도는 시냇물처럼
너라는 중력이 손을 내밀어
나는 너로 인하여
달라졌어 내가

< 위키드 >의 엘파바와 글린다는, < 웬즈데이 >의 두 친구가 그랬던 것처럼, 공통점이라고는 살아있다는 것 하나 밖에 없을 정도로 정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연찮게 같은 방을 쓰게 되면서 그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가 되고, 일련의 사건을 통해 서로를 변화시킨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인종이든, 성별이든, 성적 취향이든, 학업이든, 관심사이든.

'우리'를 '너'와 '나'로 나누는 것은 마음을 열지 못한 겁쟁이의 핑계일지 모르겠다고.


그게 누구든 사람이라면 공통적으로 나누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인간다움' 그리고 '휴머니즘'을 규정하는 것은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 속에서 살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뿐이다. 그 나머지의 것들은 어쩌면 사회가 만들어낸 고정관념일 뿐일지 몰랐다.  


사람이란 반드시 이래야 한다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겐 폭력일 테니까.


그것이 설령 '웬즈데이'와 같이 공감능력이 결여되었고, 조금은 기괴한 형태를 띄고 있다고 해도.


그녀 또한 그녀 자체로 인정받을, 사랑받을 자격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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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매체나 좋아하는 셀럽이 했던 '멋있는 말'을 따라 쓸 때가 있다. '빈정거리는 희망' 또한 가수 이승윤의 1집 소개글에서 따온 말이다. 내가 영감을 준 그 모든 아티스트를 존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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