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과 기억사이
나는 가을의 냄새를 좋아한다.
유독 그 냄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내 생일이 추석 일주일 전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요즘은 9월에도 늦더위가 기승을 부려 추석 즈음에도 땀이 맺히지만, 내가 어릴 땐 가을과 겨울이 살짝 맞닿아 있던 듯한 쌀쌀한 바람이 기억 속에 스며 있다. 그 공기의 결, 설렘의 냄새, 그리고 사람들의 표정. 한 해의 수확을 앞둔 풍요로움과 명절을 준비하는 분주함이 뒤섞인 그 시기가, 나에게는 ‘내 생일’이라는 사적인 기쁨과 겹쳐져 있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매년 그 즈음이면 색동한복을 입고 동네를 누비며 생일 기분을 만끽했다. 단으로 만든 색동 한복 안에 긴팔 셔츠를 받쳐 입고, 코끝이 시큰해질 정도의 공기를 가르며 신나게 뛰어다녔다. 그 기억은 지금도 내 감각 안에 또렷하게 남아 있다. 많은 것들이 흐릿해지고 지워졌지만, 유독 그 장면만큼은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한복’을 좋아했다.
어릴 때도, 커서도, 이유 없이 비단 원단에 끌렸고, 옷을 만들 줄도 모르면서 원단을 사들이곤 했다. 바느질을 배우기 전부터 한복 원단을 수집하던 그 시절의 나를 보면, 지금의 내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설명된다. 이유 없는 끌림은, 결국 이유 있는 운명이었다.
한복을 만들 줄 몰랐던 시절, 나는 아이들이 입을 명절옷을 한국에 다녀올 때마다 빠짐없이 사들고 돌아왔다. 정작 입히는 건 며칠도 안 되는데도, 명절이면 어김없이 손수 챙겨 입혔다.
한복을 입힌 아이들을 바라보며 나는 마치 한 시대의 시간을 그들에게 되살려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아이들 입장에서는 조금 난감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나에게는 무척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그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었을 무렵, 나는 한복을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손바느질로 시작된 나의 바느질은, 어느덧 웬만한 기본 한복은 만들어 입힐 수 있게 되었고, 입히고 싶은 것들은 내 손으로 만들어 입혔다.
옷감을 재단하고, 색동을 줄맞춰 바느질하고, 옷고름을 하나하나 달던 그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뼈대였다.
나는 이제, 그때 모아두었던 비단 원단들을 전통함 안에 고이 보관하고 있다.
전통함은 단지 물건을 넣는 상자가 아니다. 나에겐 과거의 기억을 담아두는 공간이다.
그 안에는 내 아이의 첫 명절 사진이 있고, 내 첫 바느질 한복이 있고, 사두기만 하고 쓰지 못했던 원단들도 있다. 바깥에서 보면 그저 고운 문양과 한지로 만든 조형물에 불과하지만, 그 속을 열어보면 나의 시간이 켜켜이 겹쳐져 있다.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어쩌면 내가 전통함을 만드는 이유는, ‘지금 이 순간’을 기억 속에 저장하고 싶기 때문은 아닐까?
그 안에 마음을 담고, 시간을 담고, 사람을 담는다.
비단지를 붙이고, 한지로 엮고, 손끝으로 꿰매서.
그렇게 만든 전통함은, 나의 사적인 기록이고 동시에 누군가의 기억이 될 수 있는 선물이다.
예전에 사두었던 원단 중 아직도 손대지 못한 것들이 많다.
그것들을 보면 ‘언젠가 이걸로 무엇을 만들까?’ 생각하곤 했는데, 지금은 알겠다.
그 원단들이 기다리고 있던 건 결국, 내가 공예가가 되는 이 길이었다는 걸.
닭이 먼저였는지, 계란이 먼저였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결국 한복을 사랑했고, 전통공예를 사랑했고,
그 모든 감정이 지금의 나를 이끌고 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오늘도 한지 위에, 바느질 선 위에,
전통함의 뚜껑을 닫는 그 손끝에 머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