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한지실과 숨결

나를 만드는 반복

by Grace Lim

어떤 일은 피(blood)로 이어진다. 내가 공예가로 살아가게 된 이유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그 끝에는 언제나 할아버지가 계신다. 도편수, 즉 절을 짓는 목수였던 할아버지. 나는 어릴 적 그분의 공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그 시간은 어린 나의 감각과 기억 속에 조용히 각인되어 있었다.


정확히 무엇을 배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보고, 듣고, 느끼며 쌓인 것들은 어느 순간 내 안에서 방향이 되어 있었다.

대패질로 매끄럽게 다듬어진 나무 표면 위로 연필로 조심스레 선을 그으시던 모습. 뾰족하게 잘 깎아 귀 뒤에 꽂아 두셨던 연필 한 자루. 도구를 다루는 손길은 조용하고 단정했고, 공방 한쪽 벽에 빼곡히 걸려 있던, 직접 손으로 만드신 연장들은 마치 장인의 호흡 같았다.


겨울이면 할아버지는 대패밥을 모아 아궁이의 불쏘시개로 사용하셨고, 마당에선 장작을 패셨다. 거친 듯 보이지만 정갈하게 떨어지는 도끼의 결, 장작이 쩍 갈라지는 소리, 그리고 다시 고요해지는 마당. 그 장면들은 내 유년의 배경이자, 오늘날 내가 한지를 자르고 붙이고 엮는 그 모든 과정의 ‘결’이 되었다.


할아버지께서 지으신 집은 못 하나 없이 전통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집에선 모든 것이 손으로 만들어진 시간 속에 있었다. 삐걱이는 문, 손때 묻은 대문 손잡이, 안방 천장 너머로 들리는 나무 구조의 숨소리. 그 숨결은 지금도 내가 작업하는 공간 안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나는 가끔 내가 하는 모든 공예가 ‘그분의 삶을 복원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되살리는 행위. 그리움과 존경이 섞인 손끝으로 과거를 다시 짜 맞추는 듯한 기분. 내가 만드는 지승의 줄, 줌치한지의 결, 전통함 속의 구조 하나하나에 그런 감정이 깃들어 있다.


특히 ‘한지실’을 꼬아 작업할 때면, 마치 할아버지의 연장 하나를 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분도 나무를 결을 맞추며 건축의 구조를 이루셨고, 나는 한지를 꼬고 붙여 또 다른 구조를 만든다. 재료는 다르지만, 방식은 다르지 않다. 무언가를 손으로 이어 붙여 가는 반복, 그 안에서의 정성과 집중, 실패와 재도전.


그러니 어쩌면 나의 공예 DNA는 그분의 유산이다. 기법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로 이어진 것. 쉽게 하지 않고, 꾸준히 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 공을 들이는 자세. 나는 그분께 그런 공예의 정신을 배웠다.


이제 나는 내 딸과 아들에게 또 다른 방식으로 이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아직은 어린 그들이지만, 언젠가 내가 한 땀 한 땀 꿰매고 엮은 것들이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기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날이 올 것이다. 마치 내가 할아버지의 연필 한 자루, 연장 하나, 대패밥의 냄새를 기억하듯이.


어느 날 누군가 내 작품을 보고 ‘이건 누가 만들었나요?’라고 물을 때, 나는 단순히 내 이름만 말하고 싶지 않다. 그 작품 안에는 할아버지의 손끝, 어머니의 가위질, 내 아이의 숨결, 그리고 나의 오늘이 함께 엮여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한지실을 꼬고, 종이를 붙이며, 숨결을 잇는다. 이 반복이 내가 나를 잊지 않게 해 준다. 나를 이 자리까지 이끈 모든 손길들에 대한 조용한 헌사.

한지실의 숨결은, 곧 나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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