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시작과 끝

<주제 글쓰기-집>

by 송미쪼

악세사리에 관심이 없다.

명품백은 한번도 갖고 싶은 적이 없었고,

자동차도 이동만 가능하면 되니 주차도 간편한 경차만 원한다.

한마디로 당최 남에게 보이는 거 비싼 거에는 그닥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 내가 간절히 원하고, 늘 들여다보며 꼭 갖고 싶어하는 게 있었으니...

그건 바로 집..


왜 하필 집이란 말인가.

매일 바꿔가며 나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악세사리였다면...

한달 월급 투자해서 기분 전환할 수 있는 가방이었다면...

2년 열심히 모아서 갚을 수 있는 자동차였다면 좋았을걸...

몇 십년 월급을 부어도 가질 수 없고, 남편과 둘이 벌어도 겨우 화장실 하나 살까 말까한 좋은 집이 난 왜 이토록 갖고 싶은 걸까...

(아니다. 말 그대로 '갖고 싶'었으면 좋았을 텐데 난 단지 '살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그래서 집을 갖지 않고 살기만 하며 2년마다 전세로 옮겨다녔다. 그때 '갖고 싶'은 집을 가졌다면 지금쯤 참 좋은 집에 살고 있을 거다.)


시작은 아마도 화장실이었을 거다.


태어나면서 살았던 집은 여러 가구가 함께 쓰는 집이었다. 우리집은 가게와 연결되어있어 앞으로는 가게 문으로 밖을 나갈 수 있고 방쪽으로 가면 마당과 연결되어 있었다. 아침밥을 먹으면 자연스럽게 마당에 모여 여러집 아이들이 함께 놀았다. 부모님들이 집에 와서 다른 집 아이가 우리 안방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어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밥 먹을 때만 각자 자기 집으로 갔다가 이방 저방 옮겨 다니며 놀았고 심심하면 대문을 열고 나가 다른 마당을 가진 아이들과도 놀았다. 중앙에 있는 마당은 네 집이 공용으로 쓰는 곳이었고 마당 끝에 화장실이 있었다. 어려서 혼자 뒷처리가 어려워 큰일을 볼 때면 엄마와 꼭 같이 가야했다. 가게에서 일을 하면서 애 넷을 키우는 엄마는 아이들이 원할 때마다 멀리 있는 화장실에 가기가 쉽지 않았을 거다. 급할 때 엄마 없이 화장실에 갈 때면 볼일을 보다 목이 터져라 엄마를 불러댔다. 무서운 할아버지가 쓰는 가장 큰방이 있는 집이 주인집이었다. 콕 집어 말해주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될 수 밖에 없는 집주인의 위엄이 있었다. 주인 할아버지는 큰소리가 나면 '어험' 하고 화를 냈다. 화장실에서 악을 쓰며 엄마를 부르다 할아버지의 호령이 있으면 얼른 소리를 그쳤다.


두번째 집은 우리가 주인이었다. 하지만 누가 주인인걸 알기가 쉽지 않았다. 다른 집들과 똑같이 장사를 했고 방 크기도 같았다. 무엇보다 위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번에도 마당 끝에 화장실이 있었다. 이제는 혼자 뒷처리를 해야 하는 초등학생이었다. 작은 것은 요강으로 해결 가능했지만 큰 것은 공용 화장실을 이용해야만 했다. 밤에는 큰 용기 없이 화장실에 갈 수 없었다. 언니를 꼬셔서 어떻게든 밖에서 노래를 부르게 했고 자다가 언니가 부르면 나도 영락없이 나가서 노래를 불러야했다. 그 시절에는 화장실에 관련된 무서운 이야기가 유난히 많았는데, 생각해보면 지금 화장실은 전혀 무섭지 않아 아이들의 공포심을 끌어올리기에 그다지 유용한 소재가 아니라 다 사라진 것 같다.


초등학교 5학년이 끝나갈 때, 다수의 아이들이 동시에 전학을 왔다. 이게 뭔일인가 싶게 예쁘고 멀끔한 아이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각반으로 쏟아졌다. 알고보니 우리 동네 근처 아파트가 동시에 입주를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6학년,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 그 친구들 집에 놀러가게 됐다. 아파트 마다 구조가 다 다르게 만들어져있고, 같은 아파트여도 동별로 평수가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여러 집을 다니다보니 어떤 아파트 놀이터가 좋은지, 롤러스케이트 타기에 적합한지, 몇평이 넓은 아파트인지, 고층이 좋은지 저층이 좋은지 한꺼번에 아파트에 대한 정보를 습득했다. 아이들은 누구 집이 넓네, 어떤 아파트가 좋네, 누가 부자였네, 누구는 보이는 것보다 가난했네 이러쿵 저러쿵 떠들어댔다. 나는 함께 모이는 곳이 마당이 아닌 거실이라는 것과 각자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있을 수 있다는 것, 무엇보다 화장실이 집안에 있다는 점 때문에 아파트 집은 다 좋게만 보였다. 드라마에 나온 큰집이 연예인들만 사는 곳이 아니라 일반 사람들도 살 수 있는 곳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아무도 모르지만 우리집이 주인집이라는 사실에 나름 자부심이 있었던, 아무렇지도 않게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놀았던 나는 그 이후로는 절대 친구들을 집으로 부르지 않았다.


어느 날 아빠가 우리집 건물 4층으로 이사를 갈거라고 했다. 그 집은 화장실도 안에 있고 거실도 있다고 했다. 건물에는 학원이나 상가만 있는 건 줄 알았는데 집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무엇보다 우리가 주인집인데 그렇게 좋은 곳을 놔두고 여러집이 공용화장실을 사용하는 마당 있는 집에 살아야 했던 5년이 억울하게 느껴졌다. 6학년 말이 되었을 때 드디어 화장실이 안에 있는 우리집만 단독으로 사용해도 되는 집에 살게 됐다. 친구들 집 크기의 반 정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원할 때면 언제든지 화장실에 갈 수 있었고, 말하기 싫을 때 방문을 닫을 수도 있었다. 옥탑이라 바로 앞에 우리만 쓰는 마당이 있어 꽃을 키우고 줄넘기도 할 수 있었으며 아래층이 유치원이라 마음껏 뛰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아직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오기는 망설여졌지만 그래도 가끔 불러 우리집은 아파트와 다르게 마당도 있다고 자랑했다. 이 집에 살 때 가장 행복했다.


문구사에서 식당으로 업종을 바꾸며 우리도 드디어 아파트에 살게 됐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아껴 살았던 부모님은 식당 쪽빵에서 지내면서 4남매만 아파트에 남겨두었다. 자매 셋이 화장실 달린 안방을 사용했고 성별이 다른 남동생은 혼자 방을 썼다. 사춘기를 홀로 버티는 남동생은 방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거실은 가족들과 나눌 대화가 없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꿈꾸던 아파트에 살게 되었지만 집이 주는 기쁨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 화장실과 거실은 당연하게 느껴졌고 이제는 내 방이 갖고 싶었고 학교와 가까운 집에서 살고 싶었다. 부모님과 함께 여유롭게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면, 자매가 각자 방이 있었다면, 학교와 가까운 집이었다면 더 행복했을까? 만족이라는 걸 하긴 했을까?


더 좋은 집과 삶을 꿈꾸며 쪽방살이 6년을 선택했던 부모님은 작은 아빠의 사업 실패로 행복을 선물했던 우리 건물도, 첫 아파트도 보내야했다. 우리 부모님이 아파트에서 지낸 시간은 빨래를 하러 잠깐, 쓰레기 버리러 잠깐, 명절 쉬는 날 잠깐 뿐이었다.


그때 난 미래를 담보로 현재를 저당잡히는 삶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주인집이었음에도 힘듦을 참아내는 불편한 집을 선택하고, 따뜻한 아파트 집이 있음에도 쪽빵을 선택하고..결국은 모든 걸 잃고 현재도 미래도 보장받지 못한 부모님의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집을 선택할 때 현재의 행복함을 우선으로 하자고 결심했다. 층간소음에 스트레스 받지 않게 1층을 선택하고, 아이들과 충분히 놀아야 할 때 거실이 넓은 집을 선택하고, 각자 방이 필요할 때 모두 방을 줄 수 있는 집을 선택하자. 집만큼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지 말자...


하지만 내가 부모님 나이가 되어보니, 부모님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너무나 잘 알겠다. 가게를 하며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 살림을 해야 하니 가게에 달린 방에서 살아야 했을 거고, 남동생이 3학년 정도가 되니 혼자 4층 계단을 올라갈 수 있어 그쯤 이사가 가능했을거다. 또 4명의 아이들이 대학갈 나이가 돼 문구사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되어 식당을 선택했을테고, 아파트와 식당 거리가 있으니 조금이라도 잠을 더 자기 위해 식당 쪽방을 선택하셨을거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한 게 아니라 그때의 현재가 간절해서 힘듦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을거다.


지금 또 한번 집을 선택해야하는 순간에 있다. 20년은 살자고 이 집을 선택했으면서 6년이 지나니 더 큰 행복이 있을거라며 욕망이 속삭이며 나를 흔든다. 시작은 화장실이었던 집에 대한 욕망이 어떤 것으로 끝을 맺을지 모르겠다.

끝이 있긴 한걸까?

그때도 갖지 못했고 지금도 갖지 못한 내 방을 갖고 나면 그만할 수 있을까?

결론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번 한번만.응?"이라고 자꾸 말하고 싶다.

가방이었으면, 차였으면 좋았을 걸...에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