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글쓰기-운전>
메타인지를 갖게 된 건 5학년 말..
2학기 말 수업 진도가 다 끝나고 재미있는 활동들을 이것 저것 할 때였다.
운동장 한켠에서 줄넘기를 하고 있는데 멀리 엄마 얼굴이 보였다.
우리집은 학교 바로 앞에 있는 문구체육사였기 때문에
학교에 체육복이나 준비물 등의 문제로 부모님이 종종 학교에 오시곤 했다.
담임 선생님과 엄마가 눈이 마주치자 엄마는 선생님께 인사를 건넸다.
잘 들리지 않아 무슨 이야기를 나누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 말 만큼은
정확히 기억난다.
"그냥 공부 시키세요. 운동 못해요."
난 그때까지 지 잘난 맛에 살던 애였다.
그 동안 잘한다 잘한다 칭찬에 길들여져 가짜 나를 알고 있었다.
운동도, 미술도,음악도 이만하면 잘하는 건줄 알았다.
엄마는 집에 와서 다른 식구들에게 담임 선생님이 이런 말을 했다면서 우습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나에겐 그때의 온도, 습도, 구름의 양, 대화 나누었던 장소, 모든 것이 기억날만큼 충격적이었다.
"나 운동 못하는 아이구나."
그때부터 아이들과 내 실력을 비교해보았다. 객관적으로다가..
메타인지 형성의 출발이었다.
중학교에 가니 체육시간에 본격적으로 구기 종목이 나왔다.
피구, 배구, 농구, 핸드볼까지..
하는 족족 패스 한번 받지 못하는
천하의 몹쓸 운동 신경을 가진 사람이 나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등학교 2학년 체육대회, 시간이 남았는지 미리 공지하지 않은 갑작스러운 경기가 열렸다.
반장을 나오라고 하더니 남자 선생님과 짝을 지어 줄넘기를 몇번 하는지 반별 대항을 한다고 했다.
하필 인기 많은 총각 국어 선생님과 짝이 되어, 줄넘기 끝나면 선생님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얼마나 원망을 들을지 안봐도 훤했다.
크게 돌아가는 줄에 중간에 뛰어 들어가 넘기까지 해야 하는 긴줄넘기는
구기 종목보다도 더 두려운 운동이었다.
도저히 못한다고.. 운동 잘하는 부반장이 나가면 안되냐고 항의 했지만 주최측은 규칙에 어긋난다며 무조건 해야 한다고 했다.
전교생이 지켜보고 환호하는 운동장 한가운데서 얼마나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는지...
줄에 맞을까봐 너무 무서워 선생님 손을 잡고 눈을 질끈 감고 뛰어들어갔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땐 바닥에 대자로 뻗어있는 나를 식겁한 눈으로 내려다보는 선생님이 보였다.
당연하게도 줄넘기는 눈을 뜨고 하는 운동이다.
대학교 첫 체육대회....
몸은 삐쩍 말라서 운동 잘하게 생겼다며 과선배들이 이 종목 저 종목 참가자에 내 이름을 적어놓았다.
그토록 내가 운동 못한다고, 이 몸뚱이에 속지말라고 손목을 잡혀 끌려가며 목놓아 이야기했건만...
으레 잘 못한다고 빼는 겸손한 새내기라고 날 생각해주는 참으로 순진한 선배들이었다.
경기 시작 후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선배들은 진작 내 말을 믿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대학교 체조 시간, 교수님이 갑자기 날 시범 조교로 부르셔서 웬일인가 싶었는데..
역시나 한명을 더 부르더니 좋은 예와 안좋은 예로 구분하여 설명해주셨다.
교수님은 그 뒤로 나를 '뻣뻣이'라 부르시며 어떤 부분이 잘못 되었는지 보여주는 조교로 삼으셨다.
대학교 3학년 여름에는 수영 수업을 위해 전교생이 체육고등학교로 등교했다.
학점이 걸려 있으니 1년 넘게 새벽 수영을 다니며 준비했다.
내가 다니는 수영장은 두달이 지나면 무조건 그 다음 반으로 넘어가야 하는 시스템이라 1년 만에 접영 클래스의 일원이라는 쾌거를 이루었다.
교수님은 라인 3개로 상중하를 나누시고, 접영까지 배운 사람은 '상'으로 가라고 하셨다.
순간 '상'으로 갈까 고민했지만, 메타인지가 형성되었으니 '중'라인으로 입수했다.
1년 이상 배웠고, 접영 클래스이며, '하'는 킥판을 잡고 가는 수준이니 이만하면 내 실력에 맞게 잘한 선택이었다.
교수님은 '중' 라인 아이들에게 자유형, 배영을 시켜보시더니 평영으로 한바퀴를 돌고 오라고 하셨다.
이쯤이야...
뻣뻣이가 물구나무는 못서지만 수영은 할 수 있다고 교수님께 꼭 보여드리고 싶었다.
"준비, 삑" 호각 소리와 함께 호기롭게 출발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뒷통수가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느꼈을 때 교수님은 화통하게 웃으시더니
"뻣뻣이 나와!" 하셨다.
함께 출발했던 친구들은 모두 밖에 나와있었고
난 출발선에서 10미터도 못가고 둥둥 떠 있었다.
수영 학점은...기억나지 않는다..
어른이 되어 '난 운동 신경이 없는 사람이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지했다.
하지만 운동 신경이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사람마다 잘 하는 것이 다 다름을 이해하고,
운동 에피소드를 웃음으로 승화시킬 만큼 마음도 넉넉해졌다.
그러나...
마냥 웃고 넘길 수 없는 반드시 극복해야할 산이 있었으니..
바로 '운전'이었다.
메타인지가 발달하지 못했을 때만 해도 어른이 되면 삐딱구두를 신고
긴 다리를 돋보이며 차에서 내리는 멋진 커리어 우먼이 될거라 상상하곤 했다.
더 이상 지 잘난 맛에 사는 어린 아이가 아니니 운전에 소질이 없을 거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운전은 나 혼자 대자로 뻗어 창피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생명과 직결된 문제였다.
미루고 미루다 서른이 넘었고 아이가 태어났다.
둘째도 계획하고 있다고 하니,
주변에서 아이 키울 때 차가 없으면 너무 힘들 거라고 했다.
어떻게 해서든 운전을 피하고 싶었지만
아이 둘을 데리고 가까운 거리를 택시타며 눈치 보는 것도
짐까지 들고 걸어가는 것도 끔찍했다.
'남들 다 하는데 왜 너는 못하는 거야?'
'그런다고 시도도 안하고 포기할거야?.'
우선 면허나 따고 뒷일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운전학원을 다녔다.
도로 주행 시험을 보는 날 시험관님은 내가 운전하는 모습을 보고 한숨을 푹푹 쉬셨다.
손을 싹싹 빌며 아이 놔두고 나오는게 힘들다며 봐주라고 사정했지만
도저히 통과 시켜줄 수 없다고 하셨다.
내가 시험관이었어도 절대 안된다고 했을거다.
집으로 걸어가며 쌩쌩 달리는 차 소리와 함께 엉엉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두번째도 합격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재시험을 보는 날, 나같은 사람들만 모아 놓았는지
이동하는 차 안에서 네번째네 다섯번째네 다들 불안한 마음으로 서로 물어보지도 않은 자기 이야기를 하느라 바빴다.
나만 못한게 아니다 위안이 됐지만, 나도 그들처럼 될까 겁이 났다.
마지막 유턴을 하고 주차를 했을 때, 시험관님은
"연수 돈주고 꼭 받으세요! 꼭이요!"
"암요. 암요. 그러고 말고요."
몇번 약속을 받고 합격 도장을 찍어주셨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1. 아직도 내 차에는 초보 스티커가 붙어 있다.
2. 멀어도 2칸이 비어있는 넓은 주차 칸에 차를 댄다.
3. 좀 멀다 싶으면 대중 교통을 이용한다.
4. 웬만하면 차선 변경을 하지 않는다.
5. 다음 차도 경차가 될 것이다.
6. 아직도 긴장해서 핸들에 몸을 바짝 붙이고 운전한다.
7. 모르는 길을 갈 때는 도착 시간보다 30분은 일찍 출발한다.
8. 날 끼워준 차에는 꼭 고맙다고 비상등을 켠다.
9. 지구는 둥그니까 이 길이 아니어도 다른 길이 나올거라 생각한다.
10.아이들 라이딩 시기가 끝나면 차는 없애려고 한다.
이것들이 몹쓸 운동 신경을 가진 내가 운전과 타협한 방법이다.
운전을 하며 깨달은 건 무엇이든 10년 하면...
어느 정도는 할 수 있다는 것.
다만 기대 수준을 낮추고 조금 타협하면 된다는 것...
앞으로 운전을 10년은 더 할 것이고 그럼 타협점이 지금보다는 높아질 것이다.
아직 줄넘기와 수영은 성공하지 못했다.
줄이 돌아가도 들어가지 못하고, 단체 줄넘기를 해도 내 발에서 꼭 걸린다.
초등에서 단체 줄넘기는 꼭 지도하는 운동이고 나처럼 줄 트라우마를 가진 아이들이 반에 한명씩은 꼭 있다.
아이들에게 선생님처럼 운동 신경이 없는 사람도 극복했다 알려주고 싶다.
좀 안아픈 줄로 연습해서 들어가는 타이밍을 잡아 줄넘기와도 적당한선에서 타협해보려고 한다.
물이 무서워 그 때 이후 수영은 시도하지 않았고
물놀이를 해도 머리는 집어넣지 않는다.
나이가 드니 수영이 관절에 무리가 안가는 최고의 운동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내 주변에 수영에 빠진 수영 러버들이 많아졌다.
내 몸을 지킬 수 있는 좋은 수단인 수영과도 아쿠아로빅 등으로 가까운 시일내에 협상을 시도해보려고 한다.
새로운 것을 시도해야할 때는 늘 두려움이 엄습해온다.
그럴 때면 운전을 생각하려고 한다.
소질도 실력도 없다면 끈기를 가지고 타협을 시도해보자.
내 타협은 늘 성공일 것이다.
10년이 안되면 15년으로 15년이 안되면 20년으로...
기간을 늘리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