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인증 중고차/출처-현대차그룹
불황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이 몰리는 곳이 있다. 바로 중고차 시장이다. 지난해 국내에서 팔린 중고차는 무려 253만 대, 신차보다 1.5배 이상 많았다.
경기 침체와 고금리로 신차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가격 대비 성능을 중시하는 소비 트렌드가 중고차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제조사와 플랫폼, 렌털업체 등 다양한 주체들이 중고차 시장에 뛰어들며 본격적인 격전이 예고되고 있다.
중고차 시장의 열기는 숫자로 확인된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2024년 국내 중고차 거래량은 253만 9874대로 같은 해 신차 판매량 164만 5998대보다 1.54배 많았다.
올해 1분기에도 이 흐름은 계속됐다. 중고차 약 58만 대, 신차는 40만 대 판매됐다.
그 배경에는 경기 침체, 고금리 지속, 무역 불확실성 등 대외 요인이 있었다. 소비자들이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중고차를 찾기 시작했고, 이에 제조사와 플랫폼이 빠르게 반응했다.
중고차 시장 확대/출처-연합뉴스
직영 플랫폼 케이카(K Car)는 올해 1분기 매출 6047억 원, 영업이익 215억 원을 기록하며 모두 분기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1.8%나 증가했다.
롯데렌탈도 ‘T car’ 브랜드를 론칭하며 본격적인 소매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서울 가양동, 부천에 중고차 매매센터를 열고 자사가 관리한 차량만을 판매한다는 전략을 내세웠다.
시장 참여자는 계속 늘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는 물론, KG모빌리티, 수입차 브랜드 코오롱모빌리티, 중국의 BYD까지 국내 중고차 시장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현대차·기아는 사업 목적에 ‘부동산 개발’을 추가하며 중고차 매매단지 조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롯데렌탈 중고차 브랜드 ‘T CAR’/출처-롯데렌탈, 연합뉴스
삼성증권은 국내 중고차 시장 규모가 2021년 20조 원에서 2026년에는 35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해외 수출도 급성장 중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4년 자동차 수출액은 50억 9300만 달러(한화 약 7조 2080억 원)로, 2018년의 18억 달러(약 2조 5470억 원) 대비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중고차 시장을 둘러싼 가장 큰 변화는 지난 5월 1일에 발생했다. 이날부터 정부가 권고했던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점유율 제한 조치가 해제됐다.
기아 인증 중고차/출처-연합뉴스
2013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며 대기업의 진출이 막혀 있었지만, 2022년 정부는 “소상공인 비중이 낮고 무급 가족 종사자도 적다”며 대기업 진출을 허용했다. 그 이후 현대차와 기아는 중고차 매매업에 등록, 인증 중고차 사업을 준비해왔다.
이들은 단순 판매가 아닌, 고도화된 진단과 품질 관리, 보증 서비스까지 내세우며 소비자 신뢰를 확보하고자 한다.
차량 입고부터 최종 출고까지 7단계 과정을 거치며 270여 항목을 정밀 진단한다. 구매 후 1년/2만㎞까지 무상 수리 보증도 제공된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인증 중고차의 가격이 지나치게 높다는 우려도 나온다. 12년 지난 인증 중고차가 신차 대비 300만~500만 원 정도밖에 싸지 않고, 일부 제네시스급 차량은 출시 1년이 지나도 10%도 가격이 떨어지지 않은 사례가 있다.
현대차·기아의 진출은 기존 중고차 시장에도 변화를 유도했다. 중고차업체들은 공제조합 설립, 보증상품 출시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서며 소비자 신뢰 회복에 힘쓰고 있다.
현대 인증 중고차/출처-연합뉴스
하지만 가격 문제는 여전히 논란이다. 여기에 길어진 신차 대기기간도 변수다. 현대차·기아의 대체재로 다른 국산차를 고려하던 소비자들이 이제는 높은 중고차 가격으로 인해 선택지가 줄어드는 상황이다.
‘신차급 중고차’가 소비자에게는 오히려 또 하나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중고차 시장은 더 이상 ‘중고’라는 단어로만 평가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소비자들은 가격과 신뢰 사이에서 신중한 선택을 해야 하며 기업들은 이 거대한 시장에서 생존을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중고차 시장은 이제 ‘대안’이 아니라,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이 판의 중심에는 대기업, 플랫폼, 소비자 모두가 얽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