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 벤츠 집단 소송 / 출처 : 연합뉴스
“광고만 믿고 샀는데, 이제는 그 차를 몰고 다니는 것조차 불안하다.”
지난해 8월, 인천 청라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벤츠 전기차 한 대가 갑자기 불에 휩싸였다.
이 화재는 무려 5시간 넘게 이어졌고, 주변에 주차된 차량 800여 대가 불에 타거나 그을렸다. 아파트 주민 20여 명은 연기를 마시고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불이 난 차량은 벤츠의 EQE 전기차 모델이었다. 당시 차량은 주행 중이 아닌 ‘주차 상태’였고, 외부 충격이나 사고 흔적도 없었다.
그러나 차량 하부에 있는 배터리 팩에서 시작된 불길은 순식간에 지하주차장을 뒤덮었다.
메르세데스 벤츠 집단 소송 / 출처 : 연합뉴스
원인 조사를 맡은 경찰과 국과수는 4개월에 걸친 조사에도 “정확한 원인은 규명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EQE를 포함한 동종 전기차를 소유한 차주 24명이 제조사인 메르세데스벤츠를 상대로 집단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이들은 화재 사고의 직접적인 피해자는 아니지만, 같은 차량을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불안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며 1인당 1000만 원씩 총 2억 4천만 원의 배상을 요구했다.
이들이 주장하는 핵심은 “제조사가 결함을 알면서도 안전한 차량이라고 광고했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는 배터리 설계가 미흡했고, 화재 징후를 알려주는 경고 시스템이 없었으며, 차량 하부에 보호 장치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메르세데스 벤츠 집단 소송 / 출처 : 연합뉴스
게다가 장착된 배터리 종류에 대해서도 사실과 다른 정보가 제공됐다고 주장했다.
제조사 측은 이 같은 주장에 즉각 반박했다. “화재 5분 전 경고 시스템은 한국에 없는 기준이며, 차량이 출시될 당시엔 관련 기술 요구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배터리 종류와 관련한 정보가 누구로부터 나왔는지도 분명치 않다며 소송 이유 자체를 명확히 해 달라고 요구했다.
재판부는 차주들에게 “결함이 있었다면,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명확히 하라”고 요청했다. 또 인천경찰청의 화재 수사 기록을 정식 증거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메르세데스 벤츠 집단 소송 / 출처 : 연합뉴스
경찰과 전문가들이 내놓은 분석에 따르면, 불은 배터리 팩 내부에서 절연이 파괴되거나 외부 충격이 가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사고 차량은 사고 이력도 없었고, 실제 데이터를 저장하는 장치(BMS)는 화재로 손상돼 분석이 불가능했다.
이번 소송은 단순한 자동차 문제가 아니다. 소비자들이 광고를 통해 믿었던 제품의 ‘안전성’이 실제와 얼마나 달랐는지, 그 간극에 대한 책임을 어디까지 물을 수 있는지를 가리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