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권금성에서
분명히, 오늘은
구름이 너무 자욱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거라고 했었다.
안내원은
그래도 올라가볼 거냐고 물었고,
나도, 사람들도
그냥 고개만 끄덕인 채 발을 옮겼다.
나는 정상 가까운 어디쯤에
말없이 앉아 있었다.
기다렸다기보다는
그냥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던 것뿐인데—
그 순간,
하늘이
잠깐 문을 열었다.
햇살이 장엄하게 쏟아지고,
천 년 넘게 숨 쉬어온 권금성의 바위들이
그 빛을 머금은 채
천천히, 찬란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숨을 죽인 채
그저 바라보았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날, 나는 알았다.
아무리 마음이 간절해도
세상은
자기 뜻이 있을 때에야
그 풍경을 보여준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