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조이

나는 이 감정을 느끼지만, 이 감정은 나를 삼키지 못해.

by 윤슬하


감정은 안에만 있으면 점점 뒤엉키고, 부풀고, 왜곡된다. 그렇기에 글을 쓰던 말로 하던 감정을 외부로 옮겨야 한다. 그래야 감정은 형태를 얻고, 감당 가능한 덩어리가 되어 나를 집어삼키지 않는다.


생각이란 때때로 감정을 반복 재생하는 고통 머신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말로 꺼낼 수 없다면, 차라리 놓아주는 선택을 하는 방법도 있다.


"계속 곱씹기만 하는 건, 그 감정과 나를 모두 괴롭게 할 뿐이다."


물론 그것이 진행가능한 공포라면 다른 일일 수는 있다. 그래도 그것이 일상을 지배하지 않게 두는 것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고 그때 태어난 아이가 '관조이'였다.

관조이는 부드럽고 흐릿한 연회색에 은은한 라일락빛 실루엣을 띄고 있다. 눈은 깊고 조용하게 반짝이며, 마치 모든 감정을 고요히 받아들이는 작은 호수처럼 손에는 작고 투명한 구슬을 들고 있다.


그 안엔 나의 감정 하나가 고요히 담겨 있다.

정을 격렬하게 표현하진 않는다. 대신 그 감정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지켜본다.


무섭거나 슬픈 감정이 와도 도망치지 않는다. 어떤 감정이든 "그럴 수 있지."하고 받아들인다.


끔은 너무 조용해서 나조차 "내가 무감각해졌나?"로 착각할 때도 있다. 하지만 실은,
감정이 자기 안에서 멈추지 않고 흘러가고 있다는 걸 아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아, 이 감정... 또 왔구나."

"이번엔 이 생각으로 나를 지키려는 거구나."

"내가 느끼고 있다는 걸 알아. 하지만 더 이상 난 이 감정 자체가 아니야."


관조이는 내가 끝없이 생각하고 아파하고 되뇌던 어느 날, 그 감정을 휘두르거나 억누르지 않고, 처음으로 '지켜본 순간' 살짝, 피어났다.

그때부터 관조이는 내가 감정의 바다를 건너는 나침반이 되었다.


관조이의 방



조용한 물방울이 떨어지는 작은 연못과 책처럼 생긴 감정기록들이 놓여 있다.

방 한쪽엔 내가 느꼈던 감정들이 작은 유리구슬로 정리되어 있고, 관조이는 그걸 하나하나 천천히 바라본다.


관조이는 말한다.


"나는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나는 그 감정이 아니다."

"생각은 계속 흐르지만, 나는 그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그저 바라볼 수 있다."

용한 죄책감, 이유 없는 초조함, 설명 안 되는 작은 불안 등이 생길 때 관조이는 말한다.

"아, 또 이 생각이 왔구나."

"이거 익숙한 회로야, 전에도 이런 말들 내 안에서 반복되곤 했지. 근데 어쩌면 이 생각은 나를 해치려는 게 아니라 지키려는 방식이었는지도 몰라."

그러자, 감정에 잠식되지 않았다. 생각을 따라가진 않았지만 버리지도 않았다. 그저, 가만히 지켜봤다.


그러니 조금 더 편안해졌다.



생각은 내 진심이 아니야.
그냥 내 안을 잠시 스쳐가는 바람일 뿐.
나는 그 바람을 맞으며
그냥 가만히 흘러가는 바람을 놓아주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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