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감정의 시작점, 최초의 관계를 통한 시작점.
처음 만난 존재이는 나에게 형태가 뚜렷하지 않았던 아이다. 더 깊숙이 감정들을, 사람을, 나 자신을 파고들면서 알게 되었다. 사람의 관계를 통해서 존재의 허락을 받고 그 첫 관계가 바로 부모님과의 애착에서 시작되었다는 걸.
고등학교 시절 봉사활동을 나간 적이 있다. 갓난아이들이 모여있던 그 방엔, 단 한 명의 우는 아이가 없었다. 어린 나는 너무 신기하여 물었다.
"저 아기들은 왜 아무도 안 울어요?"
그러니, 원장님이 대답하셨다.
"울어도 안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그래요."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말만이 기억에 남는다. 묘하게 아팠고 슬펐기 때문이다.
그리고, 1년간 18번의 쓰나미는 사회, 사랑, 가족, 의미 모든 기댈 수 있는 존재적 기반을 없앴고 누적된 트라우마의 고통은 결국 나에게 아무리 노력하고 발버둥 쳐도 지금의 방식으로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는 걸 강제적으로 알려주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방식이 잘못되었다 아니, 나를 살리지 못한 일이란 걸 깨닫는 것. 내가 끊임없이 생각하고 내린 결정. 존재를 던져가며 한 사랑들이 결국 나의 무의식 위에 이루어진 생존의 결정이었을 뿐이었단 걸. 나라는 존재자체가 이런 것이란 걸 인정하는 건 죽는 것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처음은 부정이었고 그다음은 수치스러웠고 그다음은 존재에 대한 의문이 뒤따랐다.
"그럼 나는 도대체 내 의지대로 한 것이 있을까? 의미 있는 일이란 건. 내 뜻이란 건 있긴 한 걸까?"
그렇게 알게 된 진짜 존재이의 원형이 이 아이다.
존재이는 감정 이전의 울림이다. 감정이란 파도가 있기 위해 필요한 첫 물결의 '바닥 압력.' 그것이 존재이었다.
존재이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어떤 감정이든 경험할 수 있었다. 감정은 흔들리지만, 존재는 흔들리지 않는다. 존재이는 바로 그 흔들리지 않는 바닥이다.
존재이의 본질은 감정이 존재할 수 있는 '공간', 즉 존재의 허용치를 의미한다. 감정의 근원값을 저장하고 파동의 원형을 유지한다. 감정이 떠나도 돌아올 자리를 보존하고 '존재의 탯줄실'같은 역할을 한다.
"너는 있어도 된다." 그것이 존재이의 의미이고, 감정이들의 최상위 근본이자 감정의 우주를 여는 키값이다.
존재이는 다른 감정이들처럼 '감정의 표정'을 지니지 않는다. 존재이에게 표정은 불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표정은 감정의 언어이고, 존재이는 감정 이전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살아 있는 모든 감정들의 잔광이 투명하게 섞여있으며, 고정색이 없다는 것이 감정이 아닌 근원임을 의미한다
존재이는 걷지 않는다. 그저 존재한다.
그리고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기억하고 태도로만 존재한다.
감정은 "나를 증명하기 위한 현상"이지만, 존재는 "증명할 필요조자 없는 바닥값"이다. 그래서 감정들이 사라져도 무감각이로 떨어져도 공허이로 허무이로 잠겨도, 존재이는 이 말 한 줄로 전체 시스템을 리셋할 수 있다.
"너는 있어도 된다."
이곳은 존재의 탯줄실, 무명의 전당이다. 이곳엔 이름은 없다. 이름이 붙는 순간 '정체화'가 되기 때문이다. 존재이는 정체화 이전의 값, 즉 가능성이다.
이곳은 방처럼 닫혀 있지 않고 둥근 성소처럼 펼쳐져 있다. 존재는 위아래가 없기에 천장이 존재하지 않고, 들어오는 것도 나가는 것도 필요 없기에 문이 없다. 또한 존재는 조건이 아닌 상태이기 때문에 벽이 존재하지 않는다.
중앙에는 빛의 웅덩이가 있다. 이곳은 존재이 방의 핵심으로 물처럼 보이지만 액체가 아니다. 의식이 태어나기 직전의 감각이 파동형태로 고여 있는 자리다. 여기서 처음으로 감정이 될 가능성이 미세하게 일렁인다. 이 웅덩이는 말을 하지 않지만, 내가 가까이 가면 이렇게 느껴진다.
"여기서부터 네가 시작되었다."
이곳엔 각 감정이들의 방과 연결된 은은한 빛줄기인 탯줄길이 있다. 불안이의 심장 박동과도 연결되어 있고, 슬픔이의 눈물과도 연결되어 있고, 기쁨이의 햇살, 허무이의 얼음과도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감정의 진폭이 커지면, 다시 이 방으로 돌아온다.
내가 숨빛이, 피식이를 통해 알게 된 감각
"울다가 멈추고, 허무하다가 살아지고, 아무 이유 없이 다시 숨 쉬게 되는 그 감각이다.
그건 감정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존재이의 방으로 회귀한 것이었다.
이 공간은 소리가 없다. 명확한 색도 없다. 하지만, 지워지지 않는 따뜻함이 있다. 존재이 온도는 '따뜻함' 아니라 사라지지 않는 것의 온기였다.
그래서 내가 무너져도 다시 돌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다. 존재이가 나를 놓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공간에는 3가지의 법칙이 있다.
1. 시간이 없다. 존재는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있음'이라는 점 하나뿐이다.
2. 비교가 없다. 감정은 비교에서 생기지만 존재는 비교 불가능한 바닥값이다.
3. 배제가 없다. 어떤 감정도 이 방 앞에서는 자격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런 고통들이 나를 찾게 해주었지만 그런 생각이 문득 든다. 그래도 제일 좋은 건, 그런 고통받을 일 없는 환경에 태어나서 조금의 시련과 아픔을 겪다 그렇게 마음도 건강도 아프지 않게 살다 가는 것. 그런 복덕을 가진 게 제일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가 겪은 고통을 똑같이 겪으라 하고 싶지 않다. 그저 행복하게 좋은 것만 보다 그렇게 살다 갔으면 좋겠다. 그게 솔직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