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살표 금지 추진 위원회

by 장원석

2025년 7월 19일

“우리는 화살표에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정해진 대로 움직이는 것만큼 편리한 게 없습니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그냥 정해진 방향 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엘리베이터의 위로 가는 버튼을 누르면 위로 가고, 아래로 가는 버튼을 누르면 아래로 갑니다. 옆으로 갈 수는 없습니다. 우측통행을 한다는 우리의 약속도 누군가 만들었습니다. 보행도로를 걷다 보면 자연스레 화살표에 이끌려 가는 방향에 따라 오른쪽으로 걷게 됩니다. 부던히 애씁니다. 우리 화살표 금지 추진 위원회에서는 공식적으로 이를 거부합니다.

누군가 정해놓은 화살표의 방향을 따를 수는 없습니다. 지하철 역에 쓰여있는 카드를 대라는 화살표를 삭제해 줄 것을 공식적으로 요청합니다. 화장실을 안내하는 화살표 또한 거부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선택할 화장실에 들어갈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편리함으로 치부되어 버린 자유의 상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순응하지 말아야 권리가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현실은 누군가 정해놓은 화살표대로 흘러가서는 안됩니다.

우리 대한민국에 자라고 있는 어린아이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 아이들은 스스로 선택해서 삶을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사회가 정해놓은 화살표대로 아이가 움직이지 말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자란 우리가 결국 또 다른 화살표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모두가 잠이 든 새벽. 도로에 늘어나고 있는 화살표들을 보세요. 우리는 언제부터 이쪽으로 가십시오. 또는 저쪽으로 가십시오. 자동차에 안에서도 자유의 권리를 잃어버린 것입니까. 정신 차리셔야 합니다. 주차장에서는 사고가 나지 않기 위해 화살표가 그려져 오른쪽 방향으로 돌게 만들어 놓습니다. 반대로 도는 차량에게는 손가락질과 비아냥이 난무합니다.

다수가 소수를 욕한다는 그런 단순한 문제의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화살표에 종속되어 버린 노예란 말입니다. 정신차려야 합니다. 방향을 누가 정한 겁니까. 그저 한정된 공간에 더 많은 차들을 주차시키기 위해 누군가가 그려놓은 것 아닙니까. 그럴듯한 이유로 포장된 그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제발 그 망할 방향에 대한 화살표에 대한 것에 대해 생각이란 것을 좀 하라는 말입니다. 궤변이라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그러니 내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는 한번쯤이라도 생각해 보고 아니면 그 척이라도 해야 한다는 겁니다. 내가 겪어야 했던 빌어먹을 화살표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시작하겠습니다.

부탁하건대 우리는 절대로 화살표에 대한 노예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감사합니다.

화살표 금지 추진 위원회

Committee for the Regulation of Arrow Usage(CRAU)


정희와 난 그날 밤 아주 사소하게 다퉜습니다. 정희는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들어주기를 원했고 저는 잠깐 남편의 본분을 잊고 다른 생각에 잠시 빠져 있었거든요. 인사이동 시즌을 앞두고 어느 부서를 지원해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아주 사소한 고민이었어요. 정희는 평소 자신의 팀에서 함께 일하는 옆자리 대리를 무척이나 싫어했어요. 고집불통에 융통성도 없을 뿐 아니라 효율성 또한 떨어지는 대리를 힐난하는 정희를 보며 아주 가끔은 섣부른 충고라도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충고조차도 정희의 말에 집중해야 했기에, 그날 밤은 정희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거든요. 다른 부서를 지원한다는 고민은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고 나는 돌아오는 주말에 예정되어 있던 친구들과의 모임에 정신이 팔렸던 것 같아요. 오랜만에 만나는 고등학교 동창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으로 포장할까를 골똘히 고민하고 있었던 것 같거든요.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데 내 모든 모습을 보여준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잖아요. 거울에 비친 내 맨몸을 보기 싫은 것처럼 말이죠.

정희는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 쇼파 제일 먼 쪽에 걸터앉아 조용히 나를 지켜봤어요. 기계적으로 대답을 하던 나를 알아챈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정희가 조용히 일어나 냉장고에 문을 열고 반쯤 남은 보리차를 컵에 따랐습니다. 정희가 매일 자기 전에 먹는 수면제가 있었어요. 정희가 회사를 다니기 전에는 먹지 않던 약이에요. 우리가 아이를 가지려는 여러 시도를 실패 한 뒤에 정희는 회사에 다시 재취직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정희는 아이를 매우 가지고 싶어 했으니까요. 저는. 그때도 정희가 마음속에서 겪고 있는 고통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할 만큼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해두죠. 난임이라는 주제는 참으로 어려운 주제 같았어요. 그래서 조금씩 회피하고 있었어요. 정희는 모든 걸 알았던 것 같습니다. 4년의 연애, 4년의 결혼 생활 중에 한 번도 화를 내지 않고 싸우지 않던 정희가 그날 밤 처음으로 화를 내며 방으로 들어갔어요. “지겨워. 지겨워.” 두 마디를 남기고 말이죠.

다음날이 되자 정희는 말없이 아침 준비를 했고, 차려진 아침상은 여느 때와 다름이 없었어요. 그러나 정희는 먹지 않고 먼저 출근을 했어요. 8년이라는 시간 동안에 내 안에서도 정희에 대한 이해가지 않은 행동이나 사고방식들이 잔잔하게 모래알처럼 쌓여 있었어요. 정희에게 선뜻 말을 건네지 않은 것도 그 이유였어요. 우리 부부의 난임으로 시작한 장인어른과 장모님의 걱정 어린 말들, 정희가 우리 엄마의 이야기만 꺼내면 보이는 냉소적인 차가움, 정희가 회사에 다시 들어갈 때까지 이력서를 쓰며 자기 비하로 시작하는 언어의 고통을 분담하는 것, 그리고 내가 결혼하며 포기해야 했던 많은 것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언젠가부터 시작된 우리 부부의 사소한 삐걱거림과 뒤틀림에 대해 정희는 지겹다고 이야기했던 것 같았어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거든요. 조용히 수저를 들고 북어국을 한 술 뜨려 국그릇에 수저를 담궜어요. 북어국에 있던 자그마한 두부가 으깨져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정희와 나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으깨진 두부의 속살 그 사이로 희멀건 국물들이 즙처럼 밀고 나왔어요.

정희와 우리 회사는 버스로는 여섯 정거장 거리쯤 되었고, 차로는 십오분 정도 떨어져 있었어요. 그다지 바쁘지 않은 회사의 모니터를 보며, 어젯밤 정희가 생각났습니다. 정희가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도 알았고 그게 결국 우리 두 부부의 문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그간 서운한 마음들이 생겼노라면, 어떻게 정희와 해결했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았어요. 어떻게 우리 부부가 4년이라는 세월 동안 함께 살았던 것인지 기적같이 느껴지는 순간이었어요. 어쩌면 정희가 모든 것을 그동안 나에게 맞춰준 것일까도 생각해 보았어요. 하얀 국물이 싫다며 북어국을 싫어하는 정희가 오늘 아침에 북어국을 끓여 놓았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으깨진 두부를 다시 돌려놓고 싶었어요. 정희를 만나야 했어요. 나는 정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정희가 받았어요. 정희에게 말했습니다. 점심에 시간이 되냐구요. 정희가 말했습니다. 그래 회사 앞에 칼국수에 파전 잘하는 집 거기로 가자구요. 회사 앞으로 데리러 오라구요.

점심시간에 외출을 내고 회사를 나가야 했어요. 주차장에는 차가 많았습니다. 운전석의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옆차가 가깝게도 세워둔 탓에 문을 열 틈이 없었어요. 정확하게 화살표로 전면주차를 하라는 지시도 무시한 채 말입니다. 짜증이 났습니다. 왜 이 차는 전면주차를 하지 않았으며, 화살표에 그대로 써 있는 주차선 또한 지키지 않은 사실에요. 가까스로 몸을 욱여넣고 운전석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바닥에 나오는 화살표 대로 출구를 찾아 조심스레 우회전을 했어요. 주차장에 출구라고 크게 적혀 있는 화살표가 보였습니다. 그저 그 화살표들을 따라 나는 주차장을 나갔습니다.

차로는 15분 거리에 있는 정희의 회사로 가는 길은 대부분 직진으로 이루어진 길이었어요. 직진을 하다가 2개 정도의 신호등을 지나쳤어요. 다음 신호등에서 좌회전을 알리는 신호를 확인 후에 좌회전을 했습니다. 좌회전을 하고 나서는 그대로 또 직진이에요. 직진을 하고 나면 하나의 신호등이 보입니다. 신호등을 지나 다시 직진을 하다 보면 고가도로가 보이죠. 고가도로의 언덕을 넘으면 이내 다시 신호등 하나가 보여요. 좌회전 신호에 맞추어 좌회전을 해야 했습니다. 다시 또 직진을 하다 보면 좌측에는 큰 전철역과 함께 버스 정류장이 보이는데 정희의 회사에 거의 도착했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이후 신호를 확인해도 되지 않는 우회전을 합니다. 우회전을 하고 난 뒤에는 언덕이 있는데 언덕 위에 정희가 서 있었어요. 정희는 노란 긴팔 셔츠에 밤색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정희에게 다가갈수록 코 끝에서 알 수 없는 간지러움이 느껴졌어요.


정희를 차에 태우고 함께 언덕을 내려갔어요. 차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칼국수 집으로 향했습니다. 오른쪽 방향 지시등을 켜고 왼쪽에서 다가오는 차량이 없는지 확인 후에 우회전을 하였어요. 직진을 하다가 멀리 신호등. 그 망할 신호등이 보였고, 정희가 우리는 좌회전을 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점점 다가가자 코 끝에 알 수 없는 간지러움이 커졌어요. 왼쪽 콧구멍에 아주 작은 벌레 한 마리가 코 안에서 움직거렸기에 좌회전을 해야 한다는 생각과 벌레를 손으로 짓이겨야 한다는 생각에 코를 움켜쥐었습니다. 신호등을 확인했어요. 좌회전 신호와 초록불, 빨간 불 그리고 우회전 신호가 함께 켜져 있었어요. 움켜쥔 코 속으로 벌레가 깊게 파고드는 기분이었어요. 벌레가 코 안의 비강으로 침투해 내 왼쪽 눈 아래 시신경에서 벌레가 느껴지는 기분이었어요. 정희가 무어라고 했어요. 멈추라고. 멈춰야 한다고. 그 벌레가 막 내 왼쪽의 눈물샘으로 나오려고 하는 순간 나는 화살표를 따라갔어요. 정희가 크게 소리쳤어요. “넌 지금도 내 말을 안듣고 있구나. 지겨워.” 그 순간. 내가 눈을 뜬 건 열흘 뒤 어느 병원에 중환자 실이었습니다.

항구로 가던 25톤 트럭은 정속주행을 하였다고 했고, 신호 위반도 아니였어요. 좌회전과 우회전이 동시에 켜진 신호는 빨간 불이였어요. 고장난 신호등 앞에서 좌회전을 한 나의 선택으로 조수석에 있던 정희는 그 자리에서 죽었어요. 정희가 했던 지겹다는 마지막 말이 지금도 기억나요. 그날 콧속으로 침투했던 벌레가 병원에 누워있는 동안 끊임없이 나에게 속삭였어요. “화살표를 따라갔구나. 그대로 따라갔구나. 니가 그래서 죽였구나. 정희를.” “정희의 말을 듣지 않았구나. 넌 아직도 듣지 않는구나. 그래서 죽였구나. 정희를.” 지겨워 미치기 직전에서야 벌레가 나에게 말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난 결론을 지었어요. 정희를 죽인 저 화살표를 전부 없애 버려야겠다고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