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고 단, 노란색 뚜껑에 빨간색이 번진 그것이 싫었다. 냉장고에 문을 열면 항상 그 노란 머리에 빨간 통통한 몸을 내보이고 있는 그것이 내 눈의 높이와 수평을 이루고 있는, 기분 나쁜 그것이 너무 싫었다. 그렇다고 어렸을 때부터 그것과 관련하여 어떤 트라우마가 있다거나 상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싫다. 그걸 굳이 그 자리에 세워놓은 아내가 싫었는지, 내가 계란 프라이에 소금과 후추만 뿌려 먹는다는 걸 알면서도 식탁 가운데에 언제나 세워놓았던 그 억지스러움이 싫었는지 모르겠다. 식탁 접시에 올려져 있는 4개의 계란프라이 중 3개에는 그것이 뿌려져 있었고(그것도 가득), 내 식탁 위에만 노랗고 희게 투명의 기름이 잔잔히 깔려 있는 계란프라이 위에 희고 검은 입자처럼 보이는 미세한 덩어리들이 놓여 있다는 것이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왕이면 5:5, 반반이면 좋잖아.” 출근하려 문을 열면 이상하게 가장 입 밖에서 가장 먼저 튀어나오는 말이었다. 그건 내 두 딸 중 한 명(큰아이)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고, 아내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후라이드 치킨과 양념 치킨 반반이 나왔을 때, 짜장면과 짬뽕이 반반씩 섞여 있는 짬짜면이 출시되었을 때, 내 반반 인생의 황금기가 펼쳐질 줄 알았다. 허나 회사에서 모두가 짜장면을 외칠 때 짬짜면을 외친다는 것은 어떤 큰 고정관념을 해치는 일 중 하나였다. 4명 중 3명이 짜장면을 외쳤을 때 당당하게 짬짜면을 외쳤어야 했으나 생각보다 짬짜면이라는 단어의 체면은 영 받쳐주질 않았다. 그러나 나는 옆 부서에 나와 동기였던 상식이가 단연코 실적이 제일 좋다는 이유로 당당하게 짜탕면을 시켰을 때, 고정관념에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담배나 피자 싶어 옥상으로 가 담배를 물 때면 꼭 똥파리 한 마리가 내 곁에 맴돌았다. 뻘건 눈을 하고 어쩔 때는 노란 모자를 뒤집어쓴 녀석은 오늘 아침 상에 나온 그것을 떠올리게 했다. 담배를 쥔 손가락으로 허공에 휘둘다가 담뱃재가 그만 무릎 아래 정강이 부근에 튀었다. “장 과장. 잘 지내?” 한쪽 구둣발을 들어 어정쩡하게 정강이를 털고 있는 봉산탈춤의 형상을 하고 있을 때 상식이가 말을 건넸다.
어 잘 있지. 넌. 이번 분기에도 우수직원이더라 축하해.라고 말을 건넸으나 내 정강이 아래에선 전부 달아나지 못한 담뱃재가 뜨거운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어. 그냥 그렇지. 언제 술 한번 하자. 다” 어 그래 나중에 꼭! 어렸을 때부터 엄마의 잔소리가 길어질 것 같으면 화제를 돌리거나 도망가는 것에서 유능감을 느낀 나였다. 말이 길어질 것 같은 느낌은 기가 막히게 알게 되는 천성과도 같은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기술. 옥상에서 내려와 자리에 앉기까지 희거나 파란 셔츠 혹은 블라우스에 검거나 회색의 면바지를 입은 동료들이 너무 많이 스쳐갔다. 누군가는 눈빛이 또렷했고, 졸려 반쯤 감긴 눈도 있었다. 내 눈은 어떨까. 자리에 있는 은색 거울에 비친 내 눈 빛은 흐리멍텅했다. 누군가는 전화를 받고 외주업체 사장님과 통화를 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휴대폰을 틀어 주식계좌에 파란색 빨간색에 집중했다. “반반이 맞구만 뭘.” 일하는 사람 반 노는 사람 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