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아에게

by 장원석

얼마나 그리워 했는지 모른다. 지난 날 하얀 파도의 너울 뒤로 지나가 버린 후회의 시간들. 나이가 들어 잊어버릴 법도 한데 너에 대한 기억은 쉽사리 떠나보내 지지가 않는다. 5살 너를 처음 마주했을 때 무릎이 빨갛게 까져 피가 맺혀 있던 너의 다리가 기억난다. 잊지 못해 고통스럽다기 보단 그 상처 자국이 왼쪽 무릎이었는지. 조금 더 아래였는지. 반대쪽 허벅지 부근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그저 비통했다. 기억이란 끓는 주전자 구멍에 피어오르는 수증기처럼 금새 사라져버린다. 너는 먼저 바다를 건너 수평선 너머에 있었다. 수평선 너머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네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너를 따라 가볼까도 고민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나, 두려움이 그리움을 이기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집 담벼락에 주황빛 능소화에 너의 그리움을 담았다. 거실 마루에 희고 큰 화분에 빨간빛 안시룸을 심어 그곳에 슬픔을 담았다. 그저 꽃이 지고 피는 것을 보며 너를 그리워하는 나를 달랬다. 우리가 진갈색 흙 위로 함께 뒹굴며 땅의 기운을 두 발로 온전히 느낄 수 있었을 때가 있었다. 그때 네가 나의 책을 펼치지 않았더라면 네가 이렇게 수평선을 볼 수 있는 집 앞에 기다리며 너를 그리워 하지는 않았을 텐데.

너는 새가 되고 싶다고 했다. 종달새가 되어 장대나무 위에서 노래를 부를 것이라 말하며 콧노래를 불렀다. 5살의 너는 나를 옆에 두고 책을 펼쳐 내 이름을. 내가 궁금해 하는 많은 것들을 알려주고는 했다. 내 이름 석자의 뜻. 세상에 이름 붙혀져 불리는 많은 것들.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 맡고 입으로 맛보는 다른 감각들을 부르는 말까지. 나를 알려주는 너를 보며 나는 네가 되고 싶었다. 너를 평생 내 옆에 두고 너와 함께 세상의 모든 말들을 배우고 싶었다.

작은 상자에 담겨 있던 너의 온기가 흘러나와 내 손가락 마디마다 묻어났을 때. 몇 십년이나 너를 보러 가지 않은 나를 향한 원망이 담겨 있어 이리 뜨겁나 생각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흩뿌려 지고 티끌이 되어 허공에 사묻혔을때. 넌 드디어 새가 되어 울창한 뒷산으로 날아가 안녕을 노래했다. 너를 찾아 산을 헤매고 또 올랐다. 그러나 산등성이 어느 곳에서도 너의 노랫소리가 들리지지 않았다.

네가 떠나고 나의 심장의 일부분이 사라진 것만 같았다. 영원의 무게가 있다면 딱 너만큼의 무게가 사라진 직후였다. 너를 찾아 서쪽과 남쪽 마지막으로 동쪽으로 무작정 향했다. 마침내 동쪽 어느 바다 앞에 도착했을 때, 밝은 해가 바다의 뒤편에서 차오르고 있었다. 파도의 너울거림이 수 십번 모래사장에 솟구치고 나서야 파도 소리 안에서 너의 노래소리가 들렸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다. 다섯살의 천진함만 간직한 채 내 나이 칠십이 넘었고, 저기 수평선 너머에, 그 너머에 네가 새가 된지도 십여년이 흘렀다.

새가 되어 둥지 짓고 노래하며 살고 있니.

그곳은 행복하니.

보고싶은 명아야.

아직도 너를 기다리며 펼쳐진 채 그대로

누군가 나를 읽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어.

밝은 세상에 빛이 되어 기다리고 있을 명아야.

수평선 너머에서 내 책을 꼭 다시 읽어 주렴.


명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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