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혹은
잊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영화 '러브레터' _ 이츠키, 그녀를 다독이며

by 카라


슬픔의 한복판에서 그 날들을 견디는 방식의 하나, 외면.

슬픔이 지나 아픔으로 과거화 됐을 때, 그 때의 기억은 본능적으로 제거된다. 아니 잊혀졌다 여긴다.

다시 되새기기 위해서는 시간 그리고 용기가 필요하다.


아버지를 여의었다. 소녀는 울지 않는다.

전학 간 후지이 이츠키(남)를 추모한다고 짓궂은 장난을 치는 반 아이들을 향해 분노할 뿐이다.

슬픔을 알기도 전에 아픔을 앓아버린 아이처럼.

장난스러운 추모 행위는 결국 남자 이츠키의 죽음에 대한 복선이 된다.


소녀 후지이 이츠키의 성장 과정 가지 에피소드에 그치지만 그녀가 잊은, 잃어버린 세계는 서서히 드러난다.

후지이 이츠키(남)를 추모하는 와타나베 히로코와의 러브레터를 통해서.


와타나베 히로코는 죽은 남자친구 후지이 이츠키를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다.

그의 마음을 온전히 갖지 못했던 날들에 아직도 마음이 시리며, 그녀에게 마음을 주는 선배에게 벽을 둔다.

심지어 그가 중학시절에 살던 옛집으로 안부 편지까지 띄운다.

그녀 역시 후지이 이츠키(여)와의 러브레터를 통해 사랑을 잃은 상실감을 치유해 간다.

히로코는 슬픔을 외면하지 않았다. 온전히 그 안으로 들어가 그리워하며 아파한다.

그 과정에서 결국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진실을 깨닫게 되지만.

그녀는 슬픔을 아픔으로 그리고 결국 추억으로 남길 수 있게 된다.

영화를 보지 않아도 알고 있을 절규어린 외침. 그 의식을 통해서.


다시 후지이 이츠키로 돌아와서.


남자 후지이 이츠키가 사랑했던 여자, 후지이 이츠키는 이제야 과거를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다.

러브레터가 쌓일수록 과거의 기억은 양파 껍질처럼 한꺼풀씩 드러나고,

지독한 독감 속에서 펼쳐지는 환각과 환청을 통해 그 시절의 나, 슬픔 속에 있던 나와 비로소 마주본다.

슬픔이 과거형이 되는 순간이다.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마지막 부분이다.

볼 때마다 이츠키(여)의 마음이 내게도 전달되어 함께 벅차오른다.

까마득한 후배들이 이츠키의 집에 찾아와 책을 건넨다.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그것은 이츠키(남)를 만났던 마지막 날, 아버지의 추모기간에 반납을 부탁했던 책으로

그 때는 미처 몰랐던 도서카드 뒷면에 그녀의 잃어버린 세계가 담겨져 있다.

마치 그녀의 슬픔 마주하기에 쐐기를 박듯이 그 시절 그녀가 그려져 있었다.

그녀의 표정에서 오래전 읽어보고 어딘가에 꽂아두었던 책을 발견해내고,

그 책에 고스란히 쌓여있던 세월의 흔적을 후후 불어 털어내고, 어렴풋이 산발적으로 떠오르는 여럿의 이야기를 되짚어가며 한 페이지 한페이지 넘겼을 때, 불현듯 깨달음처럼 그 시절에 그것을 읽었던 나의 마음을 발견해내는 그런 과정을 느꼈다면 과장된 찬사일까.


'이 편지는 차마 가슴이 아파서 못보내겠다'는 그녀의 내레이션(비록 오역논란이 있지만)과 함께

뒤늦은 사랑의 깨달음, 아쉬움, 그리움이 담긴 그녀의 표정은 오래도록 내게 머물러 있다.


잃어버린 세계를 찾았다. 어쩌면 오늘의 어떤 순간도 내일의 어느날 잃어버린 세계로 남을지 모르겠지만,

오늘 찾은 잃어버린 세계는 그녀의 내일을 조금 풍요롭게 만들지 않을까.

잃어버린 세계는 영원히 잊어버린 것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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