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야마오카 소하치가 쓴 <대망>을 읽고
가슴속 쌓여 있던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내려놓았다.
영국의 위대한 나라라고 생각한 것은 그들이 가졌던 방대했던 영토 때문이 아니었고,
처칠이나 대처 같은 위대한 정치가 때문도 아니었다.
영국이 위대한 국가임을 진정으로 느낀 것은
에드워드 기번이 쓴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고서였다.
중국이 강한 나라라고 생각한 것은 자금성이나 천안문 광장 때문이 아니었고,
황푸강을 둘러싼 마천루 때문도 아니었다.
중국이 강한 나라임을 진정으로 느낀 것은
사마광이 쓴 <자치통감>을 읽고서였다.
그동안 아껴 두었던 박경리의 <토지>를 읽기 시작한 것은
대한민국이 경제뿐만 아니라 인문학도 단단한 나라임을 느껴
널리 자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토지 ㅡ입문>
10 년 전, 위에 구멍이 뚫려 병원신세를 졌고,
3박 4일의 입원기간은 지쳐 있던 직장생활에서 쉬어 가는 카렌시아 역할을 했다.
금식을 지키며 병원에서 처방하는 약과 주사액을 맞으며,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에 흠뻑 빠져 지루한 병원생활을 어려움 없이 보냈다.
퇴직한 노기자가 직접 설계한 수레에 짐을 싣고
실크로드를 완주한 여행기는 잔잔한 감동으로 남아있다.
2023년 2월 초,
급성 맹장염으로 수술을 받고 입원기간 동안 읽고 싶은 책을 챙겼지만
지난번과는 달리 단 한 줄도 읽지 못했다.
실밥을 뽑고 치료를 마치면서
나는 다시 박경리의 장편소설 <토지> 들고 책상 앞에 앉았다.
지리산 평사리, 최참판댁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소설은
구천이라는 정체불명의 하인과 최지수의 아내이자
5살 소희의 어머니인 별당아씨가 야반도주를 강행하면서 막을 올린다.
혼자 남은 서희는 엄마를 찾아오라고 떼를 쓰지만
어린 서희의 뼈저린 아픔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서희가 겪은 이 아픈 현실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고
야반도주한 연인에게 어떤 연유가 있었는지, 최지수는 왜 자신의 아내를 이렇게 보낼 수밖에 없었는지…
이런 호기심이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혼자 남은 서희가 어떻게 험한 세상을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과 더불어
또 다른 흥밋거리는 2023년 대한민국 아파트 가격의 행방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치솟던 아파트 가격이 2022년 들어 꺾이더니
2023년 초, 30-40% 하락한 지역이 속출하고 있다.
서희에 대한 궁금증은 소설을 읽고 나면 풀릴 것이며,
부동산의 향방도 세월이 지나면 알게 되겠지만,
알지 못하는 미래가 있어 삶이 재미있다.
알고 나면 뻔한 인생, 호기심과 궁금증이 있어
깊이를 더 한다.
서희가 처한 환경이 양반 집안을 기반으로 한다면,
용이의 어긋난 사랑과 강청댁의 애환은 서민의 삶을 기반으로 한다.
결혼에 실패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읍내에 주막을 운영하는 월선을 사랑하는 용이는
가정과 사랑을 넘나드는 이중생활에 힘들어하지만,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강청댁의 푸념과 한탄은 나날이 깊어 간다.
최참판댁 하녀, 귀녀는 최지수를 유혹해 아이를 출산하는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고,
이를 눈치챈 평산은 귀녀에게 접근해 자신과 함께 이 일을 진행하도록 협박하고,
일의 성사를 위해 칠성이를 끌어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