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편
청백리 집안의 자손으로 일본에 건너가 공부까지 마친 이상현은
주정뱅이가 되어 하얼빈 뒷골목을 배회하는 신세가 되었다.
다행히 수앵 부부가 작은 가옥을 내주어 거처로 사용했지만
술주정에 싸움까지 갈 데까지 간 인생을 살았다.
가족들을 통영에 남기고 만주로 온 홍이는 심재용과 동업으로 영화관을 경영했다.
영광이 홍이를 찾아오자,
심재용에 소개해 카바레에서 색소폰 연주를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영광은 국경을 넘으면 양현을 잊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하얼빈에서 양현의 생부 이상현을 만나고
가는 곳마다 생모인 기화의 이야기가 이어지자 끊이지 않은 인연의 실타래에 괴로워했다.
영광이 만주로 떠나자 영선네는 서울 집을 세 놓고 도솔암으로 돌아갔다.
도솔암에 요양차 머무는 남희가 석이의 딸이며 가슴의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영선네가 자식같이 보살펴 주었다.
경찰서에 잡혀간 몽치는 사흘동안 모진 고문을 받았다.
이유는 징용에서 도망 한 자를 채용했다는 투서 때문이었다.
한 달 전, 몽치는 평사리에서 한복을 만나고 돌아가는 길에 홍석기라는 청년을 만났다.
외아들에 장가들고 한 달도 되지 않아 북해도 탄광으로 끌려간 석기는
일본 할머니의 도움으로 도망쳐 왔다.
어장 일을 하며 숨어 지내던 석기를 일본 경찰이 잡으려 오자
몽치가 산으로 피신시켜 경찰의 고문을 받았지만
끝까지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 잡아 때 풀려나게 된 것이었다.
한복은 형인 거복이 만주에서 돌아와 서울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찾아가지 않았다.
일본의 패망이 다가온다는 소문이 돌자
한복은 형을 찾아갔고
거복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자신의 재산을 한복에게 넘겨 놓았다.
미공군기 B29의 폭격이 동경에 미치자
찬하 가족은 북해도로 피신을 했고
전쟁을 이끌던 도조 내각이 사퇴하고 고이소와 요나이 협력내각이 정권을 잡았지만 혼란은 더해 갔다.
어장 일이 원활히 돌아가지 못하자 몽치는 산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금화가 반대했다.
몽치가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자
금화는 몽치와 관련된 사람과 만나지 않는 곳에 거처를 정한다는 조건으로 산속으로 들어갔다.
명희는 도솔암 주지를 찾아가 산속에서 도피 중인 사람들을 위해 써 달라며 오 천 원을 내놓았다.
오 천 원을 어떻게 사용할지 의논하고 있을 때,
홍석기와 귀남이 염탐꾼이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렸다.
해도사와 몽치가 달려가 보니 피투성이가 된 개동이 나무에 묶여 있었고
몽둥이를 든 장정들이 개동이를 죽일 작정으로 두들겨 패고 있었다.
해도사는 폭력을 멈추게 하고 손과 발을 묶어 가두게 했지만
다음날 개동은 내장이 터진 시체로 발견되었다.
환국은 신문이 배달되지 않자 면소에 사람을 보내 가져오게 했다.
신문에는 히로시마에 폭탄이 투하되었으며 소련이 전쟁에 참전했다는 소식이 실려 있었다.
식욕이 떨어진 서희를 위해 은어를 구하려 강가로 가던 양현은
일본이 항복했다는 고함 소리를 들었고 일본 천황이 항복을 선언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집으로 달려온 양현은 서희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모녀는 부둥켜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읍내에 갔다 나룻배에서 내린 연학은
일본 항복 소식에 만세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
<토지>를 마치면서 해방이 된 후,
남은 이들의 생활을 중심으로 소설이 좀 더 이어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20년 넘는 시간을 <토지>에 바친 작가에 비해 2개월 남짓 소설을 읽고
이런저런 사견을 말하는 것은 예의도 아니며 주제넘은 짓이란 생각에 정신을 차렸다.
2023년 겨울이 끝날 무렵 읽기 시작한 <토지>는 봄이 오면서 일기를 마쳤고,
마키아밸리의 <피렌체사>를 읽기 시작했다.
<토지>가 막걸리 같았다면,
<피랜체사>는 ‘그라파’(Grappa) 같은 맛이 난다.
막걸리면 어떻고, 그라파면 어떠랴!
술이면 다 좋고 취하긴 마찬가진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