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12)

9, 11 테러와 미국의 보복 그리고 짙어지는 갈등

by 산내

<9,11 테러 그리고 미국의 보복, 짙어지는 갈등>

뉴욕과 워싱턴에서 일어난 테러리스트의 공격 직후

몇 주 동안 부시 대통령이 군사행동을 펼치자고 미국인들을 불러 모으면서

테러리스트들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파괴하려 나섰으며,

그 가치들은 피와 재물을 써서라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1930년대에는 나치에 맞서서,

1950년대에서는 공산주의에 맞서서

목소리 높여 부르짖던 구호를 되풀이했다.

그 뒤로 미국과 마지못해 참여한 병력을 이끌고

계속 발견되는 똑같은 수사들로 주조된 전쟁을 치렀다.


그리하여 부시 행정부는 초기에 아프가니스탄에 습격을 단행하면서

일시적으로 오사마 빈 라덴에 집착하더니,

그다음에는 서구 시민들에 대한 테러의 주모자로 사담 후세인과

책임 있는 핵심 국가인 이라크를 조준해 그 나라를 정복하고,

민주화하면 이 역병을 종식시킬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사담 후세인을 체포하고 교수형에 처하고 이라크를 완전히 점령한 뒤에도

테러 행위가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미국 정부의 전략가들은 이란으로 초점을 옮겼다.


이란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따라 시리아, 리비아, 사우디 아라비아, 파키스탄 등

한 무리의 나라들이 테러리즘의

주요 후원국으로 임명될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서구의 입장에서 보면, 파키스탄이나 요르단,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이집트 같은 나라에서

서구의 방식에 따르는 통치자들에게 자금을 대고 무기를 주고

당연히 자유 시장 경제의 축복도 내려주고

그들 사회에 민주주의를 도입하도록 돕자고 주장하는 것은

그럴듯해 보인다.


또한 이슬람 사회의 가치들은 역행하고 있으니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더 진보적인 사람들이 수정해야 한다는 것도 그럴듯해 보일 것이다.

하지만 다른 입장에서 보면,

최근에 있었던 도덕을 내세운 캠페인이나 군사작전들은 오래전부터 있었던,

무슬림 나라 안에서 무슬림을 약화시키려는 계획들과 다르지 않다.

한쪽에서 성별에 관계없이 시민들에게 더 큰 권리를 누리게 하려는 운동이

다른 쪽에서 보면 힘센 이방인이 사적인 문제에 끼어들어서

가족과 부족의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능력을 잘라내는 것처럼 보이는 셈이다.


요컨대 한쪽에서는 각 개인에게 힘을 부여하는 움직임이,

다른 쪽에서는 공동체의 힘을 빼앗는 것처럼 느껴진다.

현대 세계를 파괴하고 있는 갈등을 ‘문명의 충돌’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최선의 방법이 아니다.


그보다는 서로 맞지 않는 두 줄기의 세계사가 교차하여 발생한 마찰로 이해하는 편이 낫다.

이는 두 무리의 방향 값에 단지 ‘오해’ 수준이 아니라

양립 불가능한 지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슬람 세계와 서구 사이에는 토론해야 할 쟁점이 끓고 있다.

하지만 양쪽이 같은 용어를 쓰고

그 용어가 같은 뜻이 아니라면 합리적인 논쟁이 벌어질 수 없다.


모든 사람은 민주주의를 좋아한다.

하지만, 이슬람은 민주주의의 반대가 아니다.

완전히 다른 뼈대다.


그 뼈대 안에 민주주의도 설 수 있으며,

전제정치도 설 수 있으며,

민주주의와 전제주의 사이의 여러 가지 다른 상태들도 존재할 수 있다.

이슬람은 14세기 전 메카와 메디나에 세워진 공동체의 탄생에 닻을 내린 채,

시대를 관통해 움직인 광대한 복합체다.


그 이야기에는 수많은 무슬림 아닌 등장인물과

종교적이지 않은 사건들도 포함된다.

유대인과 그리스도교도와 힌두교도가 그 이야기의 일부다.

산업화는 그 줄거리의 한 요소이고, 증기기관 발명과 석유의 발견도 마찬가지다.


이런 식으로 본다면 이슬람은 독자적인 내부의 일관된 가설을 동력으로 삼아

시대를 관통한 공동체의 여러 목표가 얽힌 광대한 복합체다.

그리고 서구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해야 할 일은 단일한 공동의 역사 안에 보편적인 인간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

모든 역사를 수집하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과업을 수행해야 한다.




<에필로그>

책을 마치면서 머릿속이 많이 복잡하다.

무엇이 정의이고 어떻게 해야 꼬인 실타래를 풀 수 있을까?

마음이 답답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지금까지 내가 보았던 이슬람에 대한 역사적 시각은 한쪽에 치우쳤다는 사실을…


저자의 아버지는 아프가니스탄 사람이지만 어머니는 미국인이며,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났지만,

고등학교부터는 미국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양쪽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러므로 이 책은 양쪽 문화를 경험한 사람이 한쪽의 억울함을 대변하는 입장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타임 안사리는 그 많지 않은 사람 중 한 사람으로서 그의 역할을 했다.

그리고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독자들의 몫이다.

모든 역사는 승자와 강자가 쓴다.

굳이 패자나 약자가 역사를 쓴다면 변명으로 받아들여져 생명력을 잃고 만다.


하지만, 역사를 왜곡하고 기만하는 행위는 위험하다.


강자들은 약자들이 비굴해지기보다 더 피하기 어려운 자만에 빠지기 쉽다.

역사를 왜곡하고 약자를 무시하는 행위는 대표적인 자만 행위다.

역사의 심판은 시간이 걸릴 뿐,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다.

나 자신이 꼬인 문제를 해결할 능력은 갖추지 못했지만,

이슬람의 역사를 조금 더 공정한 눈으로 바라보는 계기를 만들었다.


다양한 시각으로 역사를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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