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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여, 조나라의 자존심을 지키다

by 산내

인상여는 원래 조나라 사람으로 출신이 미천했다. 그는 환관의 우두머리인 무현의 사인으로서 그에게 정치적인 조언을 하곤 했는데 무현은 그의 재능을 높이 샀다.


조나라 혜문왕이 초나라에서 화씨벽옥을 얻었다.
옥이란 본디 최고의 보석이었지만 그 화씨벽이란 초나라에서 역대로 내려오는 유명한 보물이었던 듯하다.

그런데 진소왕이 이 소식을 듣고 편지를 보내 열다섯 성과 그 옥을 바꾸자고 요청했다. 옥 이 아무리 대단한들 성 열다섯 성과 비교할 수는 없을 터이니 이 편지는 거의 성을 거저 달라는 협박으로 들렸을 것이다.

이리하여 조 혜문왕은 조정에서 대장군 염파를 비롯하여 여러 대신들을 모아 상의했다. 옥을 주자니 진이 성을 주지 않을 것 같고, 안 주자니 강한 진의 요청을 거절하여 병화를 입을까 두려웠다.

진의 미끼에 걸린 것이다.
옥이야 대단한 것이 아닐지라도 옥을 주고 성을 받지 못하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 분명하다.

의견이 분분했고 진에게 어찌 대답을 전할 사람도 정하지 못했다.
그때 무현이 나가서 말했다.

"신의 사인 인상여가 사신의 소임을 감당할 만합니다."

이리하여 혜문왕이 인상여를 불러서 물었다.

"진왕이 열다섯 성으로 과인의 옥과 바꾸고자 하는데 줘야 하오.
안 줘야 하오?"

인상여가 대답했다.

"진은 강하고 조는 약하니 허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왕이 되물었다.

"저들이 옥만 취하고 성을 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오?"


인상여가 대답했다.

"진이 성을 대가로 옥을 원했는데 우리 조가 허락하지 않으면 잘못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허나 우리가 옥을 줬는데 진이 성을 주지 않는다면 잘못은 저쪽에 있게 됩니다.
두 방책을 저울질해 보면 옥을 허락하여 잘못을 진에게 넘기는 것이 낫습니다."

이리하여 조 혜문왕은 인상여에게 옥을 주어 진나라로 들여보냈다.
이제부터 인상여의 활약이 펼쳐진다.

진소왕이 인상여를 접견하자 인상여는 옥을 받들어 바쳤다. 왕은 크게 기뻐서 옥을 여러 미인들과 좌우에 돌아가며 보이자 모두 만세를 불렀다.

그러나 진 소왕이 선물을 받고 성에 대한 이야기는 없이 그저 기뻐하는 기색만 보이자 인상여는 사태를 눈치챘다.

순간 인상여는 기지를 발휘해서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허나옥에 흠이 하나 있사옵니다. 가리켜드릴까 합니다."

무심결에 진 소왕이 옥을 넘겨주자 인상여는 옥을 쥐고 물러나 일어서 기둥에 기대더니, 머리카락이 일어나 관을 찌를 만큼 노하여 진왕을 꾸짖었다.


"대왕께서 옥을 원하시어 사람을 시켜 조왕께 편지를 보내니 우리 왕은 신하들을 모두 불러 이 일을 의논했습니다.
신하들은 모두 '진은 탐욕스럽고 자기의 강함을 믿고 허언으로 옥을 얻고자 하는 것이니
성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라 했기에 옥을 주지 않기로 의견이 정해졌습니다.
허나 신은 '한갓 포의들이 사귈 때도 서로 속이지 않는데 하물며 대국이 그러하겠는가, 또한 겨우 옥 하나 때문에 강한 진의 호의를 거슬러서는 안 된다' 여겼습니다.
이리하여 조왕은 5일 재계하고 신으로 하여금 옥을 받들도록 하고 조정에서 삼가국서를 신에게 맡겼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대국의 위세를 엄하게 여기기에 공경을 다한 것입니다.
허나 지금 신이 도착하니 대왕께서 신을 대하는 예가 심히 거만하시고, 옥을 얻고는 미인들에게 돌려 보이며 신을 희롱하셨습니다.
신이 보기에 대왕께서는 조왕에게 성읍을 줄 의향이 없는 까닭에 신은 옥을 돌려받았습니다.
대왕께서 기어이 신을 재촉하신다면 신은 당장 옥과 함께 제 머리를 이 기둥에 부딪혀 부숴버리겠나이다."

이미 죽기로 한 이의 기개는 거침없었다.

그가 옥을 들어 기둥에 던져 부수려고 하자 진 소왕이 옥이 깨질까 봐 급히 사죄하며 제지했다.
그러고는 유사를 불러 지도를 가리키며 어디에서 어디까지의 열 다섯 성을 조나라에 주라 명했다.
그러나 인상여가 보기에 이는 모두 거짓이었다.

애초에 속임수를 쓰려던 이 가옥을 깨려 하니 마음을 바꾸는 것이 더 미덥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더욱 당당하게 요구했다.

"화씨벽은 천하가 함께 보물로 여기는 것으로써, 조왕은 두려워 감히 바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조왕이 옥을 보낼 때 5일 동안 재계했으니 지금 대왕께서도 5일 재계하시고 뜰에 구빈의 접견장을 마련하시면 신은 감히 옥을 바치겠나이다."

그러나 인상여가 이런 요구를 한 것은 시간을 벌려는 것이지 실제로 옥을 주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종자에게 갈옷을 입혀 신분을 위장한 후 옥을 품고 지름길을 통해 조나라로 달아나게 했다.
이리하여 옥은 다시 조나라로 돌아갔다.

한편 진 소왕은 인상여의 요청에 따라 5일 재계하고 구빈의 접견장을 차려 다시 인상여를 청했다.

그러나 접견장에 온 인상여는 자못 다른 소리를 했다.

"목공 이래 전에 20여 군주가 계셨으나 일찍이 약속을 굳게 지킨 이 가 한 분도 없었습니다. 진실로 신은 왕께 속임을 당하여 조나라를 등질까 두려워 사람을 시켜 옥을 가지고 돌아가라 했으니 그간 조에 도착했을 것입니다.

진은 강하고 조는 약하여 대왕께서 일개 사신을 조에 보내자 조는 당장 옥을 받들고 왔습니다.
지금 강한 진이 먼저 열다섯 성을 조에게 준다면 조가 어찌 감히 옥을 내주지 않아 대왕께
죄를 짓겠습니까?
신은 대왕을 속인 죄로 응당 죽어야 함을 알고 있어 끓는 솥에 들어가기를 청하오니, 대왕께서는 여러 신하들과 이 일을 깊이 의논하소서"

인상여의 기개가 끓는 물처럼 뜨거웠다.
속이려다 속은 진의 군신들은 할 말을 잃고 서로 바라보았다.
죽으려고 마음먹는 자가 무슨 짓을 못 하겠는가.

진 소왕의 측근 중에 어떤 이가 인상여를 끌어내려하자 진 소왕이 말했다.

"지금 상여를 죽인 들 결국 옥은 얻을 수 없고 진과 조의 우호만 끊게 되니 이참에 그를 후대하여 조로 돌려보내는 것이 낫다.
조왕이 어찌 옥 하나로 진을 속이겠는가?"

이리하여 인상여는 무탈하게 조로 돌아오는데, 조 혜문왕은 그가 똑똑해서 나라의 명예를 지켰다 하여 상대부의 작위를 주었다.

물론 진은 성을 주지 않았기에 화씨벽은 조나라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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