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의 고뇌
애초 월수 태수 마속은 재주와 그릇이 보통 사람을 뛰어 넘어서 군사 계획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좋아하였는데, 제갈량은 그 그릇이 특이하다고 생각하였다.
유비가 죽음이 임박하여 제갈량에게 말하였다.
"마속은 말이 실제보다 지나친 점이 있어 크게 쓸 수 없으니 그대는 이를 잘 살피시오."
제갈량은 오히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고 마속을 참군으로 삼고 매번 그를 불러들여서 담론 하였는데 낮에서부터 밤까지 이어졌다.
기산으로 군대를 출동시키게 되자 제갈량은 옛 장수 위연을 선봉장으로 쓰지 않고 마속에게 여러 부대를 감독하여 선봉에 서도록 하면서 위의 장수 장합과 싸우게 하였다.
마속은 제갈량의 통제를 벗어나자 행동거지가 번거롭고 소란스러웠는데, 물가를 버리고 산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와서는 성을 점거하려고 하지 아니하였다.
장합이 그들의 물 긷는 통로를 끊어버리고 공격하여 대파하니 사졸들이 흩어졌다.
제갈량은 진격하여도 근거할 곳이 없자 한중으로 돌아와 마속을 잡아서 하옥시켰다가 죽였다.
제갈량은 스스로 그의 제사에 참석하고 그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고 그가 남긴 아이들에게 전과 같은 은혜를 베풀면서 길러주었다.
삼국지 고사인 '읍참마속'은 이런 배경으로 생겨 났으며 그 속에는 유비가 죽고 난 후 제갈량의 고뇌가 묻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