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 암살 사건

by 산내

한 왕 9년, 조왕 장오의 빈객 관고 등이 유방을 죽이려 하는 사건이 발각되었다.
원인은 유방이 제공했다.
장오는 조왕이면서 노원공주의 남편으로 유방의 사위였다.

그가 사위의 예로써 팔을 걷고 몸소 음식을 올리며 극진히 대접했지만 유방은 건달 시절의 무례한 습관을 버리지 못해 두 다리를 벌리고 앉은 채로 멋대로 꾸짖었다.

조의 상국 관고 등은 나이 예순이 넘은 데다 결기가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어린 왕이 받은 모욕을 견딜 수 없어 유방을 암살할 계획을 세우고 왕에게 먼저 알렸다.

그러자 조왕은 펄쩍 뛰었다.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오. 선친께서 나라를 잃었을 때 황제께서 찾아주셨소.
우리가 얻은 것은 터럭만 한 것이라도 모두 황제의 힘을 입은 것이오.
공들은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마오."

그러나 광고 등은 분을 참지 못하고 실패하면 자신들이 죄를 뒤집어쓰기로 하고 일을 실행했다.

그러나 유방은 어쩐 일인지 암살 예정 장소를 피해 갔다.
그런데 뒤늦게 관고와 척을 진 사람의 고소로 이 사건이 도마에 오른 것이다.

사건이 발각되자 함께 모의했던 사람들이 모두 자진하려 했다.
그러나 관고가 화를 내며 꾸짖었다.

"누가 공들에게 이리 하라고 하였소?
지금 왕께서는 모의에 함께 하지 않고서도 같이 붙잡혔소. 실로 공들이 모두 죽으면 누가 왕께서 반란을 기도하지 않았음을 밝힐 것이오."

이리하여 관고는 죽지 않고 죄수를 호송하는 수레에 실려 장오와 함께 장안으로 들어갔다. 당시 유방은 "조왕을 따라 장안으로 들어오는 신하나 빈객은 족을 멸할 것이다"며 위협했다.

그러나 관고의 빈객 10여 명은 장오의 노비가 되어 목에 칼을 차고 장안으로 들어갔다. 이어 장오는 옥에 갇혔고, 관고는 끔찍한 고문을 견뎌야 했다.

그러나 관고는 흔들림 없이 끝까지 버텼다.

"나 홀로 한 일이오. 왕은 실로 모르오"

여후마저 공주를 봐서라도 장오가 모반을 꾀했을 리 없다며 말렸다.

그러나 의심을 사실로 굳힌 유방은 모질게 대답했다.

"장오가 천하를 차지하면 어찌 여자가 없을 것이오!"

허나 관고가 끝내 버티자 유방은 감탄했다.

"장사로다. 누가 그를 아는 사람이 있으면 사적으로 물어보라."

이리하여 관고의 오랜 친구 설공이 나섰다.

황제의 특명을 들고 감옥으로 가 관고에게 실정을 물어보니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 인정에 부모와 처자를 아끼지 않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지금 내 삼족이 사형 선고를 받았는데, 어찌 왕이라고 해서 내 육친들과 바꿀 수가 있겠는가?
허나 왕은 실로 반역을 꾀하지 않았네.
우리들이 그리 모의한 것이야."

설공이 돌아와 실정을 보고하자 유방은 드디어 조왕 장오를 사면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유방에게 반전이 일어나 유방의 협객 정신이 살아난다.

그는 관고의 의기를 높이 사 사면했다.
설공이 관고에게 가서 장오가 석방되었다는 말을 알렸다.


관고가 물었다.

"우리 왕이 석방되셨는가?"

설공이 대답했다.

“그렇소. 또한 상께서는 족하를 대단하게 여겨 석방하셨소."

그러자 관고가 한탄했다.


"이 한 몸 죽지 못하고 남아 있었던 것은 왕의 결백을 밝히고자 함이었소.
지금 왕께서 이미 석방되셨으니 내 책임은 다한 것이라 죽어도 여한이 없소.
또한 남의 신하 된 이가 군주를 시해하려 했다는 악명을 얻었으니 무슨 낯으로 다시 상(황제)을 섬길 것이오.
설령 상께서 나를 죽이지 않는다 하여도 내 마음에 부끄럽지 않겠소?"
이렇게 말하고는 목의 동맥을 끊어 자결했다.

유방은 관고와 그 빈객들의 행동을 대단 높이 샀다. 향후 유방의 행동은 파격적이었다.
삼족을 말한다는 염도에도 관교와 함께 장안으로 들어온 이들 중 제후의 사상이나 군수가 되지 않는 사람이 없었고 그 후에서 문제에 이르는 시기까지 그들의 자손들은 모두 2,000석 고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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