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던 엄마친구 금자이모

by 코토리

[서울 아파트, 늦은 밤 / 엄마와 차 마시며 대화 중]

엄마

“딸, 금자 이모 있제. 지금 뭐하고 사는 줄 아나?

해운대 집도 넘어가고… 지금 다시 김밥집 차렸데이.”


“뭐?… 그 금자 이모가? 아니 왜? 일평생 잘 살다가

갑자기 나이 칠십(70)에 김밥집을 차렸다고? 대박이네…”


엄마

“그라지. 백화점에 입점하고, 홈쇼핑도 나가고, 그때는 진짜 금여사 소리 들었지.

남포동에서 옷장사 할 때부터 부지런하더만,

성공하니까 길이 아저씨는 이모 돈으로 외제차에 골프만 치고 밖으로 돌고…”


[과거 회상 – 금자 이모의 전성기]

그 시절 엄마 친구들 중, ‘사업하는 여자’는 금자 이모 하나였다.

이모 집에 놀러 갈 때마다 5만 원씩 나한테 쥐여주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애리야~ 이모가 사업 잘돼서 기분 좋다. 엄마 몰래 아이스크림 사 묵어라잉~”

이모는 늘 핏한 바지 정장에 샤넬 립스틱, 검정색 외제차를 몰고 다녔다.

그리고 고급지게 웃으셨다. 왜인지 금자 이모는 ‘엄마들 중에 좀 다른 엄마’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게 멋있었다.


[엄마와 나 – 다시 현재]

“근데 왜 망했어?”


엄마

“사업 확장하다가 코로나 오고 타격이 컸나보더라.

명동에 목 좋은 곳에서 권리금 몇 억 날리고, 그 와중에 아들은 사업한다고 돈 달라 하고,

딸은 오스트리아인가 어데 유학 끝나고 뉴욕까지 가서 석사 마쳤는데, 상아 (금자 이모 딸) 가는 박사까지 한다캤다 아이가.

글서 내가 금자보고 '니 죽을 때까지 돈 보낼 자신 있으면 시키라'고 따라다니면서 말렸다.”

“음악으로 유학, 그거 돈을 줘도 끝이 없다 아이가.”


“아니 그래도 그건 원래 하던 건데, 해운대 집은 왜 날렸대?”


엄마

“아 코로나 때 사업이 잘 안 돼 힘드니까 어디 찜질방 다니면서 알게 된 사람한테 홀랑 꾀여서 어데 땅에 투자한 거 같더라고. 엄마가 볼 때는 기획부동산 그런 거 같데이.”


“아이고.. 상아는 결혼은 했고?”


엄마

“결혼은 무슨. 지금 한국 와서 다시 영어학원 다닌다 카더라. 오케스트라 쪽으로 취직하려면 영어점수 있어야 한다고.

가도 나이가 벌써 30대 후반인데 아직 자리도 못 잡고 바이올린 그거 뭐 한다 꼬 시작해서는.

재능이 있었으면 진작에 뭐가 돼도 됐겠지.”

(엄마는 내심 친구를 고생시키는 친구 딸이 미운 듯 하다)

“아들한테는 ‘이번엔 진짜다’ 할 때마다 돈 퍼줘서 다 말아먹게 하고.

딸은 뉴욕까지 공부 보내놨는데 콩쿠르 입상 한 번 못 하고…

그러다 이제는 집도 없고, 다시 직접 가게 나와서 김밥 말고 있단다.”


[회상 – 화자의 시선]

나는 금자 이모를 진짜 멋있다고 생각했다.

짧은 단발에 반짝이는 안경을 쓰고, 검정색 외제차를 운전하면서 우리 집 앞에 데리러 오던 모습.

‘아줌마 같지 않은 여자 어른’. 그게 내가 가진 금자 이모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한 번은 금자 이모네 집에서 저녁을 먹은 적이 있다.

식탁은 호텔 뷔페처럼 차려져 있었고, 이모는 빨간 립스틱에 금팔찌를 차고 주방과 거실을 분주히 오갔다. 길이 아저씨는 골프복 차림으로 소파에 앉아 신문을 넘기고 있었다.

“밥 무라, 여보— 이따 골프채도 챙겨놔라잉.”

이모 말투는 다정했지만, 꼭 명령처럼 들렸다. 아저씨는 아무 말 없이 신문만 넘기다가 느릿하게 식탁에 앉았다. 이모는 앉자마자 말했다.

“이번에 홈쇼핑 나간다 아이가. 당신 골프 치는 친구들한테도 말 좀 해놔라. 내가 번 돈으로 치는 골프 아이가, 광고 좀 해야 될 거 아이라.”

순간, 길이 아저씨가 젓가락을 내려놨다. 하지만 별말 없이 김치를 집어 먹었다.

그때 상아 언니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엄마, 유럽 쪽 음악원 석사과정 보니까 독일어도 해야 되던데요.”

이모는 눈을 번쩍 뜨더니,

“오케이, 독일어 학원은 엄마가 알아볼게. 상아 니 하고 싶은 거는, 엄마가 다 밀어줄기라.”

그 말투는 남편에게 할 때보다 훨씬 더 다정했다. 그 순간, 이모는 남편이 아니라 딸이랑 연애하는 사람 같았다.

그 집 식탁은,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는 자리가 아니었다. 성공한 이모의 무대 같았다. 아저씨는 들러리였고, 자식은 프로젝트였다. 이모는 자식들 어디 학원 보낼지, 유학은 빈(Wien) 할지 뉴욕으로 할지, 그런 얘기만 했다. 남편과는 말이 없었고, 자식들과는 숨이 붙어 있었다. 그 숨결은 돈으로 이어진 관계였다. 어렸을 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엄마 대사]

엄마

“사람이 혼자 다 안고 가면… 언젠가는 무너지는 기라.”

“금자는 자식도, 남편도, 돈도 다 챙기려다가… 결국 그게 무리였던 거지.”

“자식이 애인 돼버리고, 남편은 손님 돼버리면… 그 집은 오래 못 간다. 애인은 언젠가 헤어지고, 손님은 밥만 묵고 나간다 아인가.”

[엄마 – 조용히 덧붙이는 말]

엄마

“그래도 아직까지 금자한테 3억 묶여 있는 거 생각하면… 그 얘긴… 말도 꺼내기도 싫다.”

“…금자 이모한테? 엄마가… 돈을 빌려줬다고?”

엄마

“코로나 한창일 때 매출 다 끊기고 직원 월급도 밀렸다 카길래. 나중에 꼭 갚겠다 해서 그냥 줬다.”

“지금도 원금은 그대로고, 이자만 매달 꼬박꼬박 보내온다. 문자도 꼭 온다. ‘이번 달 이자 입금했어. 고마워…’ 이런 식으로.”

(작게 웃으며)

“며칠 전에도 김치랑 명이나물 한 보따리 보내왔더라.”

“그래도… 엄마는 뭐라 안 해? 계속 얼굴도 보고?”

엄마

“뭐라 할 게 뭐 있노. 금자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내가 그 입장이었어도 그랬을 거다. 금자랑은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고, 지금은 그냥… 좀 멀어진 가족 같은 기라.”


[내레이션 – 화자의 현재 생각]

나는 어릴 때 금자 이모처럼 살고 싶었고, 엄마처럼은 안 살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엄마는 별로 가진 게 없어도 덜 외로웠던 사람 같고, 금자 이모는 많은 걸 가졌는데 결국 아무도 남지 않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대사 마무리]

“…근데 엄마. 왜 많이 가진 사람들도 이렇게 되는 거야?”

엄마

“많이 가졌는지 아닌지는… 시간 지나봐야 아는 기다. 진짜 가진 건, 버티는 힘이제.”


[마무리 내레이션]

그날 밤, 금자 이모는 더 이상 내가 닮고 싶었던 사람이 아니었다. 세상 누구보다 멋져 보였던 이모가, 이제는 왠지 멀게만 느껴진다.

그땐 몰랐던 이야기들이, 이제야 비로소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는 그 시절에도, 한 손엔 보험 가방을 들고, 다른 손엔 도시락을 싸서 우리 둘을 키워냈다.

금자 이모는 고급차를 굴렸고, 엄마는 그냥 차를 굴렸다.

그런데 지금, 금자 이모는 김밥집을 다시 열었고, 엄마는 내 옆에서 손주를 보고 있다.


[마무리 독백]

사람이 가진 걸로 인생이 정리되진 않는구나. 그땐 몰랐던 이야기들이 지금 들어보니 너무 명확하게 와닿는다.

문득 내 친구 시경이가 떠올랐다. 요즘 친구 중에도 있다. 부부 사이가 소원해져서 아기 때부터 교육에 인생 올인하는 애.

그래도 다행인 건, 남편이 돈은 잘 벌어다 준단다. 시경이는 지금 아이랑 단둘이 제주도에 산다. 남편은 주말에만 잠깐 내려간다. 서울에 있을 땐 압구정까지 유치원 라이딩을 하더니 결국엔 제주도 국제학교까지 갔다.

이 모습이 왜 이렇게 낯설지 않고 익숙한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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