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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웃렛 May 28. 2024

달달이파의 괴로움

초코가 지금 너무 먹고 싶은데

요즘 나의 생활에서 가장 큰 고민이 있다면 바로 먹는 즐거움이다. 어디서부터 먹는 즐거움이고, 어디서부터 먹는 괴로움인지 크게 헷갈리기 때문이다.


나는 달달이파로서 나름대로의 자부심이 있다. 누군가의 분류법에서 보았는데, 달달이파는 크게 세 부류가 있다고 했다. 먼저, 초콜릿 그 자체를 추구하는 꾸덕초코파, 두 번째, 초코맛/향이 혼합된 합성달콤파, 그리고 세 번째, 이도저도 가르지 않는 범초콜릿사랑파 말이다. 이 중에서도 나는 첫 번째 유형으로, 다만 그날의 온습도와 분위기에 따라 두세 번째 유형으로 변주한다. 단순히 세 번째 박애주의 유형으로만 분류하기에는 어려운 이유는 추구하는 목적물이 날마다 변화하기 때문이다. 가령, 어떤 날은 하루 종일 밀크초콜릿바만 손에 쥐고 다니면서 빨아먹고 싶고, 또 어떤 날은 합성착향료의 가벼운 초코 단맛만 느끼고 싶다가, 어떤 날은 혈당피크를 노리는 ‘아무나라도 들어와(every choco welcome day)‘날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이런 나의 확고한 취향이 언제부터 형성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보통의 식사에서는 슴슴하고 심심한 음식을 좋아하기 때문에, 식재료로는 콩, 두부, 달걀, 버섯, 닭가슴살 등을 사랑하는가 하면, 네이버지도에는 칼국수, 콩국수, 평양냉면, 팥찐빵, 시루떡과 같이 할매입맛이라 여겨지는 음식의 맛집들을 목록화해두었다. 이러한 식성을 갖게 된 데에는 자극적인 음식을 먹으면 무언가 속이 불편하기도 하거니와, 결정적으로 어린 시절부터 먹어온 집밥은 늘 싱거웠던 데에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자아가 생기고 내 돈(용돈이겠지만)으로 내가 사 먹기로 결정한 외부음식은 거의 초코로 점철되었다. 이는 어쩌면, 현대인으로서, 현대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맛의 자극 속에서 균형을 지키기 위한 자연스러운 일처럼 느껴기도 한다. 모든 적당한 게 좋다는 게 이런 건가 보다.


반년쯤 전부터 초코는 간식이라는 일탈의 시간에서 그 영역을 점점 넓혀가면서, “초코가 지금 너무 먹고 싶은데 차라리 초코를 왕창 식사처럼 먹고 굶으면 되겠다! “라는 생각에 지배당하는 날이 계속해서 늘어났다. 앞서 살펴본 달달이파 분류 중 지난 반 년동안 나는 매일같이 1)꾸덕초코파와 3)범초콜릿사랑파를 넘나든 것이다. 평소 운동에 시간을 많이 쏟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초코가 지배하는 날을 이기기엔 역부족일만큼 초코를 먹어댔다. 그간 신체적 변화를 나열하자면, 아랫배가 더 불룩해졌고, 아래턱도 조금 늘었다. 결정적으로 몸무게는 5kg 불어났고, 바지 사이즈가 하나 커졌으며, 운동을 할 때에는 숨이 더 빨리 찼고, 내 몸이 무겁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초코로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풀어보았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것이, 그냥 ‘먹고 싶어서’ 초코를 먹고 불어난 몸매 때문에 그 이튿날에는 스트레스를 더 받았다.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고 나면 하루이틀은 나름 초코를 잘 참았다. 초코로 스트레스를 ‘푼’ 게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다시 한번 초코가 날 부르는 날이 돌아오기만 하면, 그날 내 혈당은 떡상이었을 것이다.


최근에는 이런 나쁜 식습관을 고쳐보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해보고 있다. 가정의학과 외래진료를 받으면서 식사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식사일지를 적어보기도 하고, 약속 없는 날엔 ABC주스를 직접 만들어 먹어보기도 한다. 하지만 초코가 나를 부르는 날이 이따금씩 찾아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몹시 곤란해졌다. 식사 욕심은 이전과 같이 적은 편인데도 초코욕심은 날로 늘어가니 말이다. 나는 심지어 야식을 먹지도 않는다. 배부른 채로 잠드는 것이 너무 버겁기 때문이다. 나의 문제는 단지 잘 깨어 있는 낮시간에 한정하여 초코를 미치게 먹는다는 것이다.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는 가정의학과 교수님께서는 “스트레스가 심한가 보네”라며 공감 어린 진단을 해주셨는데, 최근 무너진 식습관에 대해 자책하던 차에 가장 큰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원인조차 찾을 수 없던 범초코사랑증후군에 대해 공신력 있는 분석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요 몇 년 동안은 발레(ballet)를 하고 있다. 3주 후 가까운 미래에 군무 발표회가 있다. 다이어트는커녕 체급만 잘 불려 온 날들을 돌이켜보니 벌써부터 찍힐 사진이 두렵다. 가정의학과 교수님 분석이 정확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초코라는 스트레스 토출구만 애용할 것이 아니라 다른 아웃렛을 마련해 봐야겠다. 이 브런치 아웃렛이 초코에의 타는 목마름을 가셔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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