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일 살기 1

가자 오키나와로! 우당탕탕

by 미뇽작가

드디어 오키나와로 떠나는 첫날이 밝았습니다!

사실 고백할 게 하나 있는데요... 남편에게는 다녀오겠다고만 했지 이렇게 오래 머물 거라고 정확히 말하지 않았어요. (속닥속닥)


40일 계획으로 떠나지만, 기분 안 좋으면 일찍 돌아오고 기분 너무 좋으면 90일(무비자 꽉 채우기!)까지 버텨보려고요.


네 내 맘대로 떠나는 여행입니다.

왜 오키나와이냐면.. 거기 아들이 살고 있거든요.

아들 승군이는 오키나와에서 워홀을 마치고 정사원으로 취업을 했는데 아들 집에 밥 해주러 간다는 핑계로 도전하는 '오키나와 40일 살기 일기'입니다.


떠나기 전, 홀로 남을 남편이 눈에 밟혀 새벽부터 배추 된장국을 끓였습니다. 미안한 마음 반, 설레는 마음 반을 담아 보글보글 끓여낸 국 한 그릇에 제 양심(?)을 살짝 담아두고 왔네요.

사실 늦둥이 딸이 올해 초등학교 입학하는데 이렇게 떠나는 것도 마지막일 거 같아 용기를 내어본 거죠.


오빠 보고 싶다고 언제 가냐고 재촉하던 딸은 막상 출발하려니 슬퍼 보이는 거 같더니 아빠를 두고 간다며 출국장 앞에서 세상 서럽게 '즙'을 짜냅니다.


둘이 어찌나 절절하게 껴안고 우는지, 지켜보는 엄마는 살짝 소외감이 들 정도였답니다.

(누가 보면 영영 생이별하는 줄 알겠어...!)


하지만 그 애틋함의 유통기한은 생각보다 짧았으니...

보안검색대 통과하자마자 아빠는 까맣게 잊었는지, 아주 평온한 얼굴로 앉아 야무지게 빵을 먹고 있네요.

"방금 전까지 울던 그 아이 어디 갔니...?"

남편도 집에서 배추 된장국 보며 눈물 훔치고 있는 거 아니겠죠?

여보 잘 있어 ^^ 화분에 물 주는 거 잊지 마


인천공항 제2터미널 진에어 출국장 앞은 그야말로 **'뽀로로 천국'**입니다.

덕분에 출국 전 뜻밖의 1시간 무료 키즈카페 타임을 가져봅니다.

운 좋게도 옆에 계시던 외국인 어머니께서 영어로 같이 놀아주신 덕분에, 본의 아니게 '1일 영어유치원' 체험했어요.

그 사이 저는 비행기에서 먹을 까까 쇼핑을 위해 바로 앞 CU 편의점을 털었답니다.

혼자서 수화물을 이고 지고 정신없었던 차에 잠깐 꿀맛 같은 휴식타임이였어요.


인천공항 제2터미널은 먹거리 천국이더라고요!

삼진어묵부터 찐만두, 샌드위치, 던킨까지... 눈 돌아가는 맛집들 사이에서 까까 쇼핑을 마치고 어슬렁어슬렁 게이트로 향했습니다.


그렇게 까까 봉지를 소중히 안고 자리에 앉았는데...

오 마이갓.

제 옆자리에 웬 '칸예 웨스트' 같은 포스의 외국인 분이 미리 앉아 계시네요.

덩치가 어찌나 좋으신지,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거의 안기다시피 딱 붙어서 오키나와까지 날아왔어요.

가는 내내 졸음과 싸우느라 그분이랑 머리 박치기 할 뻔…


"잘 가요, 오키나와 칸예상... 즐거운 여행 되시길..."

본의 아니게 밀착 데이트(?)를 즐기며 드디어 오키나와에 발을 내디뎠습니다!


영하 10도 겨울왕국에서 영상 20도로 타임슬립하듯 도착한 오키나와!!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기다린 건 깐깐한 입국심사였어요. 왜 40일이나 있냐고 꼬치꼬치 묻더라고요. 40일 동안 뭐 할 거냐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냅니다.

이럴 줄 알고 어젯밤 열심히 일본어 연습했는데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더니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

"무스코와 오키나와데 시고또데스... 호테루 시고또 헤헤"

(아들이 오키나와 호텔에서 일해요...)


아들 밥해주러 온 엄마 콘셉트로 나불나불했더니, 심사관분이 그때부터 저를 **"마마~ 마마~"**라고 부르며 웃어주시네요. 세상 사는 거 다 똑같나 봐요!

무사히 통과했지만 이미 기가 다 빨려버렸습니다.


짐 찾고 주유패스 사려는데 걸려온 전화 한 통. 일본어로 뭐라 뭐라 하는데... 아뿔싸, 유모차를 입국장에 두고 온 거 있죠? 다시 입국장 옆문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잘생긴 직원분이 문을 열어주셔서 잠시 설레는 상상을... (번화 번호 저장할 뻔했잖아요?)

정신 차리고 택시 승강장에 섰는데, 택시아저씨들이 어디가냐고 따라옵니다 .


”NO! UBER!" 라고 외쳤더니 급 싸늘해지는 눈빛.


오키나와 공항에서 예약 택시를 타려면 13번 승강장으로 가야 해요. 일반 택시 아저씨들 눈치가 좀 보일 수 있지만, 당당하게 길 건너 13번으로 이동합니다.


주소지 입력을 잘못하셨는지 먼 길로 와버린 할아버지 기사님이었지만, 우버 할인 받아 너무 저렴하게 타서 모든게 용서가 됩니다. 게다가 캐리어 4개를 직접 다 옮겨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아들 집에 도착해 마주한 오키나와의 날씨는 그야말로 '선선한 가을과 따뜻한 봄 중간‘ 그 자체입니다.

따뜻하고 바람도 살랑살랑 불고, 뚜벅이 여행하기 딱 좋은 날씨!

속으로 '이번 여행에선 정말 많이 걸어야지!'라며 야심 찬 다짐도 해보았답니다. 후후.


하지만 저녁이 되니 체감온도가 쑥 내려갑니다.

한국에서 챙겨 온 보들보들한 털옷! 사실 가져올까 말까 고민했는데, 오키나와 봄 날씨에 정말 '후룩' 걸치기 딱 좋아요. 오키나와는 1월부터 봄이거든요.


한국에선 보일러 빵빵한 집에서 헐벗고 지내던 우리 딸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게 만드는 마법의 날씨네요. (오키나와는 실내 바닥이 차가워서 더 춥게 느껴지거든요!)

오키나와에서의 제대로 된 첫 식사는

가성비 넘치는 **하마스시(はま寿司)**로 정했습니다.

역시 '초밥국'답게 한 접시에 100엔대부터 시작하는 가격, 이거 실화인가요?

셋이서 배가 터지도록 먹었는데도 4만 원이 채 안 나오더라고요. 우리나라 물가 생각하면 정말 감동 그 자체...!

하마스시에서 배부르게 먹다 보니, 회사에서 일하는 아들 생각이 나더라고요.

연락해보니 휴식시간이라길래 직원분께 포장을 부탁해서 정성스럽게 초밥 도시락을 챙겨 들고 찾아갔죠.


"아들~ 엄마가 맛있는 초밥 사 왔어!" 하고 반갑게 들어섰는데...


우리 아드님, 지금 본인이 무슨 회사 후계자라도 된 줄 아나 봐요.

바쁘니까 빨리 가라며 초밥만 받고 저를 아주 쿨하게 밀어내네요. 흥!

하지만 엄마에겐 비장의 카드가 있지요.

“간장게장 가져왔어, 퇴근하면 바로 와! “

여기도 신년 새해맞이로 바쁩니다.

오키나와는 오늘까지 신정 연휴라 거리 곳곳에서 새해맞이 장식인 **'카도마츠(門松)'**를 볼 수 있어요. 대나무와 소나무로 장식된 그 생경한 풍경을 보니, 비로소 '아, 정말 새해가 밝았구나' 하는 실감이 나네요.


도시락을 주고 아들 일하는 거도 살짝 염탐하고 아들집에 가봅니다.


도착하자마자 짐 풀 시간도 없이 팔소매부터 걷어붙였어요.

겉보기엔 자기 방만 깔끔하게 치워놓은 것 같더니... 역시 살림 초보 티가 팍팍 나더라고요.

구석구석 27살 성인 남자가 아니라 '7살 꼬마'가 혼자 산 것처럼 엉망인 곳들이 눈에 띄네요.

싱크대와 화장실 상태를 보고는 정말 화들짝 놀랐답니다! 딸이 충격받아서 집에 가자 할까 봐 빛의 속도로 청소를 시작했어요.

얼마나 몰입해서 닦고 문질렀는지, 세상에... 주방 세제 한 통을 그 자리에서 다 써버린 거 있죠?


세제가 떨어져 당황하던 차에 동네 **코코 소분점(코스트코 소분 매장)**을 찾아내서 해결했어요! 필요한 만큼만 딱 살 수 있어 정말 다행이었죠.

그런데 세제를 사러 갔다가 제 눈길을 사로잡은 건 따로 있었으니...

바로 그 귀하다는 먼 나라 '두바이 초콜릿'!

잠시 달콤한 보상을 얻은 기분!

깨끗해진 집을 보니 속이 다 시원하네요. 이제야 진짜 '오키나와 살기' 할 맛이 납니다.

불타는 청소를 마치고, 서늘했던 집안에 온기를 불어넣어 봅니다.

전기장판을 뜨끈하게 켜고 온풍기까지 돌리니, 썰렁했던 냉골에 기분 좋은 훈기가 감돌기 시작해요.

절대 안 잘 거라며 눈을 부릅뜨고 버티던 딸도 따뜻한 공기에 취했는지, 어느새 스르륵-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저는 이제 곧 퇴근할 아들이 먹을 따뜻한 밥을 안쳐두고, 산더미 같은 짐 정리를 시작하려 합니다. 이렇게 저의 14번째 오키나와 첫날이 차분하게 지나가네요.


내일은 또 어떤 푸른 하늘이 푸른 바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내일 이야기로 다시 돌아올게요, 커밍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