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차 아침이 밝았습니다!
일단... 한국에서 프리볼트 전기장판 챙겨 온 제 자신, 머리부터 발끝까지 칭찬합니다. 덕분에 타지에서의 첫날밤을 노곤노곤하게 '꿀잠'으로 완성할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엄마의 따뜻한 전기장판 제안을 거부하고 호기롭게 잠들었던 우리 어린이는... 아침부터 콜록콜록 기침을 시작했네요.
여러분, 1월의 오키나와 날씨는 절대 만만하게 볼 게 아닙니다!
낮에는 여름처럼 해가 쨍쨍해서 덥다가도, 바람 불고 비가 오기 시작하면 체감 온도가 거의 영하 2 도급으로 뚝 떨어집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일본 집은 벽이 얇고 바닥 난방(온돌)이 없잖아요.
낮엔 반팔 입고 다녔는데, 지금 이 밤엔 바람 소리가 아주 휘모리장단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몰아치고 있어요.
창밖에서 "휘이익-" 소리가 무섭게 들리니 담이가 겁에 질려 묻더라고요.
"엄마, 밖에 괴물 있어...?"
"괴물도 지금은 잘 시간이야~ 얼른 자자."
했더니 무서웠는지 엄마 이불속으로 쏙- 파고들어 오네요. 귀여운 녀석!
오키나와 1월 장기계획하시는 분들, 전기장판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입니다. 꼭 챙기세요!
오키나와까지 밥 해주러 온 엄마는 오늘도 아침부터 부지런히 주방으로 출근합니다.
오늘의 메뉴는 실패 확률 0%에 수렴하는 '닭다리살 갈비 덮밥'!
비결은 아주 간단해요. 한국에서 소중하게 공수해 온 돼지갈비 양념 한 통을 아들이 미리 사다 놓은 순살 닭고기에 아낌없이 쏟아붓고 조려주면 끝!
야채는 사치일 뿐, 마지막에 파만 툭툭 썰어 넣었을 뿐인데 향부터가 이미 예술이네요.
이것은 정성인가, 기술인가... 아니요, 오로지 **'대기업의 맛'**입니다. (역시 갓뚜기, 갓청정원...!)
따끈한 흰쌀밥 위에 고기를 듬뿍 얹어 내어 주니, 27살 큰아들과 막둥이 담이가 나란히 앉아 냠냠 찹찹 어찌나 맛있게 먹던지요.
"엄마, 이거 진짜 맛있어!" 하고 엄지 척을 날려줍니다.
비장의 치트키 성공!
이건 어젯밤 승군이를 춤추게 한 간장게장입니다.
아침에도 이걸 찾길래 조금 꺼내줬어요.
사실 이걸 어떻게 가져오나 고민했는데, 쿠팡에서 주문하니 꽁꽁 얼린 상태로 배송되더라고요. 그 상태 그대로 아이스백에 넣어 오키나와까지 가져왔더니, 도착해서 먹기 딱 좋게 해동되어 있었어요. (완전 러키비키! )
어젯밤, 우리 승구니가 이 게장 하나로 밥을 무려 세 번이나 리필했습니다.
어찌나 맛있게 먹던지, 더 많이 가져오지 못한 게 한이 될 정도였어요. 진정한 의미의 '밥도둑' 검거 완료!
그냥 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맛있는 간장...
남은 간장으로 새우장까지 담가주려고요.
출근하는 아들에게 바리바리 챙겨 온 물건들을 전달합니다.
회사 분들께 돌릴 거라며 한국 간식들을 챙겨달라고 부탁하더라고요. 선배님들이 평소에 예뻐해 주신다며 사다 달라 하기에 엄마는 기쁜 마음으로 '한국 까까' 보따리를 정성껏 준비해 줬습니다.
저 하얀 봉투는 직속상사분에게 드릴 선물인데
자개로 만든 명함케이스예요. 저렴하고 한국스러워서 외국인 선물하기 너무 좋아요.
승군이가 왜 이리 윗분들을 챙기나 의아해서…
기특한 마음에 혹시나 슬쩍 사심 섞인 질문도 던져봤어요.
"혹시... 사장님 따님은 없니?"
"있어. 근데 다 결혼했대..."
에라! 어디 참한 오키나와 처자 어디 없나요? 아들 장가보내고 싶은 엄마의 헛된 상상은 이렇게 1초 만에 종료되었습니다.
아들 집 냉장고를 열어보고는 또 한 번 화들짝 놀랐어요.
가전 매장에 진열된 모델하우스 냉장고인가요? 텅텅 비어있다 못해 공허함마저 느껴집니다.
들어있는 거라곤 물, 약간의 양념, 그리고 닥터페퍼뿐...
아들아, 그동안 이 이슬만 먹고(?) 산 거니?
결국 '오키나와 살러 온' 엄마는 짐을 다 풀기도 전에 다시 길을 나섭니다.
남들은 여행 와서 관광지 맛집을 찾지만, 저 같은 장기 체류자에겐 **'오늘 뭐 해 먹지?'**가 가장 큰 과제거든요. 일단 냉장고부터 사람 사는 집처럼 채워 넣어야겠어요!
말이 좋아 오키나와 여행이지, 역시 살러 온 사람에겐 **'먹고사는 문제'**가 1순위입니다. 장바구니 든든히 채우러 마트로 출동!
장 보러 파르코 시티로 향하는 길!
그런데 길가에 범상치 않은 나무들이 줄지어 있더라고요. 자세히 보니... 세상에, 진짜 바나나 나무가 있어요!
동네 주민분이 정성껏 키우시는 건지 여러 그루가 꽤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더라고요.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오키나와의 명물, **'시마바나 나(섬바나나)'**일까요?
저번에 남편이 오키나와 길거리엔 바나나 나무가 널렸다고 했을 때, "어디서 뻥을 치냐"며 콧방귀를 뀌었거든요. 그런데 제 눈앞에 이렇게 실물로 나타나다니... 남편, 미안! 내가 당신을 너무 못 믿었나 봐.
잠시 남편 생각을 했더니 갑자기 심박수가 미친 듯이 치솟네요??
"뭐지, 이 정직한 내 몸의 반응은? ㅋㅋㅋ"
드디어 파르코시티로 향하는 긴 다리 위에 섰습니다!
이 다리를 건널 때 재밌는 점 하나.
현지인들은 익숙한 듯 왼쪽 길로, 관광객들은 바다 전망을 보러 오른쪽 길로 모여들더라고요.
저는 관광객 모드로 당당히 오른쪽을 선택했죠!
그런데... 오키나와 바닷바람, 정말 장난이 아니네요?
갑자기 모자가 훌러덩! 벗겨지는 바람에 바다에 빠질까 봐 혼비백산했어요. 급한 대로 모자를 점퍼 안에 쑤셔 넣었는데...
"어머, 웬 임산부가...?"
모자가 점퍼 안에서 툭 튀어나와 버리니, 누가 봐도 영락없는 임신한 여자 같은 비주얼이 된 거 있죠!
지나가는 차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져서, 민망함에 고개도 못 들고 바다만 뚫어지게 보며 걸었답니다. 아, 정말 부끄러워라!
비록 몰골은 조금(?) 우스워졌지만, 다리 위에서 본 오키나와 바다만큼은 정말 끝내주게 예뻤습니다!
바다로 바로 내려갈 수 있는 길도 보입니다.
보자마자 생각했습니다. '우리 담이랑 올 때는 여긴 절대 보여주지 말아야지!' 하고요.
보여주는 순간, 우리 담이는 아마 망설임 없이 바다로 입수해 버릴 게 뻔하거든요.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니 세상에, 물고기들이 제법 바글바글해요!
투명한 바닷속 물고기 멍을 때리며 한참 구경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 '급 X'의 신호!
그때부터는 풍경이고 뭐고 파르코시티를 향해 전력 질주를 시작했습니다.
‘아 다리 너무 길어요. 아 배 아파.’
마침 앞뒤로 조깅하던 서양인들과 러닝 크루들이 제법 있었는데, 제가 너무 자연스럽게(?) 그들 틈에서 같이 뛰고 있더라고요.
누가 보면 저도 오키나와 현지 런닝 크루인 줄 알았을 거예요.
'좋아! 자연스러웠어...'
필사적인 질주 끝에 파르코시티에 무사히 골인(?)했습니다.
식은땀을 흘리며 파르코시티 신호등 앞에 섰을 때였어요.
제 시야에 들어온 웬 낯선 남녀의 투샷! 분위기만 보면 세상 애틋한 연인 같았는데요.
알고 보니 저 여자분, 길 가던 처음 보는 남자분께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시더니 저렇게 세상 아련하게 분위기를 잡고 계시더라고요.
그 찰나의 '화보 촬영' 현장이 어찌나 비현실적이고 웃기던지!
그 광경을 멍하니 구경하느라 제 뱃속의 폭풍 같은 신호가 잠시 사그라드는 기적(?)이 일어났지 뭡니까.
드디어 파르코시티 입성!
하지만 저에게 '쇼핑'은 뒷전이었습니다.
제 머릿속엔 오직 하나, **'화장실'**뿐.
여기가 워낙 넓다 보니 입구 근처에 바로 화장실이 안 보여서 정말 식은땀이 줄줄 났어요. 이때가 정말 이번 여행 통틀어 최대의 고비였던 것 같아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살아야겠다는 인내와 끈기로 층별 안내도를 매의 눈으로 스캔합니다.
"찾았다, 나의 안식처...!"
무사히 일을 치르고(?) 밖으로 나오니, 세상이 아까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 보이고 오키나와 공기가 이렇게 상쾌할 수가 없네요. 역시 사람은 비워야 채울 수 있는 법인가 봅니다. 하하하!
평화를 되찾고 나니 비로소 주변의 풍경... 아니, 맛있는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라고요. 하하. 제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바로 KFC 런치 메뉴! 절체절명의 순간을 넘기고 난 직후라 그런지 평소보다 훨씬 더 매력적으로 보였는데, 아들 생각이나 종류별로 사봅니다.
마트로 향하는 길 마루가메제면이 보이네요. 이곳은 주문하는 즉시 눈앞에서 탱글탱글한 면을 바로 데쳐서 내어주는데, 그 속도와 신선함이 정말 최고예요.
시동생이 워낙 이 집 우동을 좋아하는 '마루가메 마니아'라, 정성스럽게(?) 사진을 찍어 실시간으로 전송했습니다.
"여기 오키나와 마루가메제면이야~ 진짜 맛있겠지? 약 오르지 메롱! "
드디어 진짜 일상으로의 복귀, 마트에 입성했습니다!
그런데 과일 코너에 갔다가 뒷걸음질 칠 뻔했잖아요.
오키나와에서 가장 비싸고 (심지어 맛도 별로라는) 딸기, 그리고 영롱한 자태의 샤인머스캣... 가격을 보니 샤인 한 송이에 무려 24,000원이더라고요!
"이런 건 절대 사 먹어주면 안 됩니다!"
우리가 눈 딱 감고 안 사 먹어야 저 콧대 높은 가격이 좀 내려가지 않겠어요? ㅋㅋㅋ
아무리 아들 밥해주러 왔다지만, 이 가격에 과일을 사는 건 제 살림 사전에는 없는 일입니다.
잴리 같은 땅콩으로 만든 자마미두부를 대신 넣어봅니다.
오키나와에서 구하기 힘든 콩나물이 파르코시티에선 팔아요. 제일 큰 거 하나 넣어봅니다.
계란찜 차완무시가 한 개 500원꼴 너무 저렴하죠
과일 코너에서 샤인머스캣 가격에 놀란 가슴, 수산물 코너에서 진정시켜 봅니다.
역시 섬나라답게 생선 종류가 정말 다양해요.
특히 제 눈을 사로잡은 건 저 푸른 빛깔의 생선!
오키나와에서 **'이라부 챠(파랑비늘돔)'**라고 불리는 녀석인데, 정말 형광펜으로 칠해놓은 것처럼 화려하죠? 처음 보면 "이걸 정말 먹는다고?" 싶지만, 오키나와에서는 아주 대중적인 횟감이랍니다.
오늘은 구경만 합니다.
아까 그 파란 물고기도 신기했지만, 옆을 보니 이번에는 눈빛이 아주 살아있는(?) 생선들이 저를 째려보고 있더라고요.
마치 "나 사 갈 거야? 정말 구울 거야?" 하고 묻는 것 같은 무시무시한 눈빛... 기가 죽어서 다른 녀석을 집어듭니다.
결국 오늘의 최종 선택은 우리에게 익숙하고 만만한 '임연수'!
구워져 있어서 데워서 먹이기만 하면 되니까 너무 좋아요.
생선 코너에서 기싸움을 마친 후, 발길이 닿은 곳은 바로 천국 같은 디저트 코너!
베이비슈(홋카이도 밀크 슈크림), 이거 진짜 물건이죠! 퐁신퐁신 진한 우유맛이라 사르르 녹아요.
그리고 우리 막둥이 담이를 위한 요구르트도 잊지 않고 챙겼습니다.
오리온 '이치반사쿠라(いちばん桜)': 오키나와에 이른 봄을 알리는 벚꽃 맥주입니다. 분홍분홍한 패키지만 봐도 설레는데, 오키나와 벚꽃 꽃잎을 사용해 특별하게 빚은 한정판이에요. 맛이 특별한 건 없지만 봄 감성 느끼기 충분해요.
저를 위한 간식도 챙겨봅니다.
오키나와 시콰사 츄하이: 오키나와 하면 빠질 수 없는 상큼한 시콰사! 톡 쏘는 탄산과 상큼한 과즙이 오늘 쌓인 피로를 싹 날려줄 것 같아요.
흑모와규 & 프리미엄 돼지고기: 아들과 담이를 위해 오키나와 산 흑모와규와 품질 좋은 돼지고기도 넉넉히 챙겼습니다.
마트에서 양손 가득 장을 보고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아들 출근 시간도 다가오고, 혼자 있을 담이 생각에 마음이 급했거든요.
급한 대로 **디디(DiDi)**로 택시를 호출했는데, 여기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제가 예약한 택시에 다른 아가씨 일행이 자기들 차라며 타려고 하는 거예요! 서로 어플을 확인했는데... 맙소사, 예약 차량 번호가 똑같아요. 어떻게 이런 오류가 있을 수 있죠?
심지어 기사 아저씨는 5명인 저쪽 편을 들며 저보고 미안하다고 내리라는 식... 5:1의 머릿수 싸움에 졸아서(?) 싸울 수도 없고, 결국 대기 중이던 다른 택시를 잡아 타고 아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겨우 집에 도착해 한숨 돌리나 싶었는데, 디디 택시에서 문자가 왔습니다. 제가 타지 않아서 '노쇼'라며 500엔을 결제하라는 거예요!
너무 피곤해서 그냥 낼까 싶다가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선례를 남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끈기 있게 고객센터에 상황을 설명하고 이의 제기를 했더니, 결국 잘못을 인정하고 수수료 면제를 받았네요!
"디디, 내가 끝까지 지켜볼 거야... 부들부들!"
오늘 장보기의 일등 공신, 바로 이 소고기입니다!
때깔 좀 보세요. 정말 신선해서 그냥 생으로 먹어도 입안에서 살살 녹을 것 같지 않나요? 오키나와에 오면 비싼 과일 대신 이런 현지 와규를 사 먹는 게 진정한 이득입니다.
지글지글 맛있게 구워서 줬더니 우리 담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보더라고요.
"엄마, 이거 뭘로 만들어서 이렇게 맛있어?"
제가 장난기 섞어서 "이거 오키나와 음메 소야~" 했더니, 담이가 단호하게 "뻥치지 마!" 라며 안 믿어주는 거 있죠? 담이 입장에서는 이렇게 맛있는 게 그냥 소일 리 없다고 생각했나 봐요.
결국 '음메 소'의 정체는 밝히지 못했지만(?), 담이가 너무 맛있게 먹어줘서 엄마는 오늘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시는 기분이었답니다. TV 없는 아들의 작은 집에서 고기 구워 먹으며 딸과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이 시간이 참 행복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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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이를 재우고 나니 집안에 비로소 고요가 찾아왔습니다. 곧 퇴근할 아들에게 줄 밑반찬을 만들 시간!
아들 집의 코딱지만 한 주방에 서서 마늘을 하나하나 까고 다지고 있으니, 꼭 어릴 적 소꿉장난하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좁은 공간이지만 아들이 제일 좋아하는 **'매콤 콩나물무침'**을 무쳐내는 손길엔 정성이 가득 담깁니다.
아까 사 온 오키나와 현산 고퀄리티 소고기를 지글지글 굽고 이 매콤한 콩나물무침을 곁들여 내어 줄 생각을 하니 벌써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네요. 엄마의 손맛이 듬뿍 들어간 이 반찬이 아들의 타지 생활에 작은 힘이 되길 바라봅니다.
저도 맛 좀 볼까요??
오키나와에서 취직한 아들 집에 40일 예정 얹혀살기 중입니다. 앞으로의 일기도 많은 관심부탁드려요^^
다음 편은 금요일에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