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냈지만, 사실은 위로받고 싶었다

감정을 몰라서, 외로웠던 나에게

by 느린 마음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던 내가 고3 1학기 내신시험을 망쳤었다.
당시의 나는 ‘망했다’는 표현 말고는

그 감정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모든 게 끝난 것 같았다.
나는 그 불안과 자책을 어머니께 털어놓고 싶었다.


"엄마, 제 인생은 망한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이런 거였다.

“많이 속상했겠네.”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으면 그렇게 크게 실망했겠어.”

단순히 내 마음에 공감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돌아온 건
“그깟 시험 하나로 인생 망했다고 하지 마.”
“그런 정신력으로 어떻게 살려고 그래.”

나를 걱정하는 마음이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내 마음에 대한 공감은 없었다.


어릴 적 부터 그런 일은 정말 많이 반복되었었다.

나는 감정을 꺼내는 일을 조금씩 줄이게 되었다.

괜히 나약해 보일까 봐,
민망한 사람이 될까 봐,
다시는 감정의 언어를 꺼내지 않았다.

감정을 부정해버리면서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도 알 수 없게 되었다.




심리학자 레슬리 그린버그는 말한다.
“감정을 억누르다 보면,
그 감정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감정은 느끼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표현되어야 비로소 정리된다.

하지만 나는 오랫동안
내 감정을 해석하지도,
누구에게 꺼내지도 못했다.


지금껏 나는 남에게 잘 맞춰주는 사람인 줄 알았다.
배려심 있고, 조용히 참고, 책임지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건 내 감정을 말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걸.




요즘 나는 내 안의 작은 목소리를
그대로 들어보려 한다.

“지금 이게 속상한 거야?”
“슬픈 거야, 아니면 그냥 피하고 싶은 거야?”

"그냥 위로가 필요한거야?"

누구에게 말하지 않더라도
나에게는 감정을 말해주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게 내가 다시
나를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을거라 생각한다.

아직은 본인의 감정을 마주하는 것이

너무 난해하고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감정을 마주할 기회가 없었으니까.

하나씩 천천히 연습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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