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고 말했지만, 나는 전혀 괜찮지 않았다

감정을 마주할 기회를 잃는다는 것

by 느린 마음

2000년대 추운 가을날,

실낱같은 기대가 있었지만 수능 가채점을 끝내고 나는 좌절했다.
당시의 나는 스스로를 자책하면서도, 그냥 인생이 망했다는 생각 뿐이었다.
스스로가 너무 무가치하다고 여겼고 스스로가 참 싫었다.


가채점 결과가 틀렸기를 바라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논술 시험을 보기위해 어머니와 함께 서울가는 버스에 올랐다.

어머니는 연거푸 위로의 말을 건넸다.
“괜찮다”, “인생에서 중요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경험이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그 말들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혀 납득이 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미 스스로 자책하기 바빴던 나에게 그런 말이 납득이 되었을리가 없다.

오히려 괜찮다는 말 앞에서, 나는 힘들다고 말 할 기회조차 박탈당했던 것 같다.




지금 돌아보면,
그 경험은 단지 수능이라는 사건을 넘어서,
감정을 정당하게 경험하는 기회를 박탈당한 가장 강력한 순간이었다.


물론 감정을 마주하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었기에,
나는 평생을 합리화하거나, 무시하거나, 숨기는 방식으로 살아왔다.
나의 감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헤아리지 못했다.




심리학자 다니엘 시겔은
“감정을 인식하고 이름 붙일 수 있을 때, 비로소 그것을 조절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감정을 억누르고 무시하는 경험이 반복되면,

자신의 내면 상태를 파악하는 뇌의 회로 자체가 약화된다고 한다.

나는 그렇게 감정을 말하지 못하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물론 나 하나의 문제가 아니었다.
어머니, 아버지 역시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힘든 시절을 보내며 "괜찮다"는 말만 들으며
자신의 감정을 배울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나는 조금 다르게 살아보려고 한다.
누군가가 힘들다고 말하면,
무엇보다 먼저 그 감정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해주려 한다.

“그럴 수 있어.”
“지금은 그렇게 느껴도 괜찮아.”


이 단순한 인정이,
감정을 배우고 회복할 수 있는 첫 문장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혹시나 스스로 어떤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 든다면,

그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그냥 어떠한 감정이 내면에서 소용돌이 치고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감정을 인정하고,

내가 그 감정에 휩싸일 수 있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으로 마음이 건강해지는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위로 역시 그렇다.

당장의 슬픔과 절망, 질투심과 이기심 모두 옳다.

그걸 이상하게 표출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지 그냥 그런 기분이 들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기분을 물어봐주고,

상대가 그 감정을 용기있게 마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진정한 위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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