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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Dec 20. 2022

크리스마스 하나도 기대 안 된다

진짜 정말 안 된다




크리스마스 하나도 기대 안 된다.


밈처럼 쓰이는 이 말은 크리스마스를 누구보다 기대하는 사람들이 반어법으로 사용하면서 내면의 기대감을 더욱 폭발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기대가 안 된다. 예전에는 크리스마스 일주일 전부터 들떴는데 어느 날부턴가 설레지 않는다. 크리스마스라는 특별한 날이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지나갈 하루를 비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평소라면 집에서 쉬는 게 참 아늑하고 좋은데도 오늘이 리스마스라는 이유로 이래선 안 될 거 같다. 더 의미 있게 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평범하고 소박한 하루를 초라하게 만든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밖에 나가거나 친구를 만나보지만 하는 일은 일상과 똑같다. 음식을 먹고 카페에 가서 떠들거나 보드게임 카페를 가거나 노래방을 가거나 쇼핑을 하거나……. 정말이지 나쁘지 않은 하루인데 1년에 단 한 번뿐인 날을 기념할 만한 독특한 일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시시해진다. 기념일이라는 이유만으로 설렜던 어린 날과 달리 기념일이기에 설레는 일을 해야만 하는 어른이 되고 나니 정말, 정말 하나도 기대되지 않는다. 주객전도가 된 건 알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기대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긴장까지 되는걸. 어떻게 보내야 알차게 보냈다고 소문이 날지 머리를 싸매느라 스트레스다. 막상 당일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크리스마스뿐만 아니라 생일, 할로윈, 새해도 전부 그렇다. 그러다 보니 삶이 참 시시해졌다. 특별하다는 건 대체 무엇이기에 나를 이렇게 괴롭히는 걸까? 특별하지 않은 특별한 날은 의미가 없을까? 그래서 나의 크리스마스 중에 정말 특별했던 날이 있었나?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지금, 마음 급하게 할 일을 정하기보다 곰곰이 나의 지난 크리스마스 기간을 돌아보는 기간을 가지기로 했다.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행복한 추억 중 가장 오래된 기억은 산타 할아버지를 만난 일이다. 거짓말이 아니다. 나는 정말 산타 할아버지를 만났다. 구전되듯이 굴뚝을 타고 들어오지도 않았고 아파트가 많은 한국인 맞춤형으로 창문을 넘어 들어오지도 않았지만 산타 할아버지는 산타 할아버지였다. 빨간 모자에 빨간 옷을 입고 빨간 보자기를 들고 온 그 분은 듣던 대로 하얀 수염을 달고 있었다.


사실 산타 할아버지는 유치원 행사에 동원되신 분이 분장한 모습이었다. 그 듬직한 산타 할아버지가 원장 선생님이었는지 아르바이트생이었는지 누군가의 아버지였는지 알 수 없지만 누구였든 중요하지 않다. 산타 할아버지로 각인되었으니 진실을 알고 난 지금도 산타 할아버지로 남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 산타 할아버지를 만난 일은 한 번 더 있었다. 캐나다 여행 갔을 때였다. 패키지투어는 여행객을 정신없이 끌고 다녀서 피곤하기만 하고 어느 지역을 갔는지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어찌 되었건 투어 중 도착한 한 마켓에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한국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거대한 트리가 있었고, 그 근처에 산타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행사를 하고 있었다. 당연히 줄을 섰는데, 산타와 함께 사진을 찍는 것보다 더 특별한 일이 벌어졌다. 


바로 앞에서 줄을 선 여성분이 산타에게 강아지와 함께 사진을 찍어줄 수 있겠느냐고 요청했다. 산타는 흔쾌히 수락했고, 산타를 처음 본 강아지는 꼬리를 흔들어 대며 주변을 배회했다. 커다란 골든레트리버로 기억하는데 사진을 찍는 내내 활짝 웃는 강아지가 어찌나 행복해 보이던지. 내가 산타와 사진을 찍는 순간보다 더 소중했다.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의 크리스마스도 기억난다. 산타를 진심으로 믿진 않았지만 없을 이유도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만 나이가 들었을 때의 크리스마스 아침이었다. 선물을 받을 생각에 들떠 안방으로 달려갔다. 아빠는 크리스마스를 축하한다며 안타깝게도 산타 할아버지가 아주 바빠서 찾아오진 못했다고 했다. 나의 믿음은 무신론자가 그리스 로마 신화를 믿는 정도와 비슷해서 별생각은 없었다. 대신 선물을 받지 못한다는 점이 내심 서러웠는데 눈치를 챈 아빠가 덧붙였다. 대신 산타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선물 사는 걸 맡기셨다고. 


거실에 가보니 커다란 엽기토끼 인형이 놓여 있었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엽기토끼는 산타복을 입고 있었다. 엽기토끼는 십여 년간 나와 함께 하다가 집에 있는 인형 여러 개를 기부할 때 함께 보냈다. 엽기토끼가 내게 찾아온 그 순간처럼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선물이 되기를.





그런가 하면 산타 할아버지의 ㅅ도 없이 보낸 날도 있다.


때는 바야흐로 내가 다 컸다고 생각한 15살. 크리스마스라고 무작정 나가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개학 중에는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다가도 방학 땐 집에서만 지냈기에 무척 오랜만에 연락하는 친구였다. 오랜만에 만나자고 했지만 친구는 사정이 있어서 어렵다고 했다. 아니면 귀찮아서 싫다고 했던가. 아쉽지는 않았다. 그때부터도 혼자 노는 걸 참 잘했으니까. 다만 그때도 크리스마스엔 특별한 걸 해야 한다는 혼자만의 압박감이 있었다. 뭐라도 해야 할 거 같아서 고민하다 떠오른 게 영화였다.


동네 영화관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아늑해서 좋았다. 팝콘과 콜라를 사서 극장 안으로 들어가니 크리스마스도 오랜만에 연락했지만 만남을 거부한 친구도 다 사라지고 영화만 남았다. ‘어거스트 러쉬’. 천재 기타리스트 아이가 가족을 잃고 거리를 전전하며 생활하다가 결국 기타 덕분에 가족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다. 겨울보다 봄에 어울리는 분위기였다. 밝고 희망찬 음악에 여운이 오래 갔다. 기타를 말 그대로 ‘치는’ 연주법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처음 보는 연주법이기도 했고 리듬감과 멜로디를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관을 나왔지만 영화 속에 있었다. 크리스마스를 즐기기 위해 나온 군중 속에서 혼자 있어도 고독하지 않았다. 주인공이 내 옆에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영화를 보고 나오자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지금이라도 나가도 되냐고. 후에 친구와 어떻게 놀았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행복이 행복으로 전염되던 순간은 잊히지 않는다. 전화를 받았을 때 꼭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것처럼 설렜다.





좋은 컨텐츠에 흠뻑 취해 보낸 크리스마스가 하나 더 떠오른다. 친구와 함께 공연을 보러 갔었다. 역시 크리스마스와 관련이 없는 내용의 뮤지컬이었다. 시한부인 주인공이 늘 학교에서 자신처럼 겉도는 비행 청소년과 함께 남은 시간 동안 버킷 리스트를 이루는 이야기였다. 늘 죽고 싶어 했던 소년이 곧 죽을 아이를 만나 삶은 살아내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거라는 걸 깨닫는 과정을 그려낸 이 극은 사는 의미를 못 찾고 있던 때라서 더 깊게 다가왔다.


참 오랜만에 보는 친구였다. 그동안 잘 지냈는지 궁금했는데 연락하기 뭣해서 잊은 채 살다가 크리스마스라는 핑계로 불러내었던. 공연 내용과 그동안의 일을 늘어놓으며 마로니에 공원을 걸었다. 크리스마스트리에 달린 전구는 반짝거리고 도로에 멈춰선 거대한 트럭에선 캐럴송이 흘러나왔다. 


날이 적당히 추워서 걷기 좋았다.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를 중요하게 떠들며 걸어가다가 웃음을 토하는 게 얼마나 즐거웠는지. 사실 너무 춥고, 너무 시끄럽고, 너무 오랜만에 만나 무슨 이야기를 할지 고민하느라 어색했을지도 모르지만. 추억은 왜 항상 이렇게 좋게 남는 건지. 그때 용기 내어 만난 친구와 다시 연락이 끊긴 게 아쉬울 뿐이다.


추억을 정리하는 동안에도 크리스마스에 있었던 다양한 일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타자치는 손길이 점점 바빠진다. 혼자 보낸 크리스마스의 어느 날엔 함박스테이크와 파스타 밀키트를 샀었다. 크리스마스라고 뱅쇼가 선물로 왔는데 혼자 요리하고 먹으며 보내니 꼭 대단한 하루가 된 것 같았다. 


엄마와 함께 보낸 뉴욕의 크리스마스는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이다. 백화점 건물 전체에 조명등을 설치하고 빛을 이용해 영상을 만드는데 발걸음이 안 멈출 수 없었다. 고등학생 때는 친구들과 집에서 모여 케이크도 먹고 즉흥 연기랍시고 칼싸움하는 시늉도 하며 실컷 놀았고. 참, 생각하고 나니 많다. 모두 평범한데 소중하다.





생각해보면 2n 번이나 경험한 크리스마스는 더 이상 특별하지도 기대되지도 않는 건 당연하다. 아무리 좋아하는 음식도 매일 먹으면 질리고 기쁜 일도 반복되면 일상이 되기 마련인 것처럼. 그런데 꼭 과거의 좋았던 기억이 올해에도 반복되지 않으면 죄를 짓는 것처럼 불안했다. 설레는 마음을 충족시킨 크리스마스가 있으면 그렇지 않은 날도 있는 게 맞는데.


작은 청문회를 열고 나서야 부담을 덜어낸다. 유독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도 않았고 완벽하지도 않았지만 크리스마스는 그 자체로 오래 기억에 남는 무언가가 있다. 공기에 맴도는 기대감 때문일까. 모두 환히 웃으며 거리를 걷기 때문일까. 아니면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면 평범한 일상도 특별한 하루가 되기 때문일까.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데 새로운 의미를 찾으려고 하니 될 리 없다.


그러니 특별한 크리스마스를 만들기 위해 안달복달 하기를 멈춘다. 기대, 하나도 안 된다. 대신 기다리기로 한다. 몇 년 뒤에 크리스마스를 떠올렸을 때, 올해는 또 어떤 추억으로 남을지 상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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