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칸씩, 다시 걷는다

삶이기에..

by 에스더


암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

나역시 이 5단계가 자연스럽게 주어졌다.


“아, 이게 나한테도 올 수 있구나.”


충격도 부정도 더 이상 현실적이지 못했다.

극복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더 중요했다.

눈물이 나지 않은 건,

이미 그전부터 오래 울었기 때문이다.

기운을 잃고 무너지는 건 선택지에 없었다.

누가 나 대신 챙겨줄 사람도,

옆에서 같이 아파줄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치료는 고되었다.

3회에 걸쳐 적절한 시일 간격을 두고

1회에 주 5일씩, 하루 12시간의 항암맞기,

25회에 걸친 방사선 쬐기,

나름 의지력이 강하다고 자부하며 살았지만,

독한 약과 강한 고에너지 방사선의 압박은

결코 쉽지않은 것이었다.

신체는 쇠약 해 질대로 쇠약해졌다.

두피를 이탈한 머리카락은

가슴의 미어짐속으로 심기워졌다.


“감성적일 수 없다. 정신 차려.”


마치 하루하루가 생존 훈련처럼 흘렀다.

살아내기 위한 방법을 찾는데,

운동이라는것도 또한 필수였다.






그중에서도 ‘론볼’이라는 생소한 종목이 있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지만,

처음 공을 굴려본 날 이상하게도 몸이 반응했다.

살기 위해 하는 운동이 아니라,

살아있다는 걸 느끼기 위한 운동처럼 느껴졌다.


처음에는 건강을 위해 시작했지만,

지속하다보니 국가대표라는 목적으로 변했다.


혼자 훈련장에 나가고,

비오는 날에도 비를 피해가며,

무더운 날에도 무장하고 공을 굴리며 땀을 흘렸다.

체력이 달리면 앉았다가 다시 일어났고,

마음이 쪼그라들면 털어내어

지면으로 공과 함께 굴렸다.

장애로 인해 걷는 속도도,

자세도 조금은 다르지만 그 다름 속에서만 느껴지는 호흡과 리듬이 있었다.


살아내기위한,

또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위한

혹독한 시간을 지내다보니 어느 순간,

내가 국제대회에 출전했고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아시안 패러게임

론볼 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 모든 과정속에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기도가 있었고

하나님께서는 늘 응답하시는 분이셨다.



누군가에게는

“대단하네요”

라는 말로 끝날 수 있겠지만,

내게는 그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살아 있다는 걸 확인하는 방식,

그게 나에겐 ‘걷는다’는 감각이었다.

넘어졌다 일어나는 게 아니라,

멈췄던 걸음 하나를 다시 내딛는 일,

그래서 지금도, 나는 한 칸씩 걷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같다.

누구에게는 그저 스쳐가는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오늘 하루 버틸 힘이 될 수도 있다면, 그거면 충분하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쓰려고 한다.

내 이야기를,

내 걸음처럼 한 칸씩,

천천히,

그리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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