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에..

첫 만남

by 에스더


소녀의 꿈은 늘 자유했다.

한계라는 것에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단발 머리 곱게 빗어내린 그 시절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 가면서 그 자유는 서서히 무너져갔다.


그리고

언제나 햇볕은 화사했지만

마음은 늘 눅눅한 그늘이었다.


이야기 상대는 없었다.

부모 형제도,

친구들도 다 추구 하는 일을 따라 바뻣다.


그 시절엔

장애인에 대한 전반적인 사회적 인식은

장애보다 더 큰 장애였다.

십미터 반경에서 부터 피하는 선입견이 싫었고

왠지 색 안경 낀것 같은 그들의 시선이

받아 들이기 힘들었었다.


중등시절

가슴이 부풀고 머리가 굵어지면서

집 밖으로 나서기를 포기했다.

나의 꺾이지 않는 고집에 어쩔 수 없어 포기 하신 부모님은 다만 안타깝게 관망만 하셨다.

힘없는 다리는 점차 더 약해졌고 다리 형태는 걷기에 최악의 상태로 굳어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거동의 제약을 받게 되었고

그렇게 감옥 아닌 감옥에 갇힌 셈이 된것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마당 편상 한 켠에 앉아서 종일 생각을 잃은채 세상을 내려다 보는 일 이었다.

때론 멀리 보이는 누군가의 뒤를 따라

어디론가 한없이 날아 가 보기도 한다.

동상처럼 미동도 없이 앉아 있다보면

어느사이 어둠이 내려 앉고,

익숙한듯 어둠속으로 흡수되어진다.

때론 내 설음에 소리 죽여 흐느끼기도 한다.

어쩌다 별이 총총한 밤 하늘을 올려다 보면

그 너머 먼, 천국 어딘가에 계실 친모를

그리움으로 부르기도 한다.


당시 지대가 높은 동네에 살고 있었다.


멋진 야경은, 때론 기죽은 감성을

나름 부축여 주기도 하고

종일 그렇게 고독했던 하루의 시름을

조용히 위로하는 듯도 했지만,

어쩌면 사회를 향한 애틋함을

더 짙게 했는지도 모른다.

늘 자정이 지나도록 어둠속의 소녀는

찬란한 네온사인 속을 한껏 날아다닌다.


어떻게, 목발을 구입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를 못했는지..,




북가좌동의 부흥회 참석은

나름의 주어진 진통을 견디다 지쳐

채념으로 무뎌져 가는 가슴에

희망의 불씨를 지피기 위한 선택이었고

자의든 타의든 재촉된 길 이었다.


몸도 제대로 지탱하기 힘들어 하는

걸음을 부축한채

모친은 비지땀을 연신 닦아내며

당신의 속내를 각인하듯 전해 주셨다.

가쁜 숨이었지만, 조용하고 단호한 음성이셨다.


“하나님은 못 고치실 병이 없단다.
간절히 기도드리렴. 다리를 낫게 해달라고.”


모친은 소녀를 설득해서 부축하고

부흥회 장소로 찾아 가는 길이었다.



(예전의 청년시절부터 모친은,

"예수를 믿으려면 내 주먹을 믿겠다!"

라고 주장 할 만큼

완강하게 예수님을 부인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전도 되셨는지 모를일이다.

그리고 소녀는 그분의 손에 이끌리어 하나님의 은혜의 장소로 나아가게 되었다.

난 생각한다.

그리고 믿는다.

하나님의 섭리 였음을..,)



3살적에 소아마비를 앓았단다.

병명 그대로 오른 쪽 다리는 마비되어

멋대로 휘어 이미 굳어진 다리였다.
'정말 나을 수 있을까?'

문제의 한계성은 부정을 더 확대시켰지만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믿음을 흉내 낼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힘겹게 비탈을 오르고 보니

공터에 하얂 천막이 세워져 있었다.
앉을 자리는 이미, 첫 눈에도 느낄 수 있는

쇠약한 분들로 가득했다.

모두 어른들이어서

그 분위기가 낯설고 썩 어색했다.


초등 시절 이후
처음으로 예배라는 공식적인 자리에 앉았다.


( 8세 그해 겨울 날, 화제로 친모를 잃은 후로,

신앙생활을 지속 하지 못했고,

관념의 한 곳으로 밀려 있었다.


33세 꽃다운 나이에

왜 그렇게 서둘러 가셔야 했는지..,

그러나 당신의 신실한 믿음을

돌판에 잘 세겨 놓은 계명처럼

우리형제의 심중속에 깊게 유전 시키셨다.

그게 얼마나 귀하고 큰 상속이었는지

험한 세상 살아오는 동안

걸음 걸음 감사할 일이었다. )


예배의 시간이 반복 될 수 록,

오랜적 친모와 나란히 앉아서

예배 드렸던 기억때문인지

조금은 익숙해지는 편안을 느낄 수 있었다.


찬양과 기도속에서,
표현 못하고 억누르던 날들에 의해

점점 희미해지던 자아가

조금씩 깨어나기 시작했다.

걷는것도 의지 대로 할 수 없어서

차라리 주어진 상황을 탈피해서 어딘가로

꼭꼭 숨어버린 '나' 였다.


해결을 받고 싶어졌다.

정말 나을 수 있다면 그 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는 사람 처럼의 생을 바람하며 친모와 새 모친이 일러준 예수님의 이름을 속삭이듯 가만히 불렀다.


심연의 깊은 곳

그리고 그 속에 오래도록 보물처럼

소중히 간직했던,

그러나

믿음으로 미처 부르지 않았던 분,

친모가 일러주신 천국의 유일하신 분,

새 모친이 일러주신 치료자이신 분,

그 주님을 소녀의 현재의 현실 속으로

간곡히 초청했다.


그분 앞에 앉아서

소녀는 가슴 시린 통증을 해부하듯 꺼내어

조목 조목 고했다.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던 말들을

속속들이 다 전했다.


‘고독하고 서럽다는것을,
의지와는 상관 없는 다리 땜에

마음이 수도 없이 무너진다고.
친구들은 일상 속에서 늘 바뿐데,

난 늘 무력하게 주저 앉아 있는것이 정말 싫다고.

깊은 아픔의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할 아무도 없다고.

그러하오니,
주님 원하신다면, 제 다리에 힘을 주세요.
온전히 걷게 해주세요.’


그 기도는 새로운 변화를 꿈꾸는 간절함이자

안정된 숨을 쉬고 싶은 지친 심중의

절절한 절규였는지도 모른다.




한편, 그 자리는 영혼의 조정실이었다는 것을,

이전까지의 모든 기준과 서러움을 벗겨내고,

참 삶의 본질적 방향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키시는 자리였음을 후에 알았다.


혼자가 아니라는,

결코 혼자 둘 수 없다는,

그런 당신의 마음을 들려 주시고 싶으셨을,

그렇게 원하셨을..,

그분께서 준비하신 이미 예정되어진 만남의 자리였음을 오랜 후에 깨닳았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요14:18)




부흥회 마지막 날.
마지막 예배가 끝나고

모든 이들이 서둘러 돌아가고 있었다.

모친은 안수 기도를 해 주실 것을

목사님께 부탁하셨다.

흔쾌히 기도를 하시려는 목사님의 손이

머리 위에 얹히는 순간,
고개 숙여 눈을 감고 있는 소녀에게

예수님이 보였다.


'예수님?!'


짧고도 선명한 환상이었다.
그 환상은 금세 사라졌지만,

그 파동은 어린 마음속에 나름 큰 의미로 일렁였다.

오래전부터 기다리던 친구를 만난 듯

참 좋은 기분이었다.

하늘위에 계시던 분이, 바로 옆에 오신 듯 한,

나름 한껏 들 뜬 마음이 되었다.

귀가 하는 내내 마음 가득

알 수 없는 설레임이 솟아 났다.

나약한 마음에 하늘의 기운이 스며들 듯 예수님으로 가득 채워졌다.


그렇듯 서툰 작은 믿음은,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리듯 그 분을 향해 섰다.




천국과 지옥,

당시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었지만

갈 곳, 가면 안되는 곳으로만 명확히 구분되어 뇌리에 각인 되었었다.

기억은 없지만 아마도 친모는 유아기 때 부터 붙들고 가르치셨나보다.

천국은 언젠가는 가야 할 나라로

뇌리에 자리하고 있었다.


고사나 제사음식은 어릴적부터

절대 먹지 않았었다.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신다고

가르침을 받았었나보다.

혹, 지옥가는 게 더 두려워서 그 뜻을 따랐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지만

그러나 그 생각을 정확히 확신 할 수 는 없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기에

절대 어기면 안된다는 사고로

어린 마음에도 그 단호함은

절대 흔들리지 않았었다.


친모는 우상 숭배에 관한 것에

큰 비중을 두고 교육하셨나보다.


어쨌든 친모가 먼저 가 계시는 그 나라에

꼭 가야 한다고

어린 마음은 각심하고 각심했었던

기억이다.


그런데, 그 나라의 예수님이 환상으로 찾아 오심은, 소녀에게는 남다른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었다.




부흥회는 매주 순회하며 계속되었다.


그리고 다음 장소는 사일구탑 근처 였다.


그곳에서 나는 참으로 아름다운 한 여인을 만난다.


정녕 한나처럼의 기도를 한,

피무릅 기도의 사건앞에 서게 되고


그리고 스스로 그녀의 제자가 되어

깊은 기도의 시간 속으로 나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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