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생각이 끝나는 자리에서.
생각 없이 서둘러 마주한 곳은
회색빛으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길은 보이지 않았고,
다급함과 긴장 속에서 방향 감각은 이미 무너져 있었다.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비틀거리는 발걸음은
마음을 앞지르며
그저 힘겹게 내딛어지고 있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간절히 불려 나온 이름은
눈에 스치는 모든 아이의 모습 앞에서
번번이 멈춰 섰다.
오랜 시간,
시선은 넓어졌다가 다시 좁아지기를 반복하며
끝내 빈 거리만을 훑고 있었다.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찾아도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시간은 가슴을 조이며 흘렀고
하늘은 어느새 잉크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버틸 힘도,
더 찾을 기운도
이미 남아 있지 않았다.
더 다른 방법은 없었다.
파출소에서 미아 신고를 마치고
짙어지는 하늘을
눈물로 올려다보았다.
그때였다.
길 건너편, 불이 꺼진 교회의 십자가가
흐린 시야 속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 앞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 채
걸음을 멈추었다.
그제야 알았다.
이 일은 더 많이 움직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발로 찾던 시간이 끝나자
시선이 처음으로 위를 향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타들어 가는 심정으로
절박하게 아버지를 불렀다.
보이지 않는 상황을 보시는 분께
맡길 수밖에 없었다.
부족한 나를 사랑하셔서
귀한 아들을 맡기셨는데
지금 그 아이를 잃어버렸다고,
날은 어두워지고 있는데
아이가 어디에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고.
그러하오니
아버지께서 찾게 해 달라고
눈물로 간청했다.
그때,
세미한 응답 하나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집에 가 보아라.”
그 순간,
지키지 못한 무력감이 눌러두고 있던
혼란은 확신으로 가라 앉았다.
“네, 아버지.
감사합니다.
믿습니다.”
길은
내가 헤매던 자리 밖에서 열렸다.
사람의 계산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연처럼 보이는 질서 속에서
나의 힘이 완전히 소진된 자리에
이미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와 있었다.
안도감으로 마음을 가다듬으며
집 골목 앞에 이르렀을 때,
앞집 아줌마가 안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서둘러 물었다.
“아줌마,
우리 아들 못 보셨어요?”
“우리 집에서 TV 보고 있잖아.”
그제야 모든 긴장이 풀렸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평소에 아들은
앞집에서 TV를 보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떠올리지 못했던 자리였다.
긴 방황의 시간은
실패가 아니었다.
사람의 생각이 끝나는 자리에서
하나님은 시작하신다.
그날 들려주신 말씀은
해결의 응답을 넘어
신뢰로의 초대였다.
나는 그 말씀을 따라
두려움이 있던 자리에서 발을 옮겼고,
믿음으로 멈춰 선 그 지점에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모든 사건의 주도권을
하나님께 넘겨 드리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온전한 길이라는 것을.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언 3:5–6)
아멘.
생각 없이 서둘러 마주한 곳은
회색빛으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
어디로 가야할지.
길은 보이지 않았고
다급함과 긴장 속에서 방향 감각은 이미 무너져 있었다.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비틀거리는 발걸음은
마음을 앞지르며 힘겹게 내딛고 있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간절히 불려 나온 이름은
눈에 스치는 모든 아이의 모습 앞에서
번번이 멈춰 섰다.
오랜 시간,
시선은 넓어졌다가 다시 좁아지기를 반복하며
끝내 빈 거리만을 훑고 있었다.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찾아도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시간은 숨을 조이듯 흘렀고
하늘은 어느새 잉크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버틸힘도, 더 찾을 기운도 이미 남아 있지 않았다.
@
더 다른 방법이 없었다.
파출소에서 미아 신고를 마치고
짙어지는 하늘을
눈물로 올려다보았다.
그때였다.
길 건너편 교회의 불꺼진 십자가가
흐린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그 앞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 채
걸음을 멈추었다.
그제야 알았다.
이 일은 더 많이 움직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발로 찾던 시간이 끝나자
시선이 처음으로 위를 향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절박하게 아버지를 불렀다.
타들어가는 심정으로
보이지 않는 상황을 보시는 분께
맡길 수밖에 없었다.
부족한 나를 사랑하셔서
귀한 아들을 맡기셨는데
지금 그 아이를 잃어버렸다고.
날은 어두워지고 있는데,
아이가 어디에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고.
그러하오니
아버지께서 찾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그때
세미한 응답 하나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집에 가 보아라.”
"네?!
감사합니다 아버지,
믿습니다."
길은
내가 헤매던 자리 밖에서 열렸다.
사람의 계산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연처럼 보이는 질서 속에서.
나의 힘이 완전히 소진된 자리에
이미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와 있었다.
안도감으로 마음을 가다듬으며
집 골목 앞에 이르렀을 때,
앞집 아줌마가 안에서 걸어나오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서둘러 물었다.
“아줌마, 우리 아들 못 보셨어요?”
“우리 집에서 tv보고 있잖아.”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평소에 아들은 앞집에서 tv 보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떠올리지 못했던 자리였다.
이후 나는 깨닫게 되었다.
어떠한 상황 앞에 처해질때 먼저 하나님을 찾아야 함을.
한편
찾지 못한 시간은 실패가 아니었음을.
그 시간은
기도로 방향이 옮겨지는 과정이었고,
내 이성과 의지보다 먼저 하나님과의 소통이 선행 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깊게 각인했던 현장이었다.
방황했던,
말씀이 들리지 않았던 시간은
하나님이 침묵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다른 방향을 향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도 깨닳았다.
그러므로 모든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였다.
@
사람의 생각이 끝나는 자리에서
하나님은 시작하신다.
그날 들려주신 말씀은
해결의 응답을 넘어
신뢰의 초대였다.
나는 그 말씀을 따라
두려움이 있던 자리에서 발을 옮겼고,
믿음으로 멈춰 선 그 지점에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모든 사건의 주도권을 하나님께 넘겨 드리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는 것을.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언 3:5~6)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