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의 공부는..

주를 향한 고백

by 에스더


나의 기도는 내 사랑하는 주님으로 인해 시작된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26:39)


겟세마네의 예수님.

고난앞에서 참 인간의 의지를 드러내셨던,

그러나 그 의지는 아버지의 뜻 앞에서 해체되고 다시 정렬되었다.


죄인들의 자리에 서서

땀 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자기 뜻을 못 박으셨던 분.

그렇게

겟세마네는 하나님의 뜻이 가장 분명해지는 자리였다.


타락한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놓인
그 본질적 간극 앞에서,
가장 처절하게 외면당하신 분, 그 분을 생각하면 때때로 마음이 시렸다.




신앙적으로 성숙했다고 말할 수는 없던 시절이었지만,
십자가를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시리도록 져려왔다.


가시 면류관과 채찍,
멸시와 천대,
그리고 사랑한다고 믿었던 이들의 배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신 구원의 은총은
내 가슴 깊이 스며들어,
감사함만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또 한편의 아픔으로 내 마음에 깊이 와 닿았다.


그런 그분께 드릴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기도하는 시간만이라도 드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주 1회 온 철야기도를 하기로 작정했다.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몸이었지만,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이 섰다.

이 결단은 '주께 드림' 이라는 결심에 가까왔다.


금요 철야예배가 끝나면
나는 소강대상 앞에 무릎을 꿇는다.


아직 성숙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믿음이었지만, 그 진심만큼은 분명했다.


주님을 사랑하는 간절함,
그리고 그 뜻 안에 머물고 싶다는
내 마음의 고백이었다.


온 밤을 새우는 기도의 시간.


때로는 셀 수 없이 곪아 있는

세상을 향한 주의 심정을

어렴풋이 나누어 받는 시간이었다.


또 때로는 눈물과 콧물로

새벽을 밝히며 매달릴 수밖에 없는
한 인간의 가장 낮은 간절함이었다.


또,
때로는 몹시 힘도들었고
때로는 시간이 그대로 멈춰 선 것만 같은 때도 있었지만
그 자리만큼은 내게 있어서 물러설 수 없는 각오의 자리이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은 주님께 드리기 위함이었지만, 그 시간 속에서

새로운 변화는 조용히 내게 주어지고 있었다.


기도가 거듭될수록
점차 설명할 수 없는 새 힘이 내 안에 스며들고 있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깊어지는 평안,
채워지는 기쁨,
은혜 안에서 숨 쉬듯 누리게 된 자유함.


그것은 세상에서 익숙하던 감정들과는 결이 전혀 다른 영성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은

내 우편에 계신 주님과 나누는
조용하고도 친밀한 교통의 자리였다.


그런 나에게 주님께선

때로는 환상으로,
때로는 음성으로,
또 어떤 날은 말씀으로 다가오셨고,
어떤 밤에는 꿈으로 찾아오셨다.


송명희 시인의 고백처럼
남이 알 수 없는 것을 알게 하셨고,
남이 들을 수 없는 것을 듣게 하셨다.


그러나 그것은 내세울 수 있는 체험이기보다,
쉽게 말해버릴 수 없어 가슴 깊은 곳에 조용히 간직하게 된 주님과 나 사이의 은혜였다.


그러나 간증함이 나의 기도 제목이었기에, 지금까지, 또 앞으로도 기록하려는 것이다.

나는 지금 이 시간 살아 계신 그분을 들려주고 싶은 간절함이다.


믿고 믿지 않는 것은 개인의 자유의지 이지만, 그 선택과 무관하게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 계시고,

인격을 가지신 전능하신 분이시다.




그 밤도
모든 기도를 마무리한 새벽녘에,
마치 절차처럼 마지막으로 한 가지 소망을 아뢰었다.


오래전부터 마음 한편에 조용히 자리하던 절실한 기도 제목이,
철야기도를 시작하면서 마침내 내 의식 속으로 떠올랐다.


“아버지 하나님, 신학교에 보내 주세요. 성경을 공부하고 싶습니다.”


겉으로는 바람이었지만,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의 뜻과 주권 안에서
허락을 구하는 간절한 고백이었다.


다른 뜻은 크게 없었다.

세상의 학문은 굽히지 않던 고집 속에 어린 시절 멈췄기에,
성년이 된 이후에 공부하고 싶다는 열망은
내 안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혹, 그 열망이 신학공부로 바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늦은 나이라는 것을 알면서도,나는 성경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은 원이로되 손에 쥔 것은 없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면
모든 길이 열릴 것이라고
어린 신앙은 조금의 의심도 없이 믿고 있었다


먼저 응답을 받아야 했다.

그렇기에 젖을 사모하며 우는 아기처럼, 절실하게ㅡ
아니, 더 절실하게 갈구했다.
어쩌면, 무조건적으로 떼를 썼다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때를 쓸때마다 그 기도는 하나님의 주권적 허락을 구하기보다, 어쩌면 꼭 이루고 싶은 내 소망을 관철시키려는
반쯤은 강요에 가까운 요청 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간절함으로 허락하심을 소망했다.


세상의 부모도 자녀가 공부하고 싶다 하면 외면하지 않음을 예를 들었고.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 (마7:7~8)


이 약속의 말씀을 응답의 근거로 제시하며
구함에 있어서 나름의 타당함을 하나님께 아뢰며,
야곱이 그랬던 것처럼 말씀을 붙잡고 놓지 않겠다는 각오로 결사적인 씨름을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작스럽게 뜨거운 불이
온몸으로 밀려오듯 임했고,
그 순간, 방언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분명 내 의지의 결과가 아니었다.
타의에 의해 이끌리는 힘,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력의 분명한 개입이었다.


나의 기도하는 말은 내 귀에는 방언으로 들렸고, 놀랍게도 그 뜻이 또렷이 해석되어 졌다.


“네가 마태복음을 다 공부하면 신학교에 보내 주리라.”


나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했으나, 내 귀에는 그 말이 ‘셀라, 셀라’로 들려왔다.




오랫적에

마가의 다락방, 그들의 기도 한가운데로 임재하셨던 분.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하리라” (마28:20)


하신 선언은 말에 머물지 않고, 하나의 사건이 되어 역사 속에 새겨진 자리.


그리고 그 사건은 시공간을 넘어
그날의 뜨거운 성령의 임재로
내게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그 순간, 그 역사적 약속은 더 이상 관념이 아니라 확신이 되는 순간이었다.


세상을 다 얻은 것만 같아 마음은 금세라도 하늘로 날아오를 듯했다.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주는 그 크고 깊은 기쁨과 희열.

그 기분은 일상에서 주어지는 그 은혜와는 또 다른,가슴 가득 차오르는 감격이었다.


그것은 내 부족한 어휘로는 끝내 다 담아낼 수 없는, 가슴 벅차고 환희로웠던 주님과의 또 다른 만남이었다.


그렇게 주님께서 내 기도의 자리에 찾아오셨다.


매주 때를 써 울고, 불고, 눈물과 콧물을 쏟아내던 철없던 어린 딸을 사랑으로 달래듯이, 십여 년이나 앞당겨 응답해 주셨다.


그러나
그때의 어린 신앙은, 내가 무엇을 자처하고 있는지, 그 길, 그 사건의 전제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지 못했다.


또한, 그 응답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어쩌면 앞으로 닥칠 모든 시련 속에서도 나와 함께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때는 그 응답이 얼마나 먼 시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었는지, 아직 알지 못했다.




마태복음의 길.


그것은
‘자기 부인’의 길이었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길이었다.


십여 년에 걸친 격한 훈련의 시간. 그 시간은 삶 전체가 다루어지는 깊은 연단의 과정이었다.

하나님에 의함이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반대하는 그 세력에 의한 역경들..


힘겹게,
힘겹게 그 모든 격동의 진통을 겪고난 후, 다 비워낸 초연한 심중 깊은 곳에서 새삼 솟아 나오는,

뭘하든 어디에 있든 멈추지 않는 고백이 있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


'마태복음의 공부'는, 이 고백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베드로의 고백을 중심으로 교회를 세우셨듯이, 그렇게 나에게 자연스럽게 신학의 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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