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플리가 되
평범한 머글이었던 친구는 조금씩, 조금씩 플며들더니, 플리가 되었다.
‘플리’는 버추얼 아이돌 ‘플레이브’의 팬을 의미하는 단어다.
지난번 플레이브 온라인 콘서트가 끝이 아니었다.
플레이브가 최근에 신규 앨범을 냈기 때문에 바쁘게 돌아다녀야 한다고 했다.
나는 ‘팝업 카페’가 뭔지 몰랐지만 (일정 기간 동안 운영되는 임시 카페를 ‘팝업 카페’라고 하는데 당시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를 잘 못했다. 팬들이 좋아하는 아이돌에게 차려주는 ‘생일 카페’ 같은 것인 줄 알았다. 플레이브 팝업 카페는 플레이브 소속사에서 주관(?)하는 카페였다)
주주가 “거기 가면 되게 재밌어! 카페도 엄청 이쁘고 메뉴도 다 맛있대!” 하는 얘기에 혹해 ’플레이브 팝업 카페‘ 에 동행하게 되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주주의 말대로 아주 재밌었고, 디저트도 맛있었고, 아이돌 팬 문화를 엿볼 수 있어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평소라면 가볼 일 없는 세계를 살짝 엿보고 온 머글의 아스테룸 433-10, 플레이브 팝업 카페 후기!
내가 이 팝업 카페에서 가장 놀랐던 순간의 사진이다.
일면식도 없던 플리들이 주문한 메뉴와 자신이 가져온 굿즈를 모아 사진을 찍고 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인 게 분명한데,
하나 둘 가지고 온 굿즈(포토카드, 인형, 미니 등신대, 사진첩 등등)를 가지고 와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처음엔 좌석 근처에 있는 사람들 몇 명이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옆 자리에서 “저희꺼도 같이 두고 찍어도 되나요?” 하시며 점점 사이즈가 커졌다.
굿즈가 모이면 모일수록 까르르 까르르하는 웃음소리가 커졌다.
멋지게 꾸민 굿즈가 오면 팔짝팔짝 뛰며 좋아하며 사진을 찍었다.
주주의 말로는 이게 어떤 의식이라고 했다. (예절샷이라고 했나?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나가는 플리가 있다면 댓글을 달아주길)
다 큰 성인들이 플레이브를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마음의 벽을 허물고 이렇게 하나가 될 수 있다니.
이 제단(의식이니까 제단이라고 해야 어울리지 않을까) 앞에서 느껴지는 행복의 아우라,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미소.
멀리서 보는 나에게는 신기한 장면이었다.
두 번째로 신기한 문화, 굿즈 나눔.
우리 맞은편에 앉아계신 플리분께서 대뜸 굿즈 꾸러미를 내어주셨다.
주주는 나에게 주어진 굿즈를 마다하며 “얘는 플리가 아니에요.” 하며 자신의 것만 챙겼다. (아, 눈앞에서 사라진 예준 씨…! 단호한 주주.)
그러고는 자신이 챙겨 온 수제 굿즈(이 녀석의 굿즈는 온라인 콘서트 끝난 후 우리 집에서 만든 것으로, 그 후에도 우리 집에서는 반짝이가 가끔씩 출몰하고 있다.)를 보답으로 나눠주고,
“아니! 이런 고퀄리티 굿즈를!” 하고 서로 감탄하며 굿즈를 풀어 구경했다.
플리들끼리 서로 가진 포토카드를 나눔 하거나,
자신이 만든 굿즈를 나눠주는 문화가 있었다.
나는 이런 문화가 생소했지만,
포켓몬 띠부띠부 씰을 친구들과 나눠갖는 것에 대입해 보니 알 것 같기도 하고….
주주의 말로는 굿즈를 나눔 하는 것은 꼭 보답을 바라거나 교환하기 위해서는 아니고,
스스로 마음이 우러나서 하는 것이라고 한다.
참고로, 우리가 귀가하는 길에서도 어떤 플리분께서 대뜸 “이거…“하고 굿즈를 손에 쥐어주셨는데,
그때에는 미처 플리가 아니라는 것을 얘기할 틈도 없어서 얼떨떨하게 받아버렸다.
아마 주주가 온몸에 플레이브 티셔츠, 플레이브 가방, 뱃지 등등을 휘감고 있기에 나까지 플리로 오해하고 주신 것 같다.
덕분에 주주는 굿즈가 2개 생겼다며 좋아했다. (은호 굿즈 나눠주신 플리 님, 주주를 대신해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주주왈, 보답 굿즈를 드리고 싶었지만 경황도 없고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던 점, 준비해 온 굿즈가 모두 소진되어 나눔 해드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
팝업 카페 곳곳에는 플레이브 홀로그램, 사진, 작업실 등으로 꾸며진 공간들이 있었고,
이렇게 앨범과 수상 트로피가 진열되어 있었다.
플레이브 멤버들의 낙서와 메모, 플리에 대한 고마움의 글귀들이 숨겨져 있어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다양한 굿즈도 판매 중이었다.
물론, 주주는 이미 모든 굿즈를 소유하고 있어서 우리는 구경만 했다.
언제나 실용, 활용적인 것만 생각하는 나는 이런 굿즈 문화도 사실 잘 이해를 못 했는데,
주주 왈 “이걸 내가 사서, 얘네들(플레이브)이 잘 살면 좋겠어.” 하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사주는 것이라고.
플리 덕분에 덕질하는 재미를 알아버렸고,
더 많은 굿즈를 사주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의욕도 생겼다는 주주였다.
그래, 너를 더 힘차게, 살아가는 동력을 주는 거라면 좋은 일이지.
우리는 팝업 카페의 시그니처 음료와 디저트를 먹고, 사진을 찍고, 카페 곳곳을 구경했다.
주주는 카페 이곳저곳에 대해 설명해 주고 공간에 대한 스토리나, 플리 문화는 어떤지, 그리고 플리들이 얼마나 매너 있고 착한 친구들인지를 끊임없이 얘기해 주었다.
나는 플레이브를 잘 모르지만, 유능한 도슨트인 주주 덕분에 이 공간과 문화를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비록 플리는 아니지만, 플레이브 카페를 다녀온 후 살짝 플리 향이 묻어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한 플리분께서 플레이브 시그니처 프레그런스를 손목에 칙칙 뿌려주시기도 했으니 진짜 향기가 묻어왔을 것이다)
이렇게 조금씩 나도 플며들고 있는 걸까.
플리가 아니더라도 즐거운 시간이었던, 플레이브 팝업 카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