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문장에서 겨우 빠져나왔다
“그 관계는 맞지 않았어.”
이 문장은 관계에서 회피하기 좋은 말이었다
관계에서, 직장에서, 어떤 장면에서든 마음 아픈 일을 겪을 때
‘그냥 안 맞았던 거야’라고 정리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그 말에 숨어버렸다는 걸 알게 되었다.
‘괜찮다’는 말로 내 감정을 눌러왔고,
관계를 끝낼 때마다 “맞지 않았다”는 말로 회피해 왔다.
성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는 외향적인 사람이었다.
먼저 말을 걸고, 어색함을 못 참고,
중간에서 사람들 충돌을 정리하려 들었다.
눈치를 많이 보면서도, 한편으론 눈치가 없었다.
나만의 방식으로 상황을 풀려고 애썼다.
첫 회사에서,
어느 날 나는 여직원들 사이에서 왕따가 되었다.
그 시작점은 지금도 아직도 모르겠다.
다만 지금에 와서 내린 결론은
내가 눈치가 없었다는 것뿐.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100명이 넘는 사내 식당에서,
여직원들만 따로 앉아 식사하던 그 테이블에
어느 날 나 혼자 내려가서 먹게 됐다.
그 상황을 본 남직원들이 지나가며 말했다.
“너 왕따야? ㅋㅋ”
그제야 알았다. 아, 나 왕따구나 ㅋㅋ
처음 겪는 일이었다. 당황스러웠다.
같은 팀 사람들과는 잘 지냈기 때문에 더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더 자존심을 세웠다.
그들과 어울릴 생각도 하지 않았고,
‘왕따? 뭔 상관이야. 돈 벌러 다니는 건데,
내 일만 잘하면 되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게 문제였던 것 같다.
‘맞지 않는다’는 말로 마음을 닫고,
그들과 맞추려 하지 않았다.
그저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았고,
전공을 살리지 못한 게 아쉬워서,
중국어 학원을 다니며 대만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했다.
결국, 사람들과 맞추는 수고 없이 나는 회사를 떠났고,
‘맞지 않았던 거야’라고 혼자 정리했다.
1년 뒤, 워홀을 마치고 첫 회사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해외영업으로 복귀해보지 않겠냐고.
나는 망설임 없이 다시 들어갔다.
그 사이 관계의 기억은 희미해졌으니까.
하지만 출근하자마자 알았다.
그때의 그 여직원들은 여전히 나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
예전 사수였던 여상사는 따로 불러 물었다.
“무슨 생각으로 다시 온 거야?”
나는 당황했고, 그냥 이렇게 대답했다.
“다시 오라고 하셔서 온 것뿐인데요...”
그때 알았다.
그들에게 나는 '동조하지 않는', 어딘가 불편한 사람이었구나.
한 달 만에 사표를 냈다.
바로 이직했다. 그 회사엔 여직원이 없었다.
나는 남직원들과는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왜 여자들과는 어울리지 못할까?
내가 잘못한 걸까?
아직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다만 지금의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동조하지 않는'이 패턴에서 모든 것으로부터
오해가 불러일으킨 것 같다.
나는 내 방식대로 말하고,
나는 상처받지 않지만 누군가는 상처받을 수 있다는 걸
나이를 먹으며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단체생활과 잘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도.
세 번의 직장 생활 중,
한 번도 마음 편히 다닌 적이 없었다.
지금 휴직 중인 회사에서도 사람들과 부딪혔고,
회사 전체 목표에 맞춰 서슴없이 날을 세웠다.
어쩌면 나 같은 사람은
회사 안에서 불편한 존재였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날 선 말을 하면,
그건 언젠가 부메랑처럼 되돌아온다.
나도 그걸 여러 번 경험했다.
그래도 내가 사회생활을 계속해올 수 있었던 건
항상 ‘맞지 않는 사람’만 있었던 게 아니라,
나에게 무조건적으로 호의적인 사람도 있었기 때문이다.
첫 회사에서도,
나를 따돌림이라 생각하지 말라고 웃으며 위로해 주던
두 명의 대리님이 있었다.
왕따를 당하는 게 아니라 왕따를 혼자 시키고 있네 하며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풀어주려 한 사람들
그 호의가 나를 버티게 했다.
이번에 휴직하고 나서도 나는 ‘맞지 않았다’는 말에 꽂혀 있었다.
나는 왜 늘 관계에서 회피하는 걸까?
내가 먼저 마음을 열었다면 달라졌을까?
사회적 관계에 약점이 있는 걸까?
그렇게 계속 내 문제에만 꽂혀 있었다.
그 불편함이 지나고 한 달쯤 되었을까,
그 문제도 결국 내 안에서 나온 것임을 알게 됐다.
해답도, 벗어나는 길도 내 마음 안에 있었다.
사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사회생활이 어렵고 무섭다.
어디서 상처받을지 모르겠고,
얼마나 나를 드러내야 할지, 어디까지 감춰야 할지 어렵다.
‘정도’를 파악하는 게 여전히 어렵다.
그래서 다시 그때의 장면 속으로 들어간다 해도
무언가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다만 그때의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솔직하게 인정하고 놓아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나를 다음으로 이끄는 마무리이고, 시작이다.
이제는 안다.
“우리는 맞지 않았을 뿐이다”는 말은 상처의 종결이 아니라,
감정의 진짜 시작이었다는 걸.
나는 아직도 서툴고, 관계가 어렵고, 불안하지만
더 이상 회피하지 않고 내 감정을 통과해 가기로 했다.
그게 내가 새로운 시작으로 가는 유일한 방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