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엔 회복이 먼저였다.
누군가 나에게 물어보면
나는 늘 “응, 별일 없지. 잘 지내.”
특히나 해외생활을 할 때는
친구들의 고나리질이 듣기 싫었다.
조금만 힘들다 그러면
“그래, 이제 한국 들어와.”
“거기서 더 있으면 뭐 하니?”
“결혼 안 할 거니?”
나도 내 안의 수많은 물음으로 피곤한 상태였는데,
누군가의 걱정 섞인 잔소리를 들으면 그게 참 듣기 싫었다.
그래서 더 잘 지내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나는 행복해. 혼자여서 더 행복해.”
힘들다 말하지 않으면
나는 진짜 괜찮은 것만 같았다.
가이드를 하며 손님들한테 성희롱을 당했어도,
진짜 즐겁게 마무리한 투어에서 뒤늦게 컴플레인을 받았을 때에도,
나는 말하지 못했다.
힘들다 말하면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은 “당장 오라”고만 했다.
현지 친구들에게도 당연히 말하지 못했다.
유쾌하고 즐거운 친구라는 나의 이미지에 오점을 남기기가 싫었다.
나는 그렇게 괜찮은 척하는 게 습관이 되어갔다.
힘들고 아픈 건 혼자 묻어도 진짜 괜찮았다.
왜냐하면, 힘든 걸 묻으면
새로운 게 피어났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해 일자리를 잃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에도
나는 괜찮았다.
“외국 생활도 0단계부터 시작했는데, 괜찮아. 또 새로 시작하면 돼!”
주위의 도움으로 카페 알바를 했고,
스스로 준비해서 중국어 과외도 여럿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코로나 단계가 높아져 외출이 점점 힘들어지자
카페도, 과외도 올 스탑.
힘들게 시작했던 새로운 일들이
환경 때문에 두 번째 박탈을 당하자
나는 폭발했다.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이 웃고 떠드는 걸 보는데
나는 눈물이 났다.
친구에게 말했더니,
심각한 상태라며 심리상담을 권유받았다.
그렇게 인생에 처음으로 심리상담을 시작했다.
상담실에 가는 길에도
나는 “괜찮은데, 그 정돈 아닌데...” 하고 생각했다.
선생님이 이것저것 물어보고,
그림도 그리고, 여러 가지를 써보았다.
그러더니
“이제 멈추는 걸 배우세요”
라고 하셨다.
“멈추는 건 끝이 아니라,
에너지를 새로 채우는 동력이에요.”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벽을 바라보세요.”
그래서 나는 벽을 바라보며,
진짜 ‘나는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그리고 요가를 다시 시작했다.
몸이 너무 아팠다.
아픈 만큼 생각이 덜어졌다.
상담을 10번 정도 받으니
다시 무언가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저, 이제 뭐든 다시 해보고 싶어요.”
선생님이 그동안 썼던 상담 일지를 꺼내 보여주셨다.
모래놀이에 쓰인 피규어들이
처음엔 다 닫혀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같은 방향을 보기 시작했다.
그때 처음으로,
‘멈추는 건 회복이다’
라는 걸 몸으로 배웠다.
여전히 나는
인정 욕구가 강하고,
남들에게 보여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선입견도 강한 사람이지만
딱 하나는 늘 변함없이 추구한다.
나는 나를 올바르게 바라본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직시하고,
그 모든 것을 솔직하게 내보인다.
그것이 회복의 시작이고,
잘 살아가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인지한다.
괜찮은 척 해온 것도 나고,
이겨내 보려고 애쓴 것도 나고,
선입견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도 나고,
남들에게 인정을 바라는 것도 나다.
내 글에는 ‘나’가 많이 들어간다.
가끔은 나르시시즘 아닌가 싶기도 하다. ㅎㅎ
하지만 결국
인생은 ‘나’라는 우주로
세상과 부딪히는 과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