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온도가 맞지 않는 부부의 사연

부부는 왜 각자 귀국하게 되었나

by 유니로그

학생 자녀들을 집에 두고, 오랜만에 단둘이 여행을 온 50대 중년 부부가 있었다.


맞벌이로 늘 바쁘게 살아온 두 사람에게 이번 여행은 ‘쉼표’ 같은 시간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부부가 선택한 건 휴양지가 아니라 빡빡한 일정의 대만 패키지여행이었다.


그들은 단지 “가장 빨리 출발할 수 있는 여행지”라서 대만을 골랐다고 했다.

입국장에서부터 피곤해 보이던 그들은,

여행의 강도와 대만의 습한 날씨에 놀란 듯했다.

툴툴거렸지만 이미 투어버스에 올라탄 이상 다른 선택은 없었다.
그렇게 첫날 일정이 시작됐다.

점심시간이 되자 남편은 사람들과 합석하기를 원했다.
“큰 원형 테이블에 앉읍시다.”
아내는 표정이 굳었지만, 남편은 개의치 않았다.


술을 주문하고, 다른 손님들에게 권하며 금세 분위기를 띄웠다.
호탕하게 웃는 남편 옆에서 아내의 말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둘만의 여행을 기대했던 아내에게, 낯선 이들과의 술자리는 불편 그 자체였을 것이다.


저녁 자리에서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다른 아버님들과의 술자리는 늦게까지 이어졌고,

“호텔에서 2차 하자”는 소리까지 오갔다.
남편은 신이 났지만, 아내의 표정은 싸늘하기만 했다.


둘째 날 아침, 두 사람은 버스에서 따로 앉았다.

아내는 시종일관 창밖만 바라보았고,

식사 자리에서도 빠르게 끼니만 해결하고 먼저 자리를 떠났다.


관광지에 도착해도 사진 한 장 찍지 않고

“나는 카페에 있겠다”며 일정을 거부했다.
가이드인 나는 점점 불안해졌다.


이 분위기를 모른 척할 수도,

그렇다고 드러낼 수도 없는 난처한 입장이었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아내는 나를 따로 불렀다.
“대만 음식이 입에 안 맞아서요. 호텔로 먼저 들어가고 싶어요.”
나는 택시를 불러드리며 “내일 동의서만 작성해주세요”라고 부탁드렸다.


그렇게 아내는 홀로 호텔로 돌아갔고,

남편은 여전히 술잔을 기울이며 다른 손님들과 어울렸다.


나는 점점 불안이 도지며 뭔가 큰 일 하나가 터질 것 같다고 예감하며

그날 호텔에서 불안에 떨며 잠들었고 다음날 아침이 되자마자

그 불안은 예상치 못한 결과로 돌아왔다.


아침이 되자마자 아내 분은 나를 찾았고
호텔 로비에 캐리어를 끌고 나와 있었다.


“어머님, 무슨 일이세요? 캐리어를 들고 어디 가시나요?”
“저, 지금 한국 갑니다.”
“네?? 지금 혼자 가신다고요?”
“네. 동의서 쓸게요. 저 먼저 돌아가겠습니다.”


너무 당황한 나는 급히 동의서를 챙겨 다시 로비로 내려갔다.

남은 일정을 포기하고 자진 귀국한다는 내용에 아내는 서명했다.


“비행기표는 이미 끊으셨어요?”
“네. 호텔로 공항 픽업차 불러주세요. 전 알아서 갈게요.”

그녀의 얼굴은 단호했다.


가이드는 손님의 사적인 문제에 개입할 수 없다.

괜히 자초지종을 묻다가 자칫 컴플레인으로 돌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요청에 따라 픽업차를 불러드렸고,

아내는 아무 말 없이 떠나갔다.


남편은 다음 날부터 평소처럼 일정을 소화했다.
약간 굳은 표정이었지만, 다른 손님들과 여전히 어울리며 관광을 이어갔다.


아내의 빈자리는 누구나 느낄 수 있었지만, 아무도 직접 묻지 않았다.

샌딩 날, 로비에 모인 손님들이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그분 아내분은 안 나오시나요?”
“아… 그분, 셋째 날 먼저 한국 가셨어요.”
“네????”

순간 로비에 어수선한 기운이 퍼졌다.


샌딩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긴장이 풀리자 굳은 얼굴로 출국장을 나가던 남편 분의 얼굴이 떠올랐다.


함께 떠났지만, 함께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그 빈자리는 짧은 여행이 남긴 가장 깊은 흔적이 되었다.


여행은 끝났지만, 그들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도 그 부부가 극단으로 치닫지 않았기를 바란다.






독자님들께,

안녕하세요, 유니로그입니다.

저는 현재 브런치에서 2개의 연재를 진행 중입니다.


[패키지 투어에는 없는 이야기]
실제 대만 가이드로 일하며 겪었던 웃지 못할 사건들과 사람들 이야기
https://brunch.co.kr/brunchbook/tourguidestory


[대만 청춘일기, 나를 찾아가는 낭만]
대만에서의 워홀·생활 속 외로움과 청춘의 고민, 그리고 스스로를 찾아가는 기록
https://brunch.co.kr/brunchbook/dear-taiwan


이번 글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다른 에피소드들도 함께 읽어주시면 더 즐겁게 이야기를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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