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투어가 마지막이 될지 꿈에도 몰랐다.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 타이베이 패키지 투어는 이미 한풀 꺾여 있었다.
다녀온 사람들이 많아 수요가 줄었고, 대신 대만 남부 까오슝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었다.
TV 속 여행 프로그램에서도 까오슝의 바다와 야시장이 자주 등장했고, 실제로 물가는 저렴하고 먹거리는 풍성해 젊은 배낭여행자들이 몰려드는 도시였다.
나는 점점 까오슝 팀을 맡게 되었고, 타이베이에서 기차를 타고 내려가는 일이 잦아졌다.
때는, 2020년 1월 말.
3대에 걸친 20명 넘는 대가족 단독 패키지를 맡게 되었다.
입국장 문이 열리자 휠체어에 앉은 할머니를 중심으로 가족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자식들과 손주들까지, 3세대를 아우르는 가족의 행렬.
아이들은 대부분 컸지만, 가장 어린 막내는 다섯 살이었다.
버스로 이동하며 얼굴을 익히는데, 공기부터 남달랐다.
“이번 여행은 행복하게 즐기자”는 암묵적 약속이 있는 듯 화기애애했고, 할머니의 들뜬 표정이 특히 오래 남았다.
그중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한국 국적이 아닌 막내며느리였다.
결혼한 지 몇 년 안 되고 한국말이 서툴다며 조심스레 말했다.
그런데 남편이 불쑥 면박을 주었다.
“가이드는 대만 산 지 5년도 안 됐다는데 중국어 저렇게 잘하잖아. 왜 당신은 한국어를 아직 잘 못해?”
순간 공기가 얼어붙었다. 나는 곧장 대답했다.
“저는 전공자라 오래 공부한 케이스고, 아내분은 독학으로 배우신 건데 이 정도면 정말 잘하시는 거예요. 외국어 배우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남편은 멋쩍은 듯 말끝을 흐렸고, 아내분은 나중에 조용히 다가와 고맙다고 했다.
그 순간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 여행 동안만큼은, 저분이 주눅 들지 않도록 도와야지.’
그 아내 분과는 중국어로 소통했고 아내분은 너무 후련한 얼굴과 편안한 말투로 나와 소통했다.
큰 형님은 내게 말씀하셨다.
“어머니 모시고 오는 게 사실 부담스러웠는데, 생각보다 너무 편하고 즐겁네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코끝이 찡해졌다.
‘이 여행, 꼭 잘 이끌어드려야 한다.’
그러던 3일 차 아침.
사건이 발생했다.
가이드 생활 중 처음으로 아침 미팅에 30분 지각을 한 것이다.
부랴부랴 투어버스에 올랐고 가족들의 표정은 싸늘했다.
순간, 창밖의 까오슝 햇살조차 나를 책망하는 것 같았다.
나는 진심을 다해 사과했고, 대신 일정에 없던 코스를 추가했다. 기사님께 드린 팁은 내 사비였다.
다행히 시간이 흐르며 분위기는 풀려갔다.
특히나 나는 할머니의 불편하신 점 식사를 하실 때 불편함이 없는지 자세히 살펴보고 도와드리는 점에서
가족들의 점수를 땄었던 것 같다.
실제로 할머니는 모든 투어에서 휠체어를 타고 계셨고 식사하실 때에도 입맛에 안 맞는 음식이 있으면
많이 불편해하셨다.
그날 이후, 나는 작은 배려의 무게가 얼마나 큰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여행의 마지막 날,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 안.
나는 제안을 했다.
“가족이 함께 오셨으니, 서로 새해 다짐을 나눠보시면 어떨까요?”
때는 2020년 1월 말이었고 대가족 여행이니만큼 가족들 앞에서 본인의 다짐을 말해보는 것이
엄청 소중한 경험이 될 것 같았다.
에이 뭘 그런 걸 하냐며 부끄럽다 손사래 치시던 가족들에게 정말 좋은 추억이 될 거라고
두고두고 이때를 기억하게 될 거라고 말씀드리고 설득시켰다.
결국 큰 형님이 앞에 나섰다.
“이렇게 모두 모여 여행한 게 참 행복했습니다. 올해 바람은 단 하나, 어머니 건강입니다.”
그 진심에 내 눈가가 붉어졌다.
이후 한 명씩 지목되어 각자의 다짐을 말해보는데
중학생 아들이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얼굴이 빨개지며 “엄마 아빠랑 안 싸우고, 공부도 열심히 해서 기쁘게 해 드리겠다”라고 조곤조곤 작은 목소리로 말을 하는데 모두가 기립 박수를 보냈다.
순간, 버스 안은 여행의 끝이 아니라 한 가족의 작은 축제 같았다.
그렇게 대가족의 모든 다짐이 끝나가자 때마침 공항에 도착했고
가족들의 비행 수속을 도와드렸다.
마지막으로 큰 형님이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덕분에 잊지 못할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대답했다.
“저도 덕분에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배웠습니다.”
그날 공항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나는 속으로 또 한 번 다짐했다.
“올해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프로 가이드가 되겠다.”
하지만 불과 몇 주 뒤, 세상은 코로나라는 거대한 파도를 맞이했고, 그 다짐은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럼에도 나는 안다.
그 순간의 웃음과 눈물, 손님들의 진심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걸.
마지막 투어에서 만난 그 대가족이 내게 남겨준 건 ‘인간은 사람 속에서 살아간다’라는 가장 단순한 진리였다.
여행은 끝났지만 이야기는 남았고, 그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눌 수 있어 여전히 행복하다.
[패키지엔 없는 이야기]는 제가 대만 가이드로 일하던 시절, 언젠가 꼭 기록하고 싶던 이야기들이었습니다.
브런치 작가가 된 지금이 적기라 생각해 망설임 없이 시작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읽어주셔서 놀랍고 감사했습니다.
마지막 대가족 여행으로 이 연재는 마무리되지만, 가이드라는 직업을 통해 보고 느낀 것들은 여전히 제 안에 남아 있습니다. 한번 맛보면 끊을 수 없는 가이드라는 직업의 세계에 대해서도 적어보고 싶은 것들이 있어요.
정리가 된다면 빠른 시일 내 또 다른 시즌으로 찾아뵙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대만 청춘일기, 나를 찾아가는 낭만]을 연재 중입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dear-taiwan
타지 생활 속 외로움과 불안을 이겨내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께서는 이어서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끝까지 함께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유니로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