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사소한 기쁨이 삶을 지탱한다

‘큰 행복’보다 인간은 작은 ‘미소’에 반응한다

by 유니로그

제목이 너무 흔해 보여 쓰기 싫었다.

하지만 뻔한 말일수록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에 가깝다.
결국 ‘뻔함’은 진리에 가까운 말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인생의 큰 행복을 트로피처럼 기억한다.
힘든 시기에 그 트로피를 떠올리며 버티기도 한다.
하지만 하루를 실제로 굴러가게 만드는 건 그날의 작은 기쁨들이다.


출근하기 싫은 아침에도 햇빛을 쬐면 잠깐 마음이 풀리고,
점심에 맛있는 메뉴를 먹는 순간이 오후를 버티게 한다.
퇴근길에 딱 맞춰 오는 버스는 나를 알아주는 신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은 사실 이 사소한 ‘마일리지’를 하루하루 적립하는 일에 가깝다.
큰 행복은 사건으로 남고, 작은 행복은 축적되어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


몇 년 전부터 유행한 ‘감사일기’도 결국 작은 기쁨을 놓치지 않으려는 시도다.
‘감사’라는 이름으로 사소한 순간을 기록하며
'내 인생엔 슬픔보단 기쁨이 더 많다'는 증거를 뇌에 남기는 행위.
이게 생각보다 중요하다.


사실문제는 인간이 망각의 존재라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도 “맞아, 사소한 행복을 찾아야지”라고 생각하겠지만
몇 시간 뒤엔 “아… 내일 또 출근이네”라며 인상을 찌푸릴 가능성이 높다.


나 역시 힘들 땐 작은 기쁨은커녕
바로 옆 사람의 미소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혼자 어둠 속으로 숨어
‘내 인생 동아줄은 언제쯤 오나’ 하고 징징거리기만 했다.


힘든 시기는 늘 겹쳐 오고,
그 시간은 영원할 것처럼 사람의 목을 조른다.


몇 해 전, 동료들과 사이도 나쁘고
휴일에도 회사 일로 머리가 꽉 차 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기에 나를 버티게 했던 건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였다.
매주 방영일만 기다리며 일주일을 버텼다.

마지막 회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하루에 5분,
5분만 숨통 트여도 살 만하잖아.
편의점에서 문 열어줬더니
‘고맙습니다’ 하는 학생 때문에 7초 설레고…
아침에 눈 떴을 때
“아, 오늘 토요일이지?” 하고 10초 설레고…
그렇게 하루 5분만 채워요.
그게 내가 죽지 않고 사는 법.

내가 해오던 방식과 비슷해 놀랐고, 동시에 위안이 되었다.
너무 힘들면 미래의 나를 상상하는 것조차 버거워서

그저 하루의 사소한 기쁨을 보물찾기 하듯 수집해야만 버틴다.


실제로 뇌는 작은 긍정을 자주 경험할수록 스트레스 반응을 낮춘다고 한다.
그런 긍정조차 찾기 어려운 시기라면
자기가 좋아하는 작은 행동 하나만이라도 매일 해보면 된다.


어디선가 본 문장이 떠오른다.
“건조기에서 막 나온 따뜻한 빨래를 안고 버텨보자.”


사는 게 고단함의 연속이라고만 생각한다면

어떻게 매일을 살아낼 수 있겠는가.

태어난 이상 살아야 하고, 주어진 삶을 고난의 행군이 아닌
‘견딜 만한 하루들’로 바꾸려면
마음을 바꾸는 것밖엔 방법이 없다.

기쁨은 크기보다 빈도가 중요하다.
작더라도 자주 느끼는 것들이 결국 승부를 가른다.


여기서 더 나아가, 요즘 나는 얼굴에 미소를 띠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웃을 일이 거의 없다.
그나마 아이가 천진하게 웃을 때 따라 짓는 작은 미소가 전부다.

독서를 할 때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읽어보면
얼마나 안 웃고 살았는지 얼굴 근육이 파르르 떨릴 정도다.


이 연습은 사실 가이드 시절,
표정을 좀 더 호감상으로 만들기 위해 자주 하던 방식이다.
그걸 지금 다시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아이에게 웃는 얼굴을 더 많이 남기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자라면서
엄마의 굳어진 얼굴을 더 많이 보며 자랐다.
그래서 아이가 나를 떠올릴 때
무표정이 아니라 웃고 있는 얼굴이었으면 한다.

물론 이 연습도 몇 주 지나면 또 잊어버릴 가능성은 크다.

그럼에도 웃을 일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옆에 있는 사람이 은은하게 웃고 있다면
나도 모르게 입가가 올라가는 순간이 있다.

배우자에게도, 나를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글을 보고 있는 사람도
어색하겠지만 잠시 입꼬리를 올려보길 바란다.
입 주변 근육이 떨린다면
그만큼 자주 웃지 않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오늘 저녁엔 가족에게
웃는 얼굴 하나만 보여줘도 충분하다.
그 한 번으로 분위기가 달라지고
12월 첫 주의 공기가 조금은 더 밝아질 수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고 인생의 좌우명이라고 말할 수 있는 문장이 있다.

joie de vivre

프랑스어로 ‘삶의 기쁨’이라는 뜻이다.


사는 것 자체가 기쁨이고 삶의 행복을 자주 느끼는 사람이 되고 싶어

이 문장을 십여 년 넘게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

여러분도 잠시 자신의 인생의 기쁨을 누려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 모두 그런 행복을 잠시나마 느끼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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