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정지 버튼이 눌렸을 때

코로나로 인한 강제 정지, 그리고 리셋

by 유니로그

1. 예기치 않게 다가온 불행, 가이드 인생의 정지 버튼

전 편에 장황하게 썼듯이, 나는 '투어가이드'라는 직업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사람들을 만나고, 내가 아는 세상을 보여주는 일이 내 천직이라 믿으며 즐겁게 일했다. 그런 나에게 불행은 예고도 없이, 아주 생소한 이름으로 다가왔다. 바로 '코로나'였다.

중국에서 이상한 전염병이 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저 투어 손님들께 "마스크 꼭 쓰고 다니세요"라고 당부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 와중에도 나는 여행이 고파 2월에 일본을 다녀왔고, 돌아온 직후 거짓말처럼 모든 투어가 중단되었다.

한순간에 실직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오히려 '잘됐다'라고 자위했다. 쉼 없이 달려온 나에게 하늘이 준 휴식이라 믿었다. 이 나라(대만)에 내가 진짜 뿌리내릴 수 있는지 시험해 볼 기회라 여기며, 공인 시험을 준비하고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2. 영상 편집의 즐거움과 서서히 조여 오는 현실

시간이 많아지니 평소 맛만 보던 영상 기록이 수월해졌다. 찍는 것도 재밌었지만, 하루 종일 매달려 완성한 10분짜리 브이로그를 볼 때의 그 뿌듯함이란. 오로지 내 손끝 하나로 무언가를 창조해 냈다는 사실이 스스로 대견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서도 문득문득 막막함이 밀려왔다. 하지만 "6개월 정도 지나면 금방 회복되겠지"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나를 지탱했다. 그러나 상황은 나아질 기미 없이 악화만 되었고, 아무 연고 없는 타국에서 '밥벌이'가 사라진다는 것이 얼마나 공포스러운 일인지 뼈저리게 깨닫기 시작했다.

언젠간 다시 올 수 있을 거라 믿으며 쉽게 결정하고 떠나온 외국 생활이었다. 가족과 지인들은 내가 금방 무너질 거라 걱정했지만, 나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만만치 않겠지만 뭐든 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다.


3. 가족이라는 또 다른 섬, 그리고 무너진 방어선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몇 년간 떨어져 지낸 가족과 다시 사는 건 생각보다 훨씬 고통스러웠다. 툭하면 혼자 나가 술을 마시거나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에 익숙했던 내게 누군가의 간섭은 당혹 그 자체였다. 가족과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고, 나는 나대로 살아남기 위해 카페 알바와 중국어 과외를 병행하며 버텼다.

하지만 거리 두기가 극심해질수록 나의 생계 활동은 점점 더 멀어져 갔다. 카페는 문을 닫았고, 과외 활동마저 끊겼다. 어떻게든 아등바등 버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자 나는 비로소 두 손을 들고 항복을 외쳤다.

내 감정은 출구가 필요했지만, 가족에게는 차마 이 모든 패배감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다시 외국으로 나가라고 권유하셨지만, 당시의 나에게 '다른 곳으로 떠난다'는 건 해결이 아니라 도망처럼 느껴져 더욱 힘들었다.


4. "제발 가만히 있으세요" : 나를 마주하는 법

결국 정신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난 진짜 괜찮아"를 주문처럼 외우고 다녔지만, 사실 나는 전혀 괜찮지 않았다. 선생님은 내게 의외의 처방을 내렸다.

"제발 가만히 좀 있으세요."

가만히 있지 못해 불안이 생기고, 그 불안이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어떤 날은 그저 누워서 방 벽지의 무늬를 세는 것, 그것 또한 치유를 위해 꼭 필요한 행동이라고 하셨다. 가만히 있을 줄 알아야 다시 행동할 수 있다는 말에 나는 비로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려 노력했다.

큰소리치며 집을 나갔다가 3년 만에 초라하게 돌아온 딸. 누구보다 잘 살고 싶었지만, 현실은 무기력하게 침대에만 누워 있는 나 자신을 직시했다. 그리고 인정했다. 나의 위치와 현재의 수준을.

그때 처음 알았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정해진 '그릇'이 있다는 것을. 그 그릇을 억지로 넓히려 애쓰기보다, 내 그릇만큼 채우며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 될 수 있겠다는 사실을 말이다.


5. 터널의 끝에서 다시 시작하기

내 수준과 위치를 인정하고 나니, 비로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의 교착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6개월간의 어두운 터널 속에서 기어 나와 나는 다시 뭐라도 해보려 애를 썼다.

피라미드의 제일 바닥에서 다시 위를 향해 한 칸씩 올라가는 마음으로. 그렇게 나는 다시, 평범하지만 소중한 직장인이 되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최선을 다해보았다.

그 이야기가 이 연재의 시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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