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꿈이 있었다.
사람들과 끊임없이 엮이는 세상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머리를 식힐 수 있는,
자연 속에서의 삶을 늘 생각해 왔다.
그러던 차 운이 좋게도 2년 전쯤 나만의 작은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
옆에 작은 개울이 흐르고, 밤나무가 70여 그루 심어져 있는 곳이었다.
땅을 픽한 가장 큰 이유였던 개울!
종종 오는 손님. 이웃집 강아지무식한 게 용기였을까.
농사일이라고 해본 것은 부모님이 가꾸는 텃밭에서 매실 수확, 고구마 캐기가 전부였던 터라
밤농사 또한 쉬울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문제는 밤나무 수량이었다.
널찍널찍 퍼진 밤나무를 오가며 허리 숙여 밤을 줍는 건 여간 보통일이 아니다.
또한 밤송이들이 떨어지는 시기가 제각각이다.
고로 현재 밤을 줍는 것만 3주째 출석 중이다.
일단 땅에 도착하면 쉼은 생각지 않고 열심히 줍는다.
참고로 필자는 제목과 같이 평범한 직장인이다.
주 평균 52시간이 정착된 요즘, 주 7일의 노동의 매운맛을 보고 있다.
밤송이 가시와 뱀 때문에 장화는 필수다.한편으로는 좋은 일이다. 사람 상대하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아무 생각 없이,
물아일체의 경지로 일을 할 수 있으니.
그러나 직장생활 이미 10년 차.
공정 엔지니어의 직업병인지 밤을 줍다 보면 업무를 보는 관점으로 자연스레 생각을 한다.
필자의 일하는 모습은 아니다.
밤을 열심히 줍긴 하지만 모두가 양품일 수는 없다.
다만 필자는 초보 농사꾼. 불량품에 대한 기준이 모호했다.
그래서인지 작년 첫 번째 수확에서는 고객들(지인)에게 불량품이 많이 유출됐다.
돈을 받고 판매한 것은 아니고 수확의 기쁨을 나누고자 선물을 한 것이었기에 더욱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있다. 하여 올해는 양품 기준을 한 단계 높여 강화 검사를 실시하였다.
작년에는 C급까지 출하하였지만, 올해는 B급만 출하 가능하다.
--------- 선별 기준 --------
A급 : 밤의 표면이 윤기가 있음
B급 : 밤의 표면이 윤기가 없으나 다른 외관 하자가 없음
C급 : 밤의 표면에 검은 멍이 있음
D급 : 벌레 구멍은 안 보이나 벌레가 파먹은 똥? 이 묻어 있음.
E급 : 큰 벌레구멍이 있거나 말라서 누르면 껍질이 들어감. 벌레 알이 붙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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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급으로 판정한 밤. 사실 검은 멍은 까봐야 불량을 정확히 판정할 수 있다.
밤 수확 프로세스도 고민을 한다. 제품(밤)의 양은 많고 인력은 없다. 그래서 선택을 해야 한다.
1안) 일단 줍고 후에 선별한다.
2안) 줍는 동시에 선별하여 양품만 담는다.
1안의 경우 장점은 고민 없이 주울 수 있다. 그래서 손이 빨라진다. 하지만 단점으로는 불량품을 같이 담다 보니 밤을 모으는 위치로 이동하는 행위가 늘어나고, 얼마나 출하할 수 있는지 판단은 선별 후에나 가능하다.
2안의 경우 줍는 내내 판단을 해야 해서 머리가 아프지만 장점으로는 이동 횟수가 줄고 양품만 모으기 때문에 출하량이 쉽게 확인된다.
필자의 경우 시행착오를 겪다가 1안으로 실행 중이다.
밤이라는 녀석들은 양면을 다 봐야 불량인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2안으로 할 경우 현장에 남는 불량품들이 줍는 행위를 2차 3차 유도한다.
A급인 것처럼 보여도 주워보면 D급이다.
가뜩이나 Capability(생산능력) 이 딸리는데, Lead Time(작업시간)만 잡아먹는 꼴이다.
양품인 줄 알고 주었다가 맞은 뒤통수가 한두 번이 아니다. 뒤통수는 아직도 얼얼하다
이렇게 모인 밤들은 선별이 필요하므로 밤을 줍는 작업은 늘 선별시간을 염두하여 일찍 마무리하곤 한다.
선별과정은 토실토실한 밤이라 할지라도 작은 하자가 있으면 불량처리를 해야 하기에 늘 뼈를 깎는 고통이 수반한다. 가끔 과하게 검사를 하는 느낌도 들 때가 있지만 어쩔 수 없다. 올해는 품질이 우선이다.
작년에 썩은 밤들을 보며 약을 꼭 치겠노라 다짐은 올해도 지켜지지 않았고, 강제로 유기농 농사를 하게 되어 밤들은 높은 불량률의 결과를 내었다. 검증된 밤 관리 레시피가 있음에도 게으름 피우며 멋대로 지은 대가이다.
필자는 내년에는 꼭 약을 제때 치리라 다짐을 해본다.
사실 필자는 밤을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불량률이 높다 하더라도 양품 수량이 상당하다 보니 첫해 쏟아지는 밤들을 마주했을 때, 언제 먹지 하는 생각에 상당히 난감했었다. 하지만 1년이 2년이 되고 이래저래 정성을 쏟다 보니 어느새 밤들에게 애정이 생기고야 말았다.
한 공정만을 밑은 회사일 과는 다르게 투입 - 생산 - 출하 - 품질관리 - 회계? 등의 모든 일이 나의 손으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힘들지만 혼자 이루어가는 재미가 있다.
밤 농사는 매너리즘에 빠졌던 회사생활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어, 다시금 힘을 내게 도와준 고마운 선물 같다.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해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필자의 자식 같은 밤들을 자랑하며 글을 마치려고 한다.
내년 농사는 올해보다 풍년이길 바라본다.
토실토실한 알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