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칠 놀이

by 은수

하늘이 또 애매하다.

맑지도, 비 오지도 않는 모습.


이런 날은 괜히 짜증이 난다.

확실하지 않은 것들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


나는 가끔 세상을 물감으로 덮어버리고 싶다.


회색 위에 빨강을 들이붓고,

주저함 없이 노랑을 흩뿌리고,

파랑을 겹겹이 쌓아서

적어도 살아 있다는 느낌이라도 만들고 싶다.


그런데 문제는

세상이 아니라 나다.


나는 무언가를 원한다.

제대로 인정받고 싶고,

확실하게 사랑받고 싶고,

적합한 방향을 갖고 싶다.


사실 나는 그것을 원하면서도

그만큼의 책임은 원하지 않는다.


빛은 원하지만

눈부심은 싫고,

성공은 원하지만

실패는 견디고 싶지 않다.


그래서 하늘은 점점 어두워진다.


달도 별도 없이 까맣게 칠해진다.


이건 세상이 등을 돌린 게 아니라

내가 안전한 색만 고른 결과일지도 모른다.


나는 길을 그려보려 한다.

발자국 몇 개를 찍어보면

적어도 방향은 생길 거라 믿으면서

하지만 정작 한 발 내딛는 일은

다섯 개를 포기하면

다섯 개가 남는다.


그중에서 또 몇 개를 덜어내고,

예상 가능한 선택만 남기려 한다.

그러다 보면 남는 건 거의 없다.


붓은 여전히 손에 들려 있지만

캔버스는 비어 있다.


나는 방향을 잃은 게 아니라

확신이 없을 뿐이다.


그래도 이상하게

붓을 놓지는 못한다.


이게 미련인지

희망인지

잘 모르겠다.


붓을 쥔 채 멈춰 서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


나는 아직 그 자리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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