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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봄, 처음, 새 학기

by pearl pearl

무엇인가를 시작하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설렘을, 누군가에게는 긴장감을 준다.

익숙한 것을 좋아하는 나는 늘 새로운 변화를 준비해야 하는 '시작'이라는 단어가 어려웠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는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하는 계절인 봄을 가장 싫어했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2월임에도 봄의 소식을 알리는 날씨예보에 12, 1, 2월까지는 겨울이라 우기고,

비 오는 날 새순이 돋아나는 나뭇가지를 애써 외면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종의 '싫은 티'였다.

왜 그런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마도 그리 행복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린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불행을 들키고 싶지 않아 늘 친구들에게 밝은 모습만 보여주었는데 본래 소심함이 더 큰 아이였던지라 친구들이 나를 발견하고, 먼저 다가올 때까지 그저 아무 말 않고 앉아있어야 하는 새 학기의 내 모습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왜인지 그때의 내 모습을 보면 아이들이 나의 불행을 금방이라도 눈치챌 것만 같아 누군가 빨리 나를 발견해 주길 바라면서 견뎌야 하는 시간이 싫었고, 그 일은 항상 봄, 새 학기에 일어났다. 누군가가 나를 발견해 주길 기다리는, 혼자인 내 모습을 견뎌야 하는 새 학기의 시작. 그것이 내가 봄과 시작이라는 단어에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다.

그럼에도 지금 글을 쓰기 시작하는 시점은 어쩌면 겨울보다는 봄의 기운과 가까우니 내 나름대로는 엄청난 결심이 아닐 수 없다. 무엇인가가 되려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듣고, 보고 했지만 완벽하지 않은 나의 글솜씨와 몇 번 들어봤다고 괜히 어려운 단어들을 써가며 겉멋이 잔뜩 들어간 내 글을 견딜 수 있을까 고민이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고, 이런 이야기들이 나만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인지, 아닌지가 궁금하여 이렇게 첫 글쓰기를 시작한다.

어린 시절 새 학기. 누군가 나를 발견해 주길 바랐을 때처럼 이번에도 누군가 나를 발견해 주길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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