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저녁을 먹고 혼자 산책을 나왔다. 이사 온 동네는 근처에 공원도 많고, 하천이 있어서 걷기에 매우 좋다. 내가 걷는 이유는 머리를 비우기 위해서이고, 답답한 마음도 비우기 위해서다.
아들은 2달 만에 수학학원에 다시 가기 시작했다. 물론 본인이 원한다기보다 부모의 권유이다. 학원을 다시 다니는 건 다행이라 생각하지만 다시 숙제 지옥이 시작됐다. 첫 수업에서 받아온 숙제는 두 번째 수업에 겨우겨우 다 해갔다. 딱 그때뿐, 두 번째 숙제부터는 또 안 해가기 시작했고, 학원선생님은 숙제 안 해온 것에 대한 언급을 하기 위해 내게 전화를 주셨다. 학교나 학원에서 전화가 오면 늘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하.. 게임과 핸드폰은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하면서 숙제하나 안 해가는 건 나로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인데 학원선생님은 오죽할까 싶다. 숙제가 잘 이뤄져야 원활히 배움도 될 터인데..
수업 끝나고 안 해온 숙제를 남아서 하고 가라고 했더니 배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그냥 집으로 와버렸다. 집에 와서는 배고프다며 밥부터 찾는다..
꼴 보기 싫다. 밥도 차려주기 싫다. 쪼잔해지는 나도 싫다. 이런 상황을 마주하는 거 자체가 너무 싫다.
스트레스를 받으니 또 소화가 안되기 시작한다.
자식 가진 부모가 죄인이라고 했던가. 선생님께 좋지 않은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내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죄송하다는 말을 해야 하는 내가 때로는 안쓰럽다.
집안분위기는 정적이 흐른다.. 말해봤자 또 감정싸움이 될 테고, 말을 안 하자니 내속에 고구마 백개는 쌓인 듯 답답하다.
그래서 혼자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