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구조 & 주사위게임
사실 "O.O"가 나왔을 때부터 뮤직비디오를 반복적으로 시청하며 엔믹스의 세계관을 공부해보려 했다. JYP에서 처음으로 '세계관'이라는 것을 전방위에 내세운 걸그룹인 만큼, 어떤 스토리텔링을 구사했는지가 큰 관심사였는데 당시 데뷔곡 하나만으로는 세계관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두번째 싱글까지 기다리다가 이제서야 분석글을 작성해본다. 당연히 원작자의 생각과는 다른 부분이 있을 것이니, 그냥 얄팍한 정보 습득 혹은 흥미 목적으로 봐주면 좋을 것 같다.
써다보니 길어져서 두 번으로 나누어 써본다.
눈을 뜨면 펼쳐지는 이데아
엔믹스의 세계관에서는 크게 세 가지 공간이 존재한다.
첫째, 'FIELD'라고 불리는 현실세계.
둘째, 'MXTP', 혹은 'MIXXTOPIA'라고 불리는 이데아.
셋째, FIELD에서 MXTP로 가는 여정의 길목.
지금부터 JYP가 앨범 소개글, 가사, 뮤직비디오, 트레일러 등 자체 콘텐츠로 공개한 내용들을 검토하면서 세 가지 공간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1) 현실세계 - FIELD
'눈을 감으면' 펼쳐지는 현실의 공간이다. 엔믹스의 세계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눈'이다. 눈을 감으면 현실이 펼쳐지고, 눈을 뜨면 현실을 벗어나 유토피아를 볼 수 있다. 이 설정은 이는 우리가 마치 플라톤의 동굴에 갇힌 죄수들처럼, 저 너머의 진실을 알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고 살고 있다는 것을 비유한 것으로 보인다. 자연히, 엔믹스 세계관에서 말하는 '현실'은 긍정적이지 않다. 행복이 고통과 함께 존재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존재하며, 눈바람을 혼자 견뎌내야 하는 세계가 바로 우리가 눈 감고 있는 현실이다.
(2) 이데아 - MIXXTOPIA
'눈을 뜨면' 펼쳐지는, 내가 꿈꾸는 것이 다 이루어지는 유토피아다. S기업의 세계관이 연상되는 '무정형'의 영역. 다만 MIXXTOPIA의 특이점은 바로 유달리 바다라는 공간적 특성을 강조한다는 것에 있다. 데뷔 싱글 <AD MARE>는 '바다로'라는 뜻이며, 앨범 소개글에서도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무너진 무정형의 세계'라고 명시하고 있다. 뮤직비디오 등 영상 콘텐츠에서도 '바다'에 대한 묘사가 두드러진다.
이렇게 바다와 하늘이 뒤집힌 듯한 모습은 두번째 싱글 "DICE" 가사와 뮤직비디오에서도 발견된다.
저 하늘 위를 surfing 이 바닷속을 flying
왼쪽 이미지에서는 하늘을 형상화한 듯한 방에서 항해를 하고 있고, 바로 직후에 등장하는 오른쪽 이미지에서는 물방울이 둥둥 떠나니는 방에서 멤버들이 '나는 듯한' 제스쳐를 취하고 있다.(오른쪽 이미지는 바다라기보다는 <ENTWURF>에서 새로 등장한 요소인 오렌지 호수로 보인다) 뭐가 어떻든 일단은 MIXXTOPIA는 이들의 말대로 '상상을 뛰어넘을 세계'인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MIXXTOPIA의 또 한가지 특징은 데뷔곡 <O.O>의 가사를 통해 드러나는데, "0과 1의 미로가 보여?", "Cause everything is fake but I ain't fake"라는 구절에서 쉽게 알 수 있듯, MIXXTOPIA는 디지털이 빚어낸 메타버스 속 시공간과 비슷한 개념이다. 다만 이러한 특징은 두번째 싱글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았다. 앞으로 이런 부분이 다음 싱글에서 더욱 부각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다음 공간인 'FIELD에서 MXTP로 가는 여정의 길목'에 관해서는 아예 세부 항목을 구분하여 설명하겠다. 세부 항목 1번인 주사위 게임은 이번 글에서, 2번인 '적대자'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다룬다.
MIXXTOPIA로 가는 여정 ①
두번째 싱글 <ENTWURF>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특이점은 크게 두가지다. 첫번째는 MIXXTOPIA로 가는 도중 수행해야 하는 게임의 존재, 두번째는 여정을 방해하는 적대자의 존재다. <ENTWURF>는 게임과 적대자라는 새로운 요소들을 제시하면서 엔믹스의 세계관을 전격적으로 확장하는 앨범이다.
"게임에 던져진 자: 순응할 것인가, 만들어갈 것인가"라는 앨범의 메인 소개 문구에서 보이듯, '게임'이라는 미션은 타의적으로 멤버들에게 부여된다. 이번에 엔믹스 멤버들이 참여해야 하는 미션은 주사위 게임이다. 멤버들은 두 개의 주사위를 던지며 앞으로 나아가며, 도중에 적대자를 만나면 수수께끼를 해결하여 적대자의 위협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이 주사위 게임은 얼핏 간단해 보이지만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당히 복잡한 매커니즘이 작동하는 듯하다.
위 두 움짤을 주목하자. 설윤이 던지는 다각도의 주사위가 공중에서 정육면체로 바뀌고, 정육면체의 주사위는 수많은 위상변화를 거쳐 녹색 공으로 변화한다. <Rules of Play> 영상에서는 정육면체 주사위만을 사용하지만, 모종의 연유로 주사위의 위상이 시시각각 변화할 수 있는 듯하다. 이 정확한 작동원리는 명백하게 제시되지는 않았으나, 적대자의 농단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뮤비의 엔딩에서 지니가 던진 녹색 공이 주사위로 변하고, 마지막에는 적대자의 카드로 변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는 결국 주사위 게임 그 자체가 적대자가 주도한 것이라는 점을 강하게 시사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궁금증이 일만하다. 왜 하필이면 '주사위 게임'이었을까? 왜 여러 게임들을 놔두고 JYP는 주사위 게임을 MIXXTOPIA로 가는 첫번째 미션으로 설정했을까?
이 대목에서는 엔믹스가 팬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SWEET Game'인 십자말풀이를 한번 떠올려보자.'SWEET Game'은 말할 것도 없이 'Squid Game'을 어느 정도 의도한 설정이다. 하지만 어휘만 비스무리하게 따왔을 뿐, 실상 'SWEET Game'은 <오징어게임>에 등장하는 서로 죽고 죽이는 게임과는 완전히 다른 십자말풀이에 불과하다. 주사위게임 역시, 십자말풀이와 비슷한 결에 있는 굉장히 '착한'게임이다. 주사위게임은 앞으로 나아간다는 규칙이 전제된 놀이다. 그리고 엔믹스는 멤버들끼리 역할을 분담하여 팀을 이뤄 게임에 참가한다. 살아남기 위해 서로 싸우는 게임이 아니라 함께 적대자를 상대로 싸우고 수수께끼를 풀면서 나아간다. 타이틀곡 'Dice'의 "함께 만들어가는 score", "Woud you go with me? Let's roll the Dice!"라는 가사를 상기해본다면 이 상황을 좀 더 쉽게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엔믹스가 데뷔 전부터 보여온 '같이'라는 메시지와도 일맥상통한다. 엔믹스는 데뷔 전 <New Frontier: Declaration> 필름, "O.O"의 "보고 있지만 말고 follow"와 같은 권유형의 가사 등으로 함께 MIXXTOPIA로 가자는 동행의 메시지를 일관되게 전달해왔다. 바로 이러한 '같이'라는 의사 표현이 aespa의 히어로물스러운 스토리텔링, IVE의 자아도취적인 스토리텔링과 엔믹스를 구별하는 중요 요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겠다.
일단은 이번 글은 여기까지!
다음 글에서는 MIXXTOPIA로 가는 여정 도중 맞닥뜨린 '적'에 대하여 좀 더 자세하게 다뤄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