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방시혁 빅히트 레이블 CEO는 첫번째 <Corporate Briefing with the Community> 에서 빅히트가 꿈꾸는 '혁신'에 대해서 처음으로 언급했다. 그는 대본없이 그가 정의하는 혁신에 대하여 또렷하게 말했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이미 존재하거나, 아직 발견되지 않은 고객의 니즈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시스템을 개선해가면서 궁극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
음악 산업의 혁신의 방법으로 방시혁 CEO는 두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첫째는 불편없는 공연경험 제공과 플랫폼 사업을 통한 고객경험의 혁신, 그리고 두번째는 브랜드 IP와 스토리텔링 IP사업을 통한 음악 산업의 밸류체인 확장. 3년이 지난 현재, 하이브는 '더 시티' 프로젝트를 부산에서 성공적으로 진행했고 스토리텔링 IP를 아티스트 세계관에서 오리지널 스토리로 확장했다.
그리고 2021년 11월,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2021 HYBE Briefing with the Community> 영상 초입에서 하이브 출범 이후의 6개월을 'Boundless'라는 단어로 규정했다. 이는 '한계없는 확장'으로 풀이되는데, 이 근간에는 'We Believe in Music' 이라는 하이브의 핵심 가치가 있다. 양질의 음악과 아티스트 IP를 기획, 제작한 후 이를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채널을 산업의 경계를 넘어 확장하겠다는 것. 궁극적으로는 매일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팬들이 원하는 아티스트 관련 콘텐츠와 서비스가 끊임없이 이어지게 만드는 것이 하이브의 혁신 목표다. 따라서 하이브는 스스로를 '엔터테인먼트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기업'이라고 지칭한다. 하이브가 꿈꾸는 세상은 플랫폼을 매개로 하이브 소속 아티스트들을 어디에서든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일상을 선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지금까지 하이브가 공식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한 Community Briefing 영상과 브랜드 PT 영상, 그리고 내가 지켜봐온 1년 반간의 하이브의 행보를 종합하여 하이브가 꿈꾸는 '혁신'을 창조하기 위해 하이브가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왔는지 분석하였다. 이미 다음달 초 <2022 HYBE Briefing with the Community> 영상 업로드를 예고한 상황에서, 이 글은 지금까지의 하이브의 혁신 전략을 가볍게 정리할 수 있는 자료가 될 것이다. 하이브의 주주이거나 하이브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이 글을 읽고 나서 다음달 하이브가 발표할 새로운 전략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첫번째 전략,
2020년 2분기 빅히트 Corporate Briefing 영상에서 방시혁 의장은 회사 레이블들의 성과를 언급하는 것으로 브리핑을 시작했다. 가온앨범차트에서 괄목할 성과를 거둔 방탄소년단, 세븐틴의 성과를 특히 강조했고 여자친구, 뉴이스트의 성장에 대한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하이브는 빅히트 시절부터 '콘텐츠'와 '팬'을 중심으로 생각한다는 가치를 일관되게 내세워 왔다. 2020년 2분기 영상에서는 '콘텐츠 파워하우스'로서 훌륭한 아티스트 IP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것에 집중한다는 것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 일환이 이제는 잘 알려진 레이블 확장 전략이다. 플레디스, 쏘스뮤직을 자사 레이블로 편입하고 CJ ENM과 합작 레이블 빌리프랩을 세웠으며 민희진 CBO를 필두로 자회사 ADOR을 론칭하여 멀티레이블 체제를 확립했다. 이는 다수의 아티스트들을 효율적으로 프로듀싱하고 매니지먼트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그 결과 엔하이픈, 르세라핌, 뉴진스 등 거대한 팬덤을 거느린 신인 아티스트들이 하이브라는 거대한 울타리 안에서 탄생할 수 있었다. 하이브는 아티스트 포트폴리오 확장을 위해 판을 글로벌하게 키운다는 야심도 숨기지 않았다. 당장 HYBE LABELS JAPAN 소속 보이그룹 &Team의 데뷔가 임박한 상황이고, 유니버셜 뮤직 그룹과 협업하여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활동할 글로벌 걸그룹을 론칭한다는 계획이다.
여기까지는 일반인들도 그리 어렵지 않게 생각해낼 수 있는 전략이다. 또한 산하에 수많은 자사 레이블들을 거느린 미국의 유니버설뮤직그룹을 떠올린다면 그렇게 낯설지도 않은 발상이다. 하이브가 혁신적인 기업인 이유는 원천 IP를 확보하고 개발하는 차별화된 전략에 있다. 다수의 아티스트 IP를 확보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스토리 IP'를 자체 개발하는 것이다. 작년 11월 Briefing with the Community 영상에서 하이브는 큰 비중을 두고 신스토리 IP 개발 전략에 대해 발표했다. 이는 일반적인 아티스트 세계관 기획, 즉 아티스트의 뮤직비디오와 가사를 통한 스토리텔링 전략을 정면으로 뒤집는 참신한 전략이었다.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는 아티스트가 독창적인 성장 서사를 뮤직비디오와 가사로 풀어냈다면, 이제부터는 이미 존재하는 자체 스토리에 아티스트를 캐스팅하여 스토리에 생동감을 불어넣겠다는 것이다. 이후 이 스토리는 게임, 웹툰 등 2차 창작물로 출시되며 동시에 아티스트와 협업을 통해 그 가치를 더욱 확대한다. 하이브의 오리지널 IP를 아티스트에서 스토리로 확장하여, 또 다른 무궁무진한 2차 IP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활로를 개척한 것이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고객의 니즈를 발견하고 전혀 다른 해결책을 제시한 대표적인 하이브의 혁신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두번째 전략,
MD, NFT 등 아티스트 간접 참여형 2차 IP 기획은 매출을 극대화하기 위한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필수 전략이다. MD 스토어를 운영하고 있는 SM, 사옥 근처에 카페 the SameE를 운영하고 있는 YG 등 기획사들은 아티스트를 활용한 MD를 제작하고 이를 온오프라인에서 유통해왔다. 하이브의 특이점은 MD는 물론이고 캐릭터, 출판, 게임, 교육, NFT등 여러 산업에 걸쳐 있는 아티스트 2차 IP의 엄청난 양적 다양성이다. 하이브 솔루션스라는 내부 조직 안에 하이브 360, IPX, IM 등 특정 분야에 특화된 부서를 만들어 다양한 2차 IP를 뽑아내고 있는 것이다.
2020년 2반기, 빅히트 IP의 이승석 General Manager는 IP사업에 대해 다루면서 가장 먼저 방탄소년단의 캐릭터 '타이니탄'의 개발과 그 비즈니스 가치에 대해 언급했다. 이후 방탄소년단의 노래 가사를 일러스트로 표현한 그래픽 리릭스, 공연 굿즈, BTS 갤럭시 에디션 등 라이센스 사업 등에 대해 순서대로 다루며 당시 확보한 2차 IP 풀을 강조했다. 막판에는 윤석준 글로벌 CEO가 등장해 방탄소년단의 한국어 교육 콘텐츠와 화양연화 the Notes 등 출판물, 넷마블과 협업하여 개발 중인 게임, 자회사 Superb가 개발 중인 게임에 대해 언급하며 빅히트만의 고유 IP 비즈니스 모델을 한번 더 어필했다. 반면 2021년 하반기 Corporate Briefing에서는 보다 게임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졌다. 정우용 매니저가 직접 등장하여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며 제작에 참여한 게임 론칭을 예고한 것. 이미 넷마블과 함께 제작한 두 편의 게임, Superb에서 제작한 리듬게임 이외에 추가로 게임을 제작하겠다는 야심의 표현이었다. 이 게임은 <인더섬 with BTS>로 보이며, 저조했던 지난 게임 실적에 비해 반응이 좋다.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9643605&memberNo=24985926&vType=VERTICAL
2021년 하반기 Corporate Briefing에서 하이브가 야심차게 공개한 또 하나의 새로운 전략은 아티스트 NFT 사업이다. 하이브는 치밀하게 두나무와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차근차근 NFT 사업을 준비해왔다. 그 결과가 올해 10월 합작법인 레벨스에서 출시한 NFT 거래 플랫폼 모멘티카다. 이 플랫폼에서는 엔하이픈, TXT, 르세라핌, 세븐틴 등 자사 레이블 소속 아티스트들의 NFT를 순차적으로 판매하며, 그 첫 주자로 엔하이픈의 NFT를 10월 25일 출시하였다. 이는 최근 NFT 사업에 돌입한 국내 대형 기획사 중에서는 가장 발빠른 행보다.
이런 사업 확장에는 아티스트에 대한 상품화가 지나치다는 팬들의 불만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하이브는 Corporate Briefing에서 해당 사업을 하이브가 진행할 수밖에 없는 '구실'을 항상 제시한다. 이 구실은 바로 팬이다. BTS IP를 활용한 게임을 론칭할 때는 '아티스트와 음악을 더욱 인터랙티브하게 즐길 수 있는 경험을 팬들에게 제공하기 위함'이라는 이유를 제시하고, BTS의 한국어 교육 콘텐츠를 론칭할 때는 '더 많은 팬들이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 BTS와 소통하길 바란다'는 그럴 듯한 근거를 제시한다. 가장 논란이 될 만한 NFT 사업과 관련해서는 '곧 다가올 미래를 팬들이 미리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는 명분을 제시했다. 이러한 구실이 팬덤이 납득할 만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하이브는 정기 브리핑을 통해 팬덤에게 사업 확장의 근거를 설명하려고 하는 국내 유일한 엔터테인먼트 기업이다. 제품 하나 출시했으니 지갑을 열어라라는 식의 무언의 강압보다는 훨씬 더 소통지향적인 태도다.
하이브는 이밖에도 해외 시장을 공략한 콘텐츠 제작에 투자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JTBC 등 국내 방송사에서 JYP 360가 제작한 콘텐츠를 송출하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세계적인 OTT 플랫폼에 자사 아티스트가 출연하는 콘텐츠를 유통시키겠다는 전략이다. 2021 Corporate Briefing에서 스캇 맨슨 하이브 아메리카 비즈니스 솔루션스 대표는 자사 Content Division, Consumer Divison에서 2021년 거둔 성과들에 대해 주목했다. Content Division에서는 J Balvin, Justin Bieber, Demi Lovato 등 SB Projects 소속 아티스트들의 다큐멘터리, 영화, TV 드라마 등 자체 콘텐츠를 제작하고 이를 넷플릭스, 아마존 프라임 등 OTT 채널을 통해 유통시켰다. Consumer Division에서는 Ariana Grande의 뷰티 브랜드를 론칭했고 저스틴 비버의 의류 브랜드 'Drew House'는 크록스, 발렌시아가 등의 브랜드와 협업을 진행했다. 여기서 핵심은 이 두 개의 부서 모두 하이브 레이블 소속 아티스트들을 주제로 한 콘텐츠 제작과 사업 론칭을 희망하고 있다는 스캇 맨슨의 언급이었다. 만일 이 일이 성사된다면, 북미 시장을 겨냥하여 제작된 콘텐츠에서 하이브 소속 아티스트들을 조만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제작사인 래디컬미디어프로덕션에서 제작한 블랙핑크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BLACKPINK: LIGHT UP THE SKY>와 같은 사례들이 하이브 아티스트들에게도 적용되는 날이 머지않아 올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정리한 것들을 토대로 하이브의 밸류체인을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하이브 아메리카 제외, 게임 제작 무산된 넷마블 제외)
회사 내부에 레이블스, 플랫폼, 솔루션즈라는 세 개의 조직을 만들고, 그 안에서 자사 레이블과 사업부를 다각화시켜 수익 채널을 다각화하는데 성공한 모습이다. 2019년 첫 Corporate Briefing 때 밝혔던 브랜드 IP, 스토리텔링 IP 밸류체인이 정교화되고 세분화되었으며, 내부화된 수익창출 시스템으로 유통비와 거래비용을 절감했다.
지금까지의 하이브의 혁신 전략을 크게 두 가지로 정리했다. 다수의, 양질의 원천 IP를 확보하고, 이 IP를 활용할 수 있는 산업군을 확장하고 이를 해외 시장에도 적용하는 것이다. 뻔해보일 수도 있으나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안목이 필요하고, 이 콘텐츠를 활용하여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고객의 니즈를 확실하게 파악해야하기 때문이다. 방시혁 의장은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레이블스, 플랫폼, 솔루션스라는 조직을 회사 내에 만들어 분업을 실현시켜 전문가들이 하나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원천 IP를 확보하는 업무, 원천 IP를 활용하여 2차 IP를 기획/제작하는 업무를 레이블스와 솔루션스로 각각 분담했고 자사 플랫폼을 통해 그 가치를 확산했다. 하이브는 이러한 시스템을 앞으로 세계 시장에 적용할 것이고 2019년에 밝혔듯 이를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de facto' 시스템으로 정립하려고 한다. 바로 하이브가 꿈꾸는 혁신의 최종 단계다. 다음 달 초에 발표할 하이브의 신사업 전략에 대한 기대가 벌써부터 크다.